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초에 이사하면서 집 전화번호를 바꾸었는데, 이 번호로 잘못 걸려오는 전화가 참 많다.
느긋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나여." 라고 말을 거는 어르신들도 있었고
까페인지 술집인지 아무튼 그런 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잦은 빈도와 특이성 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전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죠?"
"거기 우리나라 아닌가요?" 라고도 걸려오는 이 전화는
"아닌데요." 라는 나의 대답으로 끝나곤 했다.
처음엔 '우리나라' 라는 회사나 상점이 어딘가에 있나보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저 전화를 여러 사람이 거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계속 걸어왔기 때문이다.
목소리로도 알 수 있지만, 전화기 액정에 뜨는 발신자 번호가 그 증거였다.
잘못 걸린 전화란 걸 척 봐도 알 수 있으니 안 받으면 그만인데
그러면 그것 참,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계속 걸어오니 그것도 곤욕이라.
지역정보 서비스에서 '우리나라' 라는 상호의 업체들을 찾아봤다.
갈비집 우리나라, 분식집 우리나라, 삼겹살집 우리나라, IT업체 우리나라, 부동산 우리나라, 무역회사 우리나라, 노래방 우리나라, 카센터 우리나라 등
온갖 업종의 우리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우리 집 전화번호와 비슷한 번호는 없었다.
아아 그렇다면 그녀는 실수로 번호를 잘못 누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계속 전화를 걸었던 건 아닐까.
국가와 국민이란 무엇이냐, 우연히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자동으로 국가 구성원이 되는 게 합당한가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빤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죠?" 라는 물음에 "아니" 라는 사람을 발견하고, 수상하게 여겨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는 단지 시내전화를 걸었을 뿐인데 "우리나라가 아니" 라고 하니까
자꾸 국제전화가 걸리는 줄 알고 신기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아무튼 그녀의 물음에 한 번쯤은
"네, 여긴 우리나라이고 저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라고 대답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최근엔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
심각한 고민이 끝났거나, 시시한 인간인 걸 눈치채고 감시를 끝냈거나, 국제전화가 걸린 게 아니란 걸 깨달았나 싶지만
어쩌면 우리의 지난 마지막 통화에서 너무 머쓱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날도 전화벨이 울렸고, 발신자 번호를 보니 그녀였다.
"네."
"……"
으레 "우리나라죠?" 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했는데 잠잠한 그녀.
아아, 드디어 그녀도 내 목소리를 기억한 모양이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녀는
'우리 헤어진 거 맞지?' , '그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거지?' , '알렉스의 병환엔 차도가 없다는 거죠?'
와 같은 희망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네, 아니에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의 희망을 앗아버린 매정한 인간이 된 듯 하여 마음이 켕겼는데
아무튼 그날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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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12) 200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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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면..발신자 번호보고
"우리나라 아닙니다."
하고 그냥 끊었을것 같아요(더 매정하죠?).
으허허허 놀라겠네요 ^^;
어쩐지 마지막이 슬퍼요;
아니 왜요! ^^
학교 생활은 어때요? 이제 중간고사기간 지나고 있겠어요. 기말고사 화이팅! (ㅋㅋㅋㅋ)
저 보단 친절하신데요...-ㅅ-; 핸드폰으로 온 전화가 아니라 집으로 온 전화라면.. 전 그냥 무시하고 끊어서리...-_-a
그라모 쫓아와서 혼내모 우얍니꺼. ^^;
'우리 헤어진 거 맞지?' , '그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거지?' , '알렉스의 병환엔 차도가 없다는 거죠?'
와 같은 희망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이부분이 참 마음에 들어요. ㅎ_ㅎ 언니의 비유는 최고!
으흐 고마워요~ 'ㅅ^
지금은 집전화를 없앤지 한참이지만, 마지막 집전화를 갖고 있던 24살쯤.
이사 후 새전화를 단 지 얼마 안되었는데 며칠 뒤부터 밤 12시면 어김없이 술취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미영이를 바꿔달라고 하는거야. 처음엔 잘못 걸었다고 했지. 한 두어번은 남자가 알겠습니다,하고 풀 죽은 목소리로 끊더니만. 며칠 뒤엔 전보다 좀 더 취한 목소리로 전활 걸어서는, 잘못걸었다는 내 대답에 제발 한번만 바꿔주면 안되냐며 거의 절망하는데 아 휴- 만나서 소주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니까. 물론 사주진 않았어. 이제 그만 잊고 새로운 여자 만나라는 멘트도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관뒀지. 아, 그러고보니 징그럽게 많이 지났네. 그남자 숱한 밤을 찌질하게 만들던 미영이 따위 잊고 잘 살고 있을만큼 말이여.
미영이를 찾았다고라.
휴... 나 때문에 누가 또 그 지경까지 되었구나. (어허!)
다시 또 전화가 오면 이렇게.
"제발 좀 너네 별로 돌아가!" ^^;
사실 어제 방심하고 있던 찰나 다시 전화가 왔는데, 이번엔 다른 여자분이었어요.
헌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
"우리나라 아니에요?" 라는 그녀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얼떨결에 "아니에요" 라고 쉽게(!) 뱉어버리고 통화 종료됐습니다. 으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