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도 풍뎅이도 장수하늘소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하게 생긴 벌레 한 마리가 새벽을 흔들고 사라졌다.
움직임이 느릿느릿했기 때문에 PC 선을 따라 기어 올라가는 그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죽이면 어쩔 것인가. 게다가 휴지로 덮쳐 짓눌려진 모습을 보는 것은, 이 방에 같이 있는 것보다도 더 괴로운 쇼크다.
지금쯤 방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숨쉬고 있겠지.
공존하자. 모기처럼 물진 않을테니 너는 봐 준다.
어릴 적 동네 놀이터에서 무시무시하게 큰 잠자리를 잡은 적이 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모습이라 더 크게 기억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큰 잠자리를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게다가 몸에 훌륭한 줄무늬까지 있는 멋진 녀석이었다.
솜씨좋게 날개를 잡아 아이들에게 자랑하러 달려갔더니 모두들 우와아아 감탄해 주는 가운데-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야자 트고 지냈던 선민이란 남자아이가 외쳤다.
'독(毒)잠자리다!'
선민이의 말에 의하면 그건 바로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독잠자리로, 사람을 물고, 물린 사람은 단번에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커다란 덩치며 몸에 있는 줄무늬로 보아 자기가 아는 그 독잠자리가 분명하다고 했다.
맙소사.
부러운 듯 주위를 에워쌌던 아이들은 어느 새 선민이와 함께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 버렸고, 나는 놀이터에 멍청하고도 고독하게 홀로 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날개를 놓는 순간
화가 난 독잠자리가 나를 물면 나는 죽는다.
운이 좋아 잽싸게 도망친다고 해도
독잠자리는 다른 사람을 물고, 그는 죽는다.
나를 포함한 한남동 주민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려있는 순간이었다.
독잠자리는 내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댔지만 나는 우직하게- 둑에 난 구멍을 팔뚝으로 막은 네덜란드 소년처럼 녀석의 날개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귀가는 해야 하니 집으로 오긴 했는데...... 집안에 불행의 씨앗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불안해진 나는, 엄마의 눈에 띄기 전에 독잠자리를 내 손으로 처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어떻게? 도무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독잠자리를 냉동실에 넣자. 그러면 이 녀석은 얼어 죽을테고, 그 때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테니까.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냉동실 문을 열었다. 냉동실에 넣으려는 찰나 이 녀석이 도망가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 지쳐있던 녀석은 생각보다 순순히 냉동실에 갇혀 주었다.
한참이 지났다. 이만하면 독잠자리는 얼어 죽었겠지, 하며 냉동실 문을 열었는데 녀석은 미처 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냉동실 문을 열어보며 확인했지만, 도무지 죽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역시 독잠자리답게 강하구나' 생각하며 끈질긴 그의 생명력에 치를 떨었다.
결말은 참 싱겁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 독잠자리를 나는 그냥 놓아주었다. 그대로 계속 두었다가 냉동실에 독잠자리 따위를 넣어두었다는 사실이 엄마에게 발각되는 날엔, 독잠자리에게 물려 죽는 것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독잠자리를 마당에 내려놓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될 대로 되라. 나는 이렇게 너를 놓아준다. 내일 너에게 물려 죽었다는 동네 사람이 생기기라도 하면, 선민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내가 너를 잡았다는 사실을 이를까 안 이를까. 목격자는 많지만 별 수 없다. 제발 멀리멀리 날아가 네 고향이라는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린 애 하나 잘못 만나 냉동실에 갇히는 수모를 당한 그에게 아직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하는 것이다. 올 여름만 해도 모기를 백 마리도 더 넘게 잡아 죽인 주제에.
도대체
2005/09/11 05:20
2005/09/1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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