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괴로워하지 않았다
(Y는) 남자의 허락 없이 남자의 아이를 가진 죄로 버림 받았다. (남자의 아이를 지우고 돌아온 Y는) 편의점에서 파는 3분 미역국을 쓸쓸하게도 혼자서 데워 먹었다. (Y는) 자신이 정말 죄인 같았다(고 회고한다) (또 다른 Y는) 자기의 허락 없이 제 아이를 갖게 만든 남자에게 화가 났다. (남자의 아이를 지우고 돌아온 또 다른 Y는) 회사에 병가를 내고 이불 덮고 끙끙 앓다 출근했다. (또 다른 Y는) 남자에게 개애새끼라 내뱉었다(고 회고한다) (또 더 다른 Y는) 남자의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이 괴로웠다. 가질 수 없는 남자의 아이조차 가지지 못하고 매달 생리혈이 터질 때마다 변기를 잡고 오열했다(고 회고하는 것조차 끔찍하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Y와 또 다른 Y는 또 더 다른 Y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 줄 알어? (Y의 말이다) 무책임한 자식 때문에 상처 입은 건 결국 나 뿐이었어. (또 다른 Y의 말이다) (그러자 또 더 다른 Y가 말한다) 나는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싶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해하고 당혹스러워할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 그의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전하며 나 역시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 지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바라는 건 나의 평안이 아니야 그의 고통이야. 그의 아이를 품었다 죽이는 과정을 나는 끝내 해내지 못했어. 그는 내게서 즐거움만 얻고 도망가 버렸어. 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가 없구나. (Y와 또 다른 Y는 또 더 다른 Y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또 더 다른 Y의 옛 남자가, 또 또 더 다른 Y가 아이를 갖자 괴로워하긴커녕 그녀와 홀랑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옛 남자가 어떤 사람인 지 알아봐야 또 더 다른 Y에게 득 될 것 하나 없을 것 같아 잠자코 있기로 한다) (그는 괴로워하지 않았는데도)
(200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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