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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6
1.
낮에 원기 선생님과 회사 베란다에서 이야기하면서
'요즘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고 말하자 원기 선생님은
'진심이냐' 고 반문하며 내 안 좋은 상황을 이것저것 짚어주고 가셨다.

가끔 네이트톡에 들어가면
세상엔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살고 있구나- 하며 새삼 놀란다.
특히 연애 관련 글을 읽다보면 '뭐야 이건 누가 봐도 헤어져야 할 상황인데
왜 참고 있는 거냐' 라며 어이없어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이다.
계속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참다보면
그게 괴로워서라도 현실 자체를 덮어버리고 못 본 척 하게 되나보다.

하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충만 생각해도- 내 이십대 후반은 계속 그렇게 덮어오며 지나온 것 같다.
어릴 적엔- 적어도 이십대 초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과격하게 뒤엎었기 때문에
생활이나 진로, 인간관계 등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변화하곤 했다.

그래서 현실의 쓰린 부분을 얼렁뚱땅 덮으며 사는 지금은?
그렇게 덮어놓고 못 본 척 하는 것들 때문에
인생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는 건 마찬가지. 후후



2.
다른 사람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려 드는 건 끝이 없는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주로 친밀감-에서 자신을 확인하려 애쓰는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다거나 이것 참 대하기 힘든 사람인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 역시 내 눈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낙담하곤
당황한 나머지 그의 눈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리곤 한다.

알고있는 지식을 얘기하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사람도 있다.
주위 사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느닷없고 쉴 새 없이 자기가 아는 온갖 지식을 꺼내놓는 사람이 있는데
딱히 원치 않아도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준다는 점이 닮았다며
애인은 그에게 '네비게이션' 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손목시계 욕심이 유난히 많은 편인데
한정 할인 판매 중인 예쁜 시계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다가 참았다.



3.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은 욕심이 스물스물 생긴다. 아니 생겼다.
정확하게 말하면 꼭 작업실이란 걸 마련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집에서 독립해서 살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하지만 명분이 없는 상황. 가족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집과 회사는 지하철 네 정거장 거리밖에 안 되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굳이 작업실을 마련해도 좋은 이유를 꼽아보자면
'이제부터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 작업실에 가면 되지'
'회사에서 야근하다 늦어도 가까운 작업실로 걸어가면 되니까'
라는 설득력 떨어지는 얘기들.
서지에게 얘기하니 '그냥 참아' 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부동산 정보를 알아보니
회사와 가까운 곳에 의외로 싼 값의 월세방들이 나와 있다.
매달 방세가 나간다고 해도 출혈이 큰 정도는 아니라 솔깃했는데
전기 수도 요금, 난방비, 인터넷사용료 등등도 만만찮을 것 같고
결정적으로 '세탁기가 없잖아!' 란 대목에서 완전히 좌절했다.
그리고 역시나
매달 빠져나갈 그 돈으로 시계를 사면 대체 몇 개냐- 란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도 독립에 대한 욕구는 당분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2006/04/06 06:11 2006/04/06 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