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 날씨를 내다보며 따분해하고 있는 오후에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장미영 부장님이시죠?"
모르는 목소리다. 그런데 부장님 운운하며 농담을 건네는 걸 보니
안면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친하지 않은 사람의 느닷없는 농담에 관대하지 않은 지라
냉담한 어조로 응했다.
"누구시죠?"
"ㅇㅇ은행입니다."
아 재미까지 없어. 더 냉담하게 대꾸했다.
"그런데요?"
"다름이 아니라 내일 오전에 저희가 장미영 부장님 회사로 찾아가서
직원들에게 몇 가지 상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선물도 드리구요.
괜찮을까요?"
캑.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상품 소개란 말보다 '선물' 이란 말에 혹한 나는 덜컥 '괜찮습니다' 라고 해버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대방의 말.
"직원이 몇 명 정도 되나요? 저희 직원이 가서 모두에게 설명을..."
순간 전직원을 앞에 놓고 상품 소개를 하는 은행직원과-
그 옆에서 내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저기 제가 일개 직원 주제에 부장 행세를 해서 설명회를 열어도 좋다고 승낙했는데
다들 바쁘신 것은 알지만 잠시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선물도 준다잖아요'
라고 변명하는 광경이 그려졌다. ......두려웠다. 그래서 말했다.
"다 함께 설명을 듣는 건 불가능하겠는데요.
부서가 네 다섯 명씩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내일 말고, 다음 달에 아주 싹싹한 여직원을 보내서
(그룹 별) 설명을 하라 해야겠군요."
다행이다. 그런데 어디서 내 연락처를 봤기에 '부장'이란 되도않는 정보를 얻은 걸까.
"그런데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나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정보수집능력이 뛰어납니다.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마세요, 다치십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기어이 내가 부장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달에 전화가 다시 오면 목소리를 바꿔
'장미영 부장은 회사 돈을 횡령하고 도망갔다' 고 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부장으로 둔갑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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