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에 해당되는 글 6건

  1. 새벽 (8) 2009/06/29
  2. 기록 (6) 2009/04/12
  3. 거짓말들 (6) 2008/09/22
  4. (이야기) 움막 마을 (3) 2007/11/30
  5. (이야기) 인정 (2) 2007/11/26
  6. 부인할 수 없는 것 2003/10/08

1.
밤참은 간단히 먹는 것이 좋겠지만
냉장고엔 떡도 있고, 오뎅도 있었다.
그런데도 떡볶이를 해먹지 않는 건 옳지 않다. 죽어서 떡을 볼 면목도 없을 거야.
만들어서, 잘 먹었다.

2.
몇 시간째 포토샵 지우개질만 하고 있었다.
어깨랑 손가락 아픈 걸 빼면, 이런 단순한 일 계속하는 거 싫지 않다.
전공 과목 중에 타피스트리란 게 있다. 쉽게 말해 사람 손으로 실을 한 줄 한 줄 엮어 천을 짜는 건데
난 그걸 잘하진 못해도 좋아하긴 했다. 맨 밑에서부터 한 줄씩 실을 얹는다. 정해진 위치에 필요한 색깔의 실을 바꿔가며 엮는다. 가만히 앉아 몇 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일 이 센티 올라가는 더딘 작업이지만 그걸 하고 있는 게 좋았다. 공상도 실컷 했다가 온전히 눈앞의 작업에만 정신을 두기도 했다가 하면서.

3.
이십대 때 가장 컸던 화두가 '기억'이었다면
삼십대 들어서 대표 화두는 단연 '인정'이다.
이런저런 것들. 인정하고 나면 모두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겁이 났었지만  
포기하게 되거나 잃는 것이 있는 대신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들이 있더라고.






2009/06/29 04:24 2009/06/29 04:24

2007년 어느 날의 메모






2009/04/12 17:35 2009/04/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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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은 두 남자 이야기.
둘 다 이십대 후반이고, 거짓말을 잘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거짓말이란 게 대단히 나빠서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수준이 아니고
뭐랄까 본인에 대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하며 산다는 정도랄까.
첫사랑이 불치병으로 죽었다거나
본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있다거나
집에서 그냥 쉬었을 뿐인데도 어디 혼자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말하는 거다.
심지어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자기 직업에 대해 속이는 그런 거짓말.
두 남자의 거짓말들은 굳이 그런 거짓말을 안 해도 될 상황인데 했다, 는 점에서 닮았는데
이야길 듣다 보니 그 친구들 참, 관심 받고 싶었구나란 생각에 안쓰러웠다.
이 정도 슬픈 과거쯤 있어야 누군가 관심을 가져줄 것 같고
이 정도 상처는 갖고 있어야 저이의 시선을 끌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에서 그렇게 자꾸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타인에게 기대하는 관심이 미움이나 경멸은 아닐테고
결국 애정이다, 라고 보면
그이들은 애정에 고픈 것이다. 사랑 받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더욱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너무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그 기대치에 맞추어 변화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을 정말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만
그 방법이 거짓말이 되는 순간
자신이 너무 쉽게 변신해 버린다. 너무 쉽게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그래서 그 쉬운 방법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거짓말로 자기를 포장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내 직업을 솔직하게 얘기해도 식구들은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면, 거짓말까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쉬는 날 집에서 티비 보고 방귀 뀌며 빈둥거렸다고 친구들이 무시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면, 굳이 우수에 찬 여행을 다녀왔단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좋았을 거다.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주위에서 좋아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저런 거짓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거절하면 저 사람이 싫어할 거란 생각에 무리한 부탁을 다 들어주고
가난하면 저 사람이 실망할 거란 생각에 카드빚을 내서라도 돈을 쓰고
화를 내면 저 사람이 날 떠날 거란 생각에 꾹 참으며 끙끙 앓는 것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거짓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 동안 내 행동들을 떠올려 봤다.
자신감이 없어서 여러가지 마음에도 없는 짓을 많이 해왔다.
굳이 말하지 않는 건 속이는 게 아니라며 절대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들,
누군가에게 버려지기 싫어서 내 일을 젖혀두고 남의 일을 열심히 도와줬던 시간들,
내가 아직 너무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에 애태우고 괴로워했던 순간들,
마음에 없는 공부를 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마음에 없는 웃음을 지었던 날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나는 자신감이 없어 솔직하지 못했고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래서,
대체 어디에서 자신감을 얻으면 되는 걸까. 왜 그렇게나 부족할까.
유년기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듬뿍 받지 못하고 자란 걸까?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던 어린 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이제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대로의 나도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굳게 믿는 마인드 컨트롤? 말이 쉽다.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모습에서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아.
어쩌면 우린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조바심과
나 자신을 인정하는 괴로운 과정을 되풀이하며 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2008/09/22 16:59 2008/09/22 16:59

움막 마을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곤 무작정 전국 일주를 떠올렸고
배낭 하나 메고 집을 나선 지 꼭 한 달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달력상으론 초가을이었지만 그 해따라 늦더위가 기승이었습니다.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며 걷던 나는, 지도에 없는 마을 입구에 다달았습니다.
5km는 더 걸어야 하는 어느 마을에 묵을 계획이었지만,
더위와 피곤에 지친 상태였기에 일찍 여장을 풀기로 결심했지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동안 지나친 곳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금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습니다.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죠.

분명히 사람이 우는 소리였고
그것도 여러 명이 우는 게 분명했습니다.
어떤 울음은 나직하게 흐느끼는 소리였고
어떤 울음은 차라리 외친다고 해야 할 정도로 통곡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척 섬뜩해졌지만, 한편으론 그 울음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논둑길을 따라 걷다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들판 곳곳에 허름한 움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움막들마다 사람이 들어가서 울고 있던 겁니다.
소리의 근원지를 알아낸 나는 조금 전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이런 괴상한 일이 또 있을까요?

차마 움막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진땀을 내며 머뭇거리고 있던 내게, 러닝셔츠 바람의 노인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거기서 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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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대체 사람들은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말입니다.

"여행 중에 들렀습니다."
"묵을 곳이 필요해? 그럴 만한 집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서 밤을 보낼 생각은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럼 뭐하러 여기에 가만 서 있는가?"
"다른 게 아니고, 어르신, 저기 움막들마다 사람이 들어가서 우는 게 맞습니까?"
"그렇지."

"……대체 왜들 저러고 있는 겁니까?"
"인정하고 있는 거지."
"네?"

"인정하게 된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뭐를 말입니까?"
"뭐긴. 어떤 거라든 말야. 자넨 그게 뭐가 됐든 인정하기 쉬운가?"
"……네?"

"다들 다른 이유로 들어가 있는 거여.
살다 보면 말이지, 뭐든 인정해야 할 때가 생기는 법이거든.
개인사가 됐든 집안 일이 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인정할 일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란 말야.
근데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이거든.
자네 한 번 생각해 봐. 이건 쌀이다, 라고 한 평생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보리라는 거야. 날벼락이지.
그래서 다들 인정할 게 생기면 저기 들어가서 우는 거야.
시원하게 울고 나오는 거라고."

"그럼, 어르신도 저기 들어가신 적이 있습니까?"
"원, 당연한 소릴. 내가 강철로 된 사람인가?"

노인의 말은 어처구니 없었지만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 풍습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는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 걸음을 돌리려다가, 마지막으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꼭 저런 데 들어가서 우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번데기 고치 같은 거야. 벌레도 고치에 들어갔다 나오면 훨씬 강해지지."
"예."

잠시 그 마을에 머물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습니다.
그랬다가는 내가 인정해야 할 것들이 한없이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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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00:19 2007/11/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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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어느 날 나는
뭔가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대체 뭘 인정해야 하지?"

인정하게 될 것이 뭔지도 몰랐지만
머릿속엔 계속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위 말이 맴돌기 시작했지요.

슬프고 또 두려웠습니다.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이제부터 착실히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계기로
무엇을 인정하게 될 날이 올지, 눈꼽만큼이라도 알아야
만반의 준비까진 아니래도- 마음이라도 단단히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나는 완벽하게,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뭘 인정하게 될 건지
그 날은 언제쯤일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결국 인정하게 될 미래 때문에 울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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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02:16 2007/11/2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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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8 02:11 2003/10/08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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