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에 해당되는 글 1건

  1. 커밍아웃에 대한 대체의 생각 2000/09/29
예, 커밍아웃.

홍석천 때문에 세상이 뒤집어지기 까진 아닌 것 같고, 다만 말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 바빠진 것 같이 보이네요. 연예인 누가 결혼 전에 섹스를 몇 번 했다는 것으로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아닌가요.(솔직히 할 일 디럽게 없다고 봅니다. 하여 홍씨 일에 대해서도 아무 말 안 하려 했는데 오빠 질문을 받고 제 생각을 나름대로 써 봅니다..)

오빠는 홍씨가 동성애자인 것이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셨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동성애를 대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은 "넌 왜 키큰 여자를 좋아하냐" "넌 왜 느끼한 남자를 좋아하냐" "왜 너는 얼굴이 작냐" "다른 사람들은 살을 빼려고 하는데 왜 너는 찌운 거지?" 등등의 시비와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비에 대응할 대답이란 "내 맘이지 시바야" "네가 왜 펄펄 뛰고 난린데? 너한테 피해준 거 있어?" 밖에 없지요. "난 왜 키큰 여자가 좋을까.." 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괴로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며, 당사자는 자신이 키큰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못하고 괴로워하며 죄책감까지 느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쓰잘데 없는 시비를 거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며, 그 대상이 소수일 경우엔 왕따나 폭력,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지요. 솔직히 전 이런 류의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하며 그들의 사고란 '다르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다가 나보다 힘이 없는 걸 알고 느끼는 만족감, 그로 인한 비겁하고 황당한 폭력적 태도'에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인간적인 존경심을 잃게 되어 어느 정도 선을 두게 됩니다.

홍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은(언론때문에 아웃팅이 되어 버렸다지만) 사실 놀랄 일이라고 보는데요,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과 고민을 상상해 보셨나요. 더구나 여기는 겁이 많아 똘똘 뭉치기 좋아하는 한국이고, 공인인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은 놀랍기도 하면서 반가웠지요. 그리고 어떤 반응이 올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신문잡지에선 간만에 기사꺼리가 났으니 그에 관한 기사들을 싣고는 있고, 인터넷 여기저기에도 토론방이 개설되는 모양입니다만, 결론은 "오양 비디오 때보단 못하다"였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이 얘기를 화제로 삼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입에 올리는 것이 저 자신 아무 것도 아닌 개인이지만 그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한 성인 여자가 혼전에 애인과 섹스를 했고 비디오로 찍어뒀다고 온 국민이 흥분해서 떼로 비디오를 구하고 본 것을 자랑스러워 하던 그 분위기만은 못 하더군요.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이번 홍씨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지금보다 더 큰 시끄러움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다른 이유 없이 출연정지를 당하고 언론의 공격을 받으며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상황에 맞서서 또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지 말라"하며 일어서길 바랬습니다. 양측의 목소리가 오가는 사이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올랐으면, 하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막연히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질 뿐, 평소엔 그들의 존재 자체를 염두에 두고 살지 않으니까요. 그런 것을 변화시킬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와 계기란 필요하니까요. 물론 홍씨가 그 와중에 겪을 고초는 짐작합니다만.. 쓸데없는 호들갑이란 불필요하지만 이런 호들갑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지금 상황을 보면 단순히 "저 자식 게이래"라는 호들갑일 뿐, 그냥 이렇게 홍씨가 상처를 안고 사람들은 그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된 상태로 끝나버리면 소중하고 용기있던 그의 커밍아웃이 빛을 잃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오양 비디오 사건이 있을 때 그가 도피를 하지 말고 당당했더라면, 그리고 비디오를 복사해 판매한 사람이든 사다가 본 사람이든 인터넷에서 구해다 본 사람이든, 모두를 상대로 고소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더랬습니다.. 이 얘기를 하니 어떤 사람은 "그렇게 따지면 나도 봤는데 그럼 나도 고소당해야 하냐"고 펄쩍 뛰더군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지요. 물론 그 많은 인간들(많이도 봤지요)을 전부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상징적인 의미로 말입니다. 그랬더라면 그에게는 상처 외의 무엇, 다른 이들에겐 관음증의 흥분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남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여 저의 바램이란 홍씨가 홍씨의 의견을 묵살하고 아웃팅 시켜버린 일간스포츠와, '윗분들이 불편해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출연정지를 시킨 뽀뽀뽀와, 또 다른 어느 시트콤의 관계자들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승소와 패소를 떠나 상징적인 의미로라도. 뻑하면 고소하는 힘있는 넘들의 법 이용하기를 혐오하는 저이지만 분명하고 힘없는 피해자가 하겠다는데 누가 말립니까. 홍씨 개인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용기가 가십거리로 전락하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그는 지금 충분히 힘들겠지만 당당히 맞서서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서모님의 물음에 답변



2000/09/29 07:00 2000/09/29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