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6일 Groove On Net 63회 방송 (DJ/김태훈 PD/민일홍)
천재 유교수의 생활/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애니 그루브, 이번 시간에 소개해 드릴 만화는 카즈미 야마시타의 ‘천재 유교수의 생활’ 입니다.
주인공은 예순 여덟 나이 지긋한, Y대 경제학부의 유택 교수입니다. 만화의 제목에서처럼 그는 천재이면서,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고 철저한 인물입니다. 어떤 심각한 상황이 닥쳐도 아침 5시 기상- 밤 9시 취침이란 규칙은 반드시 지키고 말죠. 옆에서 누가 다투고 있어도, 심지어 여자가 자신을 꼬시는 상황에서도 “전 9시면 자야 합니다” 라며 자리를 뜹니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이라면 절대로 길을 건너지 않고, 길을 걷다 꺾어질 때에도 90도 직각으로 몸을 돌리며, 컴퓨터의 자리를 옮기는 데에도 새 자리에서 생길 볼펜 그림자의 크기까지 계산해 본 후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이 교수. 언뜻 생각하기엔 정말 까탈스럽고 재미없는 이 노인을 주위 사람들은 존경하고 있는데요. 대체 유교수의 어떤 면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요?
‘모든 것에 논리적인’ 유교수. 남의 집 담벼락에 “야마모토 바보 천치” 란 낙서를 하고있는 꼬마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꼬마야, 넌 그 낙서를 어떤 근거에서 하고있니? 야마모토라는 사람이 정말로 공공장소에서 공표할 정도로 바보고 천치냐? 그게 사실이라면 야마모토를 소개시켜줘봐. 그럴 수 없다면 그 즉시 사실에 반하는 낙서를 지워야 한다”...... 어떻게 보면 어린 꼬마에게 조목조목 논리를 내세워 따지는 까탈스런 노인네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상황이든, 언제나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때문에 처음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상대방도 이내 유교수의 논리적인 얘기에 수긍하고 마는 거죠. 더욱이 유교수는 그 논리적 접근 끝에 자신이 틀렸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언제든 흔쾌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늘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감동하는 것이죠.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기쁜 일” 이라 말하는 유교수는 특히 ‘사람’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엔 논리로도 설명하기 힘든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교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마냥 즐거워하죠. 공사장 인부들, 철없는 이웃들, 마을에서 마녀라고 소문이 나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독거 노인 등, 누구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유교수는 그들에게 성큼 성큼 다가가 진심으로 어울립니다.
무엇보다 유교수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포용력인데요. 그는 코를 뚫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늘높이 세운 남제자에게도 “너의 신념을 존중한다” 라고 얘기합니다. 남들이 수군거리는 동성애자에게도 “나는 당신의 가치관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사는 방식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진심어린 말을 건네죠. 만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포용력이란 일흔이 다 된 엘리트 노인의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멜빈’ 이란 인물이 있죠.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인데, 처음 유교수를 접했을 때 문득 멜빈이 떠올랐어요. 반드시 우측통행을 하며 길을 걷다 꺾어질 때에도 90도 직각으로 회전해야 하는 유교수, 그리고 보도블럭의 틈은 절대로 밟지 않으며 걸어야 하는 멜빈. 언제나 같은 시간에 취침해야 하는 유교수와 식당에 가면 언제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멜빈. 자기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반드시 지켜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에서 유교수의 규칙과 멜빈의 강박증은 다른 듯 닮아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그 포용력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것 같아요. 알고 싶어 한다는 건 결국 관심이 아닐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애정이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것이 곧 탐구로 이어져 지식 또는 지혜와 연결되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보면 설령 내가 싫어하는 것이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도 좋은 면을 보고 접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유택 교수가 멜빈을 만난다면 이런 말을 해 줄 것 같군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실눈을 하고, 씨익 웃으면서 말이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OST앨범에 들어있는 Art Garfunkel의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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