재미난 일을 겪었다.
포도몰 전시회가 그저께까지였기에, 어제 작품 철수를 하러 갔었다.
벽에 걸었던 큰 액자들부터 떼어 포장해 놓고, 종이 케이스에 담아 벽에 붙였던 작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떼기 시작했는데- 모녀처럼 보이는 여성 둘이 전시실을 빼꼼히 들여다 보았다.
그때 마침 그 전시실엔 나 혼자 있었다.
전시회 같은 게 열리는 것 같아 들렀는데 끝났냐고 물어보길래
맞다, 그런데 어제까지 했고 지금은 작품 철수 중이다, 랬더니 '한 번 둘러보고 싶었는데 안타깝다'며 아쉬워하는 거였다.
나더러 여기 관계자냐, 뭐하는 사람이냐 묻길래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라고 하자 내가 들고 있는 그림들을 잠깐 구경할 수 있냐고 묻는다.
두 사람-특히 나이 든 아줌마-가 전시를 놓친 걸 정말 아쉬워하는 기색이었기에, 그림들을 선뜻 내주었다.
종이 끝을 살짝 잡고 볼 거란 기대가 무리였을까. 아줌마는 그림 있는 부분을 덥썩 잡았고
급기야 돈 세듯 손가락에 침을 발라 넘기기까지 했다. 순간 발끈할 뻔 했지만 참았다.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을테고, 또 발끈하기엔 그분의 태도가 너무나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하여간 그림을 구경한 아줌마는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이쪽에 대단한 감각이 있나 봐요. 멋있다. 아주 좋네요."
그 말에 난 금세 홀랑 넘어가서 고맙다며 실실 웃었다. 그림 좋다고 감탄해주는데 기분나쁠 이유 없는데다가, 아줌마가 당장이라도 내 이름을 알아가서 어느날 전화를 걸어와서는 "그림 열 장만 가져와요" 하고 팔아줄 것만 같은 기세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다른 그림들을 벌써 포장해버려 아줌마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마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칭찬을 늘어놓던 아줌마가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목사예요. 여자 목사랍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낚였구나.
순간 좀전까지 칭찬 몇 마디에 좋아서 헤헤거리던 나 자신에 막 회의가 들면서 아 놔 이런 식으로 가난한 작가를 낚아도 되는 거냐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래서 딱 잘라 말했다.
"(아 놔) 죄송하지만 종교 얘기라면 듣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어머, 무슨 소릴. 그냥 내 소개를 한 거예요. 내가 목사라고요."
"(앗 혹시 이분은 정말 순수하게 자기 소개를 했을 뿐인데 내가 오바를 한 걸까? 미안하게...) 아, 네..."
"여자 목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 하거든요. 여자도 목사가 있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녀본 적도 없어요? 그동안 한 번도? 그렇구나.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요즘 살기 참 힘들죠. 이런 힘든 세상에 하나님 말씀이.............블라블라"
......낚인 거 맞네.
그러면 그렇지 지나가던 생판 모르는 부인이 내 그림이 좋다고 감탄하며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갈리가 없잖아...... 하고 낙담한 나는 종교 얘긴 듣고 싶지 않다고 다시 잘라 말했고, 아줌마는 아쉬운 표정으로 핸드백에서 전단지 묶음을 꺼내 한장을 내밀었다. 난 당연히 안 받겠다고 했지. 나한테 줘 봐야 읽지 않을테니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그쪽엔 더 도움이 될 거라고까지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전단지에 있는 저거 뭐야......
<전단지 보기>
......순간 푸흐 웃음이 나와 전단지를 덥썩 받아 들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려는 아줌마를 불러 한 장만 더 달랬다.
달라진 내 태도가 고무적이었는지, 옆에 있던 언니는 '이것도 들어보라'며 설교 테이프까지 주었다.
그분들은 모를 거다. 내가 왜 전단지를 본 순간 화사한 표정이 되었는지.
안 받겠다고 잘라 말하던 내가 왜 갑자기 고분고분 받아 들고, 그것도 모자라 더 달라고 했는지.
좀전까지 그토록 냉정하게 반응하던 내가, 때마침 나타난 보안요원에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혼나는 그분들의 뒷모습을 왜 끝까지 지켜보며 배웅했는지.
어쩌면 그분들끼린- 내가 전단지를 받아든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샤르륵 순한 양이 되었다고 기뻐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지만, 우리 서로 낚은 셈 치기로 해요. 전단지는 기념으로 잘 간직하겠습니다. 어쩌면 다음 전시회 땐 액자에 담아 함께 전시할지도 몰라요.
여하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 거 같았습니다. 그래도 교회엔 안 갈 거예요.
<전단지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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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가 이 작가라는 걸 알고는 있었던 건가요??ㅋ
몰랐을 거예요. 중간에 이름을 묻길래 '도대체란 예명을 쓴다'고 했는데 허허 웃고 넘어갔거든요. 아마 저 전단지는 다른 사람이 만들었을 듯. 근데 만든 사람도 저에 대해선 몰랐을 거 같아요.ㅋㅋ
도대체님 유명해지셨군요. ㅋㅋ
아~그나저나 반복되는 인생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그러네요. 그러고보니 카피 참 잘 썼네요.
혹시 전단지에 있는 전화번호가 필요하시면...... ^^;
나 전단지 연 순간 완전 빵 터졌어.
전 어제 택시에서 저거 보고 빵! 터졌답니다ㅋㅋㅋ
^^;
유명 인기작가 도대체님, 이젠 교회에서 까지 인용한다는!
아이고 그런 말씀은 부디; ㅋㅋ 창피해요.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 하필이면 저런 인연이..
정말 운명이란게 있어서 저 전단지를 도대체님이 받게 된걸까요?
저건 또 어떻게 알고 보고 저기에 인용한건지,ㅋㅋㅋㅋ
저거 보고 도대체님을 검색해보는 사람들 있을것같아요' - '* 아하하
[어쩌면 다음 전시회 땐 액자에 담아 함께 전시할지도 몰라요.]<-요 부분 읽고 역시 도대체님이구나, 하고 웃고갑니다 :) 흐흐
암튼 전 자꾸 들이대는 저런 양의 탈을 쓴 크리스챤들 너무 싫어요-_ㅠ
저도 성당 다녔었고 종교인들 자체를 비난하고싶지는 않지만,,
정말이지 자꾸 '선교'라는 이름으로 사람 귀찮게하면서 종교를 악용/남용하는 이들은 ..
아마 신이 계시다면 신도 그들을 미워하고 계실듯함.
아 저도 고등학교 때 천주교 재단 학교를 다니면서 세례를 받았어요. 그후에 여러 모로 저랑 안 맞는 것 같아 안 다닌지 십년도 넘었네요;
저는 가장 싫을 때가, 밤새고 나서 낮에 자고 있는데 초인종 누를 때. 그리고 도인들이 길 물어보는 척 하면서 낚을 때요.
이거 올립시다 ^.^
죄송해요 규훈님. 이 글은 그냥 여기에서 저를 아는 사람들끼리 보면서
웃고 넘어가고 싶어요. ^^;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간 유명작가 도대체님 ㅎㅎ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해선지 낚시 하나는 일품이네요.
그 낚시가 그 낚시인진 모르겠지만...
흠, 그물로 잡으라 하신 건가...
부크럽쿤요;
저 정말 완전 낚였어요. 월척이었답니다 파닥파닥;
ㅎㅎㅎ그분들 너무 아쉽다.
도대체 님 작품이란 거 알았으면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하셨을텐데...^^
설마요. ^^;
얘기하면 옳다구나 하고 말이 더 길어질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답니다. 으허허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라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보니 저도 다시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저도 뻥 터져버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이 삭막한 세상에 훈훈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군요 '-'
캬캬~ 웃음 드렸다니 좋쿤요!
큭큭,
남의 불행을 즐거워 해서는 안되지만(또, 그림이 지폐 취급 받은건 속상하시겠지만)
읽다가 빵터졌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어서 죄송해요 대체님. 으큭큭
저도 웃긴데요. ㅋㅋㅋㅋ -_-b
푸하하... 정말 재밌는 일이네요~ 어쨌든 즐거운 한아름 안겨주고 가신 분들이네요 ^^
네. 저분들 덕분에 'ㅅ^
1)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넓고도 좁은 세상ㅎ
3) 사실 그 작품을 보면서
반을 넘게 살아버린 주어진 시간을 새삼 깨닫고
나름 진지해졌었죠. 비록 잠시였지만ㅎ
'반복되는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려는 저 전단지가
그 작품을 인용한 것은 적절하고 효과적인 듯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