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에 해당되는 글 19건

  1. (이야기) 청첩장 (3) 2010/09/20
  2. (이야기) 꿈 2009/10/19
  3. (이야기) 악몽 (12) 2008/11/02
  4. (이야기) 밤하늘 (19) 2008/10/17
  5. (이야기) 아버지 (9) 2008/10/06
  6. (이야기) 아는 사람 (23) 2008/08/03
  7. (이야기) 가짜들 (5) 2008/03/02
  8. (이야기) 말 (6) 2008/01/19
  9. (이야기) 한 마디 (4) 2008/01/03
  10. (이야기) 노란 잠 (10) 2007/12/28
  11. (이야기) 콩氏 (11) 2007/12/14
  12. (이야기) 그 아이 (4) 2007/12/01
  13. (이야기) 풍선 (6) 2007/11/30
  14. (이야기) 움막 마을 (3) 2007/11/30
  15. (이야기) 인정 (2) 2007/11/26


청첩장




나는 아까부터 청첩장 하나를 앞에 두고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회사로 배달된 청첩장은 특별할 것 없이 흔하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예비 신랑 신부의 사진, 예식장 약도, 축복을 바라는 글귀까지
뭐 하나 어색할 것 없는 평범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모두 잠든 이 시각까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청첩장에 적힌 이들의 이름이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나는 일전에 기억을 먹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술에 취해 골목을 헤매다가 그 아이와 마주쳤고
기적처럼, 원치 않는 기억들은 모두, 그 아이가 먹어 주었습니다.
동이 터서 그 골목을 뜰 당시엔, 세상에서 가장 홀가분한 사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적이었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태어나서 받아 본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이었어요.

그런데 아뿔싸,
나는 그만 가장 중요한 기억을 먹어달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가 내 기억을 먹어 주었다는 기억도
함께 먹어 달라 부탁해야 했던 것을.

나는 그 아이가 어떤 기억들을 먹어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차마 기억하기엔 괴로웠던 기억들, 깡그리 버리고 싶던 기억들이었을 것이다-
라고만 짐작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까부터 이 청첩장에 적힌 이름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라면, 그 아이가 먹어준 이름일 테니까요.
그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부터 거래처 직원들, 학교 동창들, 멀고 먼 친척들까지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이 이름들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아시겠어요?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깡그리 버리고 싶던 걸까요.
무슨 기억이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걸까요.
지금 청첩장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주길 바라는 이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 주었던 걸까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이렇게 의심하며 살게 되는 걸까요?









2010/09/20 02:01 2010/09/20 02:01





잠잘 때, 나는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갑니다.
자동차를 얻어 타듯 남의 꿈에 들어가
그의 꿈을 함께 겪는 것이죠.

내가 어릴 적,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휴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낮잠을 자며 꾼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꿈에서 커다란 돼지를 본 아버지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고 있었고
이야기를 듣는 식구들도 덩달아 조금씩 들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채만한 돼지 위에 나랑 막내랑 올라타서 우리 동네를 벗어난 다음에,
가만, 그리고 어디로 갔더라?"
"약국 삼거리로."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아버지는 잠시 놀랐지만, 우연히 맞춘 것이려니 하셨지요.

"맞아. 삼거리로 나갔어. 그런데 이놈의 돼지 새끼가 거기에서 딱 멈추더니."
"돼지가 갑자기 앉아 버려서, 아빠가 돼지를 막 때렸어!"

나는 신이 나서 내가 본 장면을 크게 떠들어댔습니다.
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너 그걸 어떻게 아냐?"
"같이 있었으니까."

나는 당연한 걸 물어보는군, 생각하며 대답했습니다.

"허허, 이 녀석 봐라. 아빠 꿈에 네가 나왔다고, 꿈 내용까지 안다는 거냐?"

식구들은 깔깔 웃었습니다.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죠.
내가 아버지의 잠꼬대를 듣고 아는 체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식구들의 꿈에 대해 아는 체하는 일이 계속되자,
이윽고 식구들도 내 말이 사실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식구들은 꿈을 꾼 다음 날 아침이면, 자기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맞춰 보라며 재촉했습니다.
내가 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식구들은 깜짝 놀랐고,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더욱 신나게, 더 자세히 이야기하곤 했지요.
언젠가부터 아침마다, 간밤에 꿈을 꾼 식구가 나를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꿈에 보인 숫자들이 가물가물하면 내게 물어보고 복권을 사러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간밤에 잠시 인사한, 세상을 뜬 친척이 누구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누나는 종종 자기가 기억 못한 꿈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형은 하늘을 날던 자기의 모습이 멋지지 않았냐며 으스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들 나를 껄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은 참 기이한 것 아닙니까.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게 꿈 아닙니까.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게 꿈 아닙니까.
아버지는 이웃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전에 만났던 남자와 밀회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누나는 식구들이 모두 죽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시로 나가는 꿈도 꾸었습니다.
형은 학교 선생들을 때려 눕히고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런 꿈을 꾼 식구는 다음 날 아침에 나를 못본 체했습니다.
식구가 그런 꿈을 꾼 다음 날이면 나도 우울한 심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체 누가 무슨 꿈을 꾸어서 애 표정이 저 모양이냐고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꿈에 어떤 여자들이 나오는지 말하라고 다그쳤습니다.
누나는 자기 꿈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쏘아 붙였습니다.
형은 눈을 부라리며 나를 겁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은 점점 말이 없는 조용한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식구들의 꿈을 못보게 된 척 하기도 했지만,  꿈속에서 완벽하게 숨지 못하고 자꾸 들키고 말았지요.

"저놈은 개가 꾸는 꿈도 엿볼 거야."

어느 날 아침, 형은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 내뱉었습니다.
사실 나는 우리가 기르던 개의 꿈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개는 밤마다 현관문을 직접 열고 집을 나가, 마음껏 뛰어놀다 들어오는 꿈을 꾸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얘길 꺼낼 수는 없었지요.

"괴물이야, 저 새낀."

형이 계속 떠들었지만 아무도 막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남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곤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방 세 칸짜리 집으로 이사하자, 식구들은 가장 어린 나에게 독방을 따로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기숙사 학생들의 꿈에 들어갔지요.

더이상 가족의 꿈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기숙사 생활 첫날부터 같은 방 아이들의 꿈들에 시달렸습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된 남자 아이들은 음란하고 난폭하고 괴상한 꿈을 꾸기 일쑤였습니다.
행여라도 아이들이 한꺼번에- 내가 모두의 꿈에 나타나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일이 벌어질까봐
나는 수많은 여자와 귀신과 별 희한한 싸움들을 피해가며 요리조리 숨어 다녔답니다.

더욱 곤란했던 것은, 매일 밤 온갖 꿈속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게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다가 무엇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면, 상대방이
"어? 그건 내가 꿈에서 한 행동인데" 라고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던 것이지요.
결국 나에 대해 눈치채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재수 없는 놈이라며 화장실에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날, 나는 졸업할 때까지 수업 시간 외엔 한번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났습니다.

그 후의 일들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되실 겁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면제를 많이 먹고 곯아떨어져 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밤낮을 억지로 바꿔 보려고도 했지만, 밤이 되면 나는 여지없이 잠에 빠지고
옆에 있는 누군가의 꿈속을 거닐고 있었던 겁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청년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도저히 함께 밤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어딘가엔 내가 모두 보아도 서로 곤란해지지 않을-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만 꿈꾸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한 적도 있습니다만은
꿈은, 욕망과 금기와 무질서가 뒤섞이는 것이더군요.

이제 더이상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사람들 말처럼, 나는 괴물이니까요.

그러니 어르신, 제발 하룻밤만이라도 댁에서 자는 것을 허락해 주셔요.
어르신 옆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누구든 악몽을 꾸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어떤 끔찍한 꿈이라도 좋습니다. 그 꿈 때문에 미쳐 버리게 된대도 상관 없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닌
내 꿈을 꾸어보고 싶으니까요.






2009/10/19 02:40 2009/10/1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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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내 태몽은 귀신이었네.
어머니는 나를 밴 아홉 달 내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가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쇠약으로 돌아가셨네.

나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잠자는 그 누구라도
소름끼치는 악몽을 꾸게 만드는 사람이라네.

아버지를 비롯해 그 어떤 친지도 나를 데리고 살려 하지 않았네.
어릴 적 학교에서 간 수학여행에선
첫날 밤부터 자다 일어나 울부짖는 아이들로 숙소가 아우성이었네.
군대에서도 쫓겨났네. 사고와 자살이 속출했으니 당연한 조치였네.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없네.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네.
구멍가게 안쪽에서 주인이 졸고 있으면, 전화를 걸어 깨우고 들어가네.

주어진 명줄이 있으니 어찌어찌 살아왔지만 너무나 외로웠네.
나는 누구의 옆에서도 잠들 수 없네.
잠든 누구의 옆에도 있을 수 없네.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개를 데려온 적이 있네.
개는 며칠 밤낮을 깨갱거리다 끝내 달아나 버렸네.
금붕어는 어항 밖으로 뛰어나와 죽는 편을 택했네.

사랑을 할 수 없었네.
연정을 품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모두 떠났네.
밤을 보내면 밤을 보내서 떠났고
밤을 보내지 않으면 밤을 보내지 않아서 떠났네.

내 평생 다른 소원을 가져본 적 없네.
소원이라곤 단 하나라네.
누군가를 안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고 싶네.
누군가와 평화롭고 조용한 밤을 보내고 싶네.
사랑하는 여인이 자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쓰다듬어 보고 싶네.

내가 마을과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
이렇게 깊은 숲속의 밤인데
이야기하는 동안 이 주위에서
부엉이며 산짐승, 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네.

자, 여행으로 지친 자네
오늘 밤 근방에서 딱히 잘 곳이 없다는 건 알지만
하룻밤도 재워줄 수 없다고 거절한 건 그래서라네.
그러니 부디 야박하다 생각하진 말길 바라네.





2008/11/02 19:25 2008/11/0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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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할머니와 동네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밤하늘은 아주 어두워서,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봐야
반짝이는 작은 별을 몇 개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늘이 까매요, 할머니."

"그게 말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엔 지금처럼 밤하늘이 어둡지 않았단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살아 계시던 때 말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기억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어두운 밤하늘이 되었단다."

"기억을 버려요?"

"그래. 세상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버린 기억들도 많아지기 시작했지.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거나 짐이 되는 기억들을 잘라내서 버리곤 한단다.
하지만 그런다고 완전히 버려지는 게 아니거든.
기억이란 건 그렇게 버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버려진 기억들은 조용히 하늘에 올라가, 어두운 별이 되어 박힌단다.
어두운 별이 점점 더 촘촘히 하늘에 박히기 시작하면서
밤하늘이 더욱 어둡고 무거워졌지.
그리고 그 별들은 자기를 버린 사람을 조용히 내려다 보는 거야.
그래서 모두 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밤 언덕길을 오르는 두 어깨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는 거란다."

"아아……. 그러면 어떻게 하죠, 할머니?"

"걱정하지 마라, 얘야. 마음이 있으니 괜찮다.
살아가면서 네 마음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다시는 그 조각들을 이어붙일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지.
하지만 마음이란 것도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어느 순간 다시 이만큼 자라 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야.
잘 자란 마음은 깨진 조각마저 하나하나 다시 온전한 마음이 되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기도 할 정도니까.
그럴 땐 어두운 별들이 아무리 네 어깨를 눌러도 괜찮은 거야."

"할머니도 그러셨어요?"

"그럼. 네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늘 그런 마음이었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할머니에게 와서 잘 자라주었거든."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쥔 채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저 까만 하늘 어딘가에 박혀 있다는,
빛을 내지 않는 어두운 별들이 나를 무섭게 내려다 보는 것 같았지만
이내 안심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으니까요.

"네가 모르는 사이에 너에게도 내 마음을 주었으니
너는 아무 걱정 말아라, 아가."





2008/10/17 22:55 2008/10/17 22:55


아버지



아버지는 풍선을 타고 다니는 남자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풍선을 타고 어머니에게 날아왔을 때,
당연하게도 어머니는 무척 놀란 한편
머리에 묶고 있던 긴 끈을 풀어, 엉겁결에 아버지를 나무에 묶었습니다.
그날은 더할 나위 없이 이상한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공원 의자에 앉아 있던 어머니에게
기억을 먹는 아이가 다가와 어머니의 기억들을 먹고 사라지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풍선을 타고 다니는 남자가 나타난 것이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나무에 묶인 채로 한숨을 돌리고,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풍선에 매인 몸이 되어, 풍선이 날아가는 대로 여기저기 떠돌다가
모처럼 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어머니는 당신의 손목에 아버지의 손목을 묶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창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기 쉬웠기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날아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신경 써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식탁에 매여 식사했습니다.
침대에 매여 잠을 잤습니다.
어머니의 다리에 매여, 태어나는 저를 받았습니다.
어딘가로 외출할 때면 어머니의 손목에 매여 걸었습니다.

풍선을 타고 다니는 아버지를 모두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두 분은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풍선 덕에 다른 부부보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은 두 분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두 분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외출을 할 때면, 아버지는 꼼짝없이 집안 어딘가에 묶여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일할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일하러 다니기 시작하자
처음엔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어머니를 기꺼이 기다리던 아버지도
언젠가부터 그 시간을 견딜 수 없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날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거실 탁자에 묶어두고 외출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는 울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다시 날아다니는 편이 낫겠어.”
“그렇지만 여보. 당신은 날아다니면서 너무 지쳐 있었잖아요.”
“그래. 하지만 이렇게 늘 여기서, 당신이 오기만 기다려야 하는 게 더 힘들어.”
“그렇다면 이제부턴 어디든 함께 다녀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다닐게요.”
“여보. 그건 풍선을 타고 다니게 되는 것보다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잖아.”
어머니는 우는 아버지를 붙들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는 현관 문을 활짝 열어놓은 다음
잠든 아버지를 침대에 묶어놓았던 끈을 조용히 풀었습니다.
아버지는 잠든 채로 어디론가 날아갔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기에,
어릴 적부터 듣고 또 들어온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발견한, 화장대 서랍 안쪽에 곱게 개켜 있던 낡고 긴 끈이
바로 아버지를 묶고 있던 끈이 아닐까 상상해볼 따름입니다.
아버지가 정말 풍선을 타고 다녔다면 말입니다.






2008/10/06 18:08 2008/10/06 18:08
아는 사람



"아이고, 송부장님, 반갑습니다. 제가 이대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어떻게, 회의실로 자리를 옮길까요?"

"아, 아닙니다. 다른 분들 일하시는데 방해가 안 된다면 저야 괜찮습니다."

"방해는요. 신경쓰지 마세요. 사실은 회의실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여기 있는 게 시원할 겁니다, 허허."

"에어컨이 고장났습니까? 제 친구의 동생이 엘지 서비스센터를 다니는데. 어디 제품인가요?"

"아, 그렇잖아도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부장님, 고향이 어디십니까?"

"난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이 고향이시군요. 서울 어느 동에 사셨습니까?"

"한남동에서 나고 자랐지요."

"용산구 한남동이요. 부근에 이태원이 있고 보광동이 있지요. 거기에 오산고등학교라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제가 거기 나왔어요."

"아, 그러십니까? 거긴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지 않습니까? 제 대학 동기가 오산중을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부장님 후배가 되겠네요."

"아, 아니에요. 난 중학교는 장충중을 다녔어요."

"그렇습니까. 장충중학교요. 저기 약수동에 있는 학교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도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걸로 압니다. 고등학교엔 야구부가 유명하지요. 장충중을 나온 사람이 보자……. 아, 멀리 갈 거 없이 바로 제 매형이 장충중을 나왔네요. 부장님이 몇 년생이시지요?"

"62년생입니다."

"62년생, 범띠셨군요. 그럼 잘하면 저희 매형을 아시겠습니다."

"아, 매형이 범띠십니까?"

"매형은 67년 양띠이지만. 혹시 김도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모르겠네요."

"지금 작은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 하고 있습니다. 부장님 후배가 되겠네요. 말씀하실 때 억양이 살짝 다른 지방 같아서 고향을 여쭤봤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부장님 아버님 때부터 계속 서울에서 사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친가가 서울 토박입니다."

"외가는 어디십니까?"

"외가는 충청도 집안이지요."

"충청도요, 부장님 억양에 섞인 말투가 충청도 사투리였나 봅니다. 충청도 어딥니까?"

"천안입니다."

"천안. 충남 천안. 좋은 동네죠. 그래도 천안은 사투리가 심하지 않은데 희한하네요. 그쪽 출신 중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가 천안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투리가 안 심했는데. 혹시 천안에 순천향병원 아십니까? 그 친구 집이 거기 근처랩니다. 천안 바로 옆엔 아산이라고 있습니다. 거기가 고향인 사람도 두 명 압니다. 예전에 저희랑 같이 일하던 곳 차장님이 아산생이라고요. 그 분은 거기서 나고 자라고 했다는데 서울 와서 오래 살아선진 몰라도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 억양이 전혀 충청도 같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그 차장님의 아는 사람이었는데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요. 고향 후배라나 했는데 그 사람도 말하는 것만 듣고선 서울 사람인가 싶었는데요."

"그랬군요."

"저는 경북 영주 출신입니다. 혹시 영주에 아는 사람 계십니까?"

"없습니다."

"영주는 작은 동네라 거기 출신이라면 웬만하면 서로 다 아는 사이라서요. 특히 저랑 비슷한 나이인 영주 출신이 있다면 열에 아홉은 분명 저와 아는 사이일 겁니다. 영주 주위엔 예천, 봉화, 안동이 있지요. 거기 출신들은 아는 분이 안 계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예천, 봉화, 안동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희 회사에 곽차장이라고 있습니다. 알고보니까 그 분 사모님이 예천 출신이더라구요. 봉화엔 저희 아버님 친구분들이 사시는데 아직도 정정하신 분도 있고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안동은 전에 일하다가 밖에서 만나서 사귀게 된 되게 웃기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매제가 안동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사람을 잘 웃기는 지 모릅니다. 아주 뒤집어집니다."

"매제가요?"

"아뇨. 안동에서 온 건 제 친구 매제, 웃기는 건 제 친구.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얘기가 딴 길로 빠졌습니다."

"허허, 그렇군요."

"중학교는 장충, 고등학교는 오산, 이렇게 다니셨다고요. 좋은 학교 나오셨습니다.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주로 유아, 아동 서적 펴내는 데서 편집자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총각일 때 자취를 했는데 저는 그때 만났었죠. 그때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오산고를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은 제 어릴 적 불알친구의 사촌형님도 오산고 출신입니다. 저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참 멋진 분입니다, 아주 호탕한 것이. 지금 뭐라더라 홈쇼핑 회사 있지 않습니까? 그쪽 일을 하신다고요."

"홈쇼핑 방송 제작 같은 걸 말씀하시나 보군요."

"그런 거 비슷한 건가 봅니다. 하여간 그 형님이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전에 노래하던 그 가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뭐 그런 노래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가수랑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개그맨이며 배우며 많이 안다더라구요. 드라마에 꼭 사채업자로 나오는 사람 있습니다. 뱃살은 이렇게 나와가지고 티비엔 어쩌다 가끔 나오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도 아는 사이라 하고. 그리고 가만 있자, 오산고 나온 사람이 또 있는데. 아… 그… 또 있습니다. 분명히 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부장님, 그럼 대학은 어디 나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동대 나왔습니다."

"동대. 크으. 신경림 선생이 동대를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분이 동대 영문과를 나오신 걸로 압니다. 제가 그 분을 아주 좋아해서 예전에 책 참 많이 읽었습니다. 저기 정치인 중에 권노갑이라고 있지요, 그 사람도 동대를 나왔다고 들었는데 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동국대 나온 분 많이 알지요. 일단 저희 큰아버님이 동대 나오셨습니다. 학교 선생 하시다가 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에 박실장이라고 있습니다. 그 분도 제가 알기로 동대를 나오셨지요. 그러고 보니 아는 형님 조카도 이번에 동대에 입학했다던데. 부장님은 무슨 과 나오셨습니까?"

"국문괍니다."

"국문과. 그아도 국어 무슨 과던데. 아, 국어교육관가 봅니다. 동대에 국문과랑 국어교육과랑 따로 있지요? 그아는 국어교육괍니다. 부장님은 국문과시라고요. 저희 사무실에 국문과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연대 국민대 세종대 한성대 숙대. 아, 상명대도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일 얘길… 어디 설명을 들어봅시다."

"아이고, 제가 아는 사람들 얘기가 나오다 보니 반가워서 그만. 먼저 이걸 한 번 보십쇼. 기획안입니다."

"어디 봅시다. 에……. 가만, 이 부분은 시에서 허가 받으려면 골치가 아프겠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바로 며칠 전에 기사가 났어요. 거기 정배씨, 그 기사 스크랩한 것 좀 가져와 봐. 이게 그냥 발표한 수준이 아니라, 시장이 아주 단호하게 잘라 말한 게 기사에 났어요."

"지금 우리 시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요."

"시장 그 사람이 말입니다,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제가 아는 형님의 친한 고등학교 선배의 은사님의 조카라던가 그렇더라구요."

"이대리 이제 그만 해. 아니 그게 무슨 아는 사이야?"

"예?"

"아까부터 참았는데 더는 못 참겠네. 그렇게 따지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 모두 시장이랑 아는 사이가 된 거잖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면 우리 다 아는 사이지. 가서 시장한테 전해. 아는 사람 한꺼번에 일곱 명 더 생겼다고. 좋겠네 아주 그냥. 시장이 대통령이랑 알고 대통령이 각국 정상이랑 아니까 이제부터 거기랑도 다 아는 사이야. 그런 분한테 미안하지만 이거 다시 기획해 와.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해야겠어. 아니, 시장은 아는 사람이면서 이런 귀띔도 미리 안 해주고 뭐했대?"






2008/08/03 18:02 2008/08/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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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들




 "가짜네요."
 "예? 설마요?"
 "제법 만들긴 했는데 가짜예요. 우린 안 삽니다."
 "말도 안 돼. 그건……."

 '그건 결혼 예물인데요' 라는 말을 못 잇고 꿀꺽 삼켰습니다. 시계를 준 전남편의 얼굴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오른 것도 찰나, 고가
귀금속만 현찰로 매입하는 화려한 매장에 가짜 롤렉스 시계를 들고 간 것이 몹시 부끄러워졌으니까요. 얼굴이 달아올라 귀까지 화끈거렸습니다. 그러나 마흔쯤 돼 보이는 매장 주인은 별로 드문 일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시계를 돌려주었습니다.

 "또 보여주실 게 있나요?"
 "아뇨."

 재빨리 매장을 나와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온갖 것을 처분하면서도 이 시계만큼은 품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채워주던 전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면 한 가닥 애틋한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했거니와, 팔았을 때 몇 달 생활비가 거뜬히 되어줄 '비장의 카드'로 보관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게 가짜로 판명됐으니 이제 수중의 돈으로 얼마나 지낼 수 있을지 계산해 봐야 합니다.

 거리로 나오니 금세 몸이 떨립니다. 어쩐지 예물 팔러 나오면서 잘 갖춰입지 않으면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까 봐, 갖고 있는 겨울 외투 중 가장 고급스러워 뵈는 코트를 걸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옷은 갖고 있는 겨울 외투 중 가장 얇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낮인데 어째 아침보다 더 추워진 것 같습니다. 코트 깃을 한 번 더 여미며 달리듯 걸었습니다. 지하철 역 입구로 입수(入水)하듯 뛰어들려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예?"
 "영혼이 맑은 분이셔요. 그런데 걱정이 많아 보이네요."
 "됐어요."
 "잠시면 됩니다, 아휴 추워. 아가씨가 걱정이 많은 이유가 있거든요. 아가씨 조상님들이 화가 나 있어서 앞길을 막고 있는데, 아 정말 춥네요. 저기 찻집에서 잠시만……."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서던 나는 '춥네요… 찻집에서…' 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습니다. 그대로 곧장 지하철을 타야 집밖에 갈 곳이 없었습니다. 남자가 가리킨 찻집은 아주 따뜻해 보였습니다.

 남자는 연신 '추워'를 연발했습니다. 얘기하는 걸 핑계삼아 빨리 찻집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자와 찻집을 번갈아보며 잠깐 멈칫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남자는 내 팔을 끌고 찻집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인간의 영혼과 사후세계, 우주의 섭리와 기운, 조상과 후손의 관계 등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댔습니다. 언젠가 읽은 주간지 기사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슬며시 제사 이야길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어쩐 일인지 조상들이 아주 화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혼한 걸 괘씸히 여겼나 보다. 제사를 정성껏 올려 그들의 화를 풀어줘야 한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어두운 기운도 사라지고 운도 술술 풀리기 시작할 거다……. 내가 읽은 기사는 이런 말로 사람을 유인해 제사를 올리게 한 다음, 제사비용으로 터무니 없이 큰돈을 요구하는 치들을 경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혀를 찼겠지만, 막상 속아주는 셈 치고 듣고 있자니 제법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얼었던 몸이 녹고 시간이 점점 흐르자 슬슬 배가 고파왔습니다. 나는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이제 어떤 핑계를 대고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은, 제사를 지내시는 게 좋겠다는 거죠."
 "그런가요."

 건성으로 내뱉은 말에 남자는 미안할 정도로 반색했습니다.

 "그러믄요. 오랜만에 말이 잘 통하는 분을 만났네요."

 남자는 한시름 놨는지 탁자 가까이 바짝 붙였던 상체를 소파에 기대는가 싶더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엉터리 제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한 패에게 전화라도 걸어두려는 것이겠지요. 뿌옇게 김 서린 찻집 유리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이 틈을 타서 달아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서며 핸드백을 집어드는데- 아까 화가 나서 대충 던져 넣은 시계가 보였습니다. 그동안 애지중지 보관해오던 시계 상자는 뚜껑이 열린 채 핸드백 구석에 박혀 있었습니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상자를 꺼내, 예전처럼 보기 좋게 시계를 담았습니다. 까짓 거 남자를 따라가 볼까 싶어졌습니다. 남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 돈 들여 굿도 하던데요. 한복을 입고 제법 근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치들이 가짜들이란 건 알지만, 제사를 올려 마음이라도 편해진다면 밑져야 본전입니다.

 자리로 돌아온 남자는 내가 꺼내놓은 상자를 보고 이게 뭔지 묻습니다.

 "롤렉스예요."

 어리둥절한 기색의 남자에게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결혼 예물이었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됐습니다. 누가 결혼 예물로 가짜를 주고받을 거라 생각하겠어요? 나는 곧 제사비용 대신 넘겨질 시계 상자를 아쉬운 체 쓰다듬으며, 잠시 후 제사상 앞에서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03/02 04:46 2008/03/0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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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이십 년이나 말을 안 했다면 다들 놀라지.
지금 자네는 영 못 믿겠다는 얼굴이지만, 그런 반응이 당연하니 미안해하진 말아.
그렇지만 난 정말 한 마디도 않고 살았거든. 마누라 죽고부터 말야.
처음엔 말을 딱 끊으니깐, 다들 내가
마누라 죽은 것 때문에 맛이 간 줄 알더군. 사정을 몰랐으니 뭐.

내가 말야,
젊었을 때 인기가 최고였네. 여자들한테 말야.
이 얼굴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말재주가 좋았거든. 입만 열면 여자들이 줄줄 줄을 섰지.
영 못 믿겠지? 지금이야 녹슬어서 이모양이지, 그 무렵엔 정말이었다구.
처음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래 딱 지금 자네 같은 얼굴로 새침하게 앉아있던 여자도
내가 요 입을 열기 시작하면 슬쩍슬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오분이 지나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십분이 지나면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고
이십분이 지나면 고개도 끄덕이고 박수도 치고.
삼십분이 됐다? 그러면 이젠 뭐 제정신이 아닌 거지.
여자가 넋 놓고 듣느라 침을 흘리면서도 창피한 줄을 몰라. 넋을 놨으니까.
그때부턴 일사천리지. 어차피 아무 말이나 해도 재밌는 줄 아니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면서 막 떠들어도 되는 거라구.

서른 살에 마누라를 만났는데, 마누라도 요 말에 넘어와서 시집 왔어.

그런데 요놈의 입이라는 게, 꼭 산 동물 같아서
장가 갔다고 꽉 다물어지는 게 아니었던 거야.
일단 여자가 나타나면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자동으로 입이 벌어져요.
그러면 또 술술 나오는 말에 여자들이 껌뻑껌뻑 넘어오고
그때부턴 이제 아랫도리가 제 차례라고 나서는 거지.
그러니 마누라 속이 엄청 썩은 거야.
귀신같이 눈치채고 펄쩍펄쩍 뛰는 날엔
내가 할 줄 아는 게 순 말하는 재주 뿐이니깐
또 말로 구슬리고 타이르고 했던 거지 뭐.

그렇게 이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쉰, 마누라가 마흔 넷이던 해에
아 이 여편네가 덜컥 암에 걸렸다는 거야.
늦게 발견해서 뭐 손도 못 썼어.

숨 넘어가는 마누라 옆에 있자니깐 덜컥 겁이 나데.
마누라가 자꾸 정신을 놓더군. 그러니깐 더 겁나지 뭔가.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계속 말을 걸었어. 이 얘기 저 얘기 쉬지않고 막 떠들었지.
그렇게 마누라 손을 꽉 잡고 한참 떠들고 있는데, 드디어 무슨 말인가 하려는 거라.
유언인가 해서 잘 들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는데. 아 이러더라구.

"진심도 아닌 걸 어째 그리 열심히 말하노."

그러더니 꼴까닥.

눈물이 쏙 들어갔네.
그러고나서 이십 년을 말 않고 산 거야. 마누라 말이 맞는 말이었거든.
같이 산 동안 헛소리만 열심히 해대며 살았으니깐, 적어도 그만큼은 말하지 말아야지 싶었네.
하긴, 진심만 입에 담고 사는 거나
아예 말 없이 사는 거나 별 차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해.





2008/01/19 02:25 2008/01/19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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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퇴마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를 부르던 '퇴마사'란 단어는
그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는 못된 영혼을 퇴치하거나 물리쳤다기 보다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고 토닥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영혼과 크게 싸웠다는 얘길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는 영혼의 벗, 영혼의 안내자, 영혼의 은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론
오십년 간 쉬지않고 수많은 영혼을 쉬게 해주었습니다.
제아무리 사납고, 난폭하고, 고집 센 영혼이라 해도
그와 이야길 나눈 후엔 순한 양처럼 순순히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영혼을 구함과 동시에,
그 영혼으로 인해 고통 받고 두려움에 떨던 산 자들까지 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구한 자들은 우리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껏 그 어떤 퇴마사도 그를 능가할 순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영혼이 되어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인간으로선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해도
여러분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이제 이 세계는 누가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 라는 두려움을 느끼실 겁니다.

그러나, 자,
그는 세상을 뜨기 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영혼을 대하는 비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떴다면 영원히 퇴마계의 독보적인 전설로 남을 수 있던 그가
굳이 그 비결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니.
그가 이 세계를, 가여운 영혼들을, 산 자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그가 남긴 유언이자
영혼을 잘 달래는 법 두 가지를 공개하겠습니다.

첫째, 영혼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어라.
당연한 얘기 같습니까. 그러나 많은 퇴마사들이 이점을 간과합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뭐냐, 적어도 그만큼은 마음을 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열기로 결정한 이들 중에 과연 진지하지 않은 이가 있겠냐는 겁니다.

언제였던가요. 그가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원주민의 영혼과 마주쳤을 때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그쪽 말은 통 말귀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얘긴지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영혼의 눈빛과 표정, 어조와 손발짓을 진지하게 대하더니
끝내는 영혼과 함께 펑펑 울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말이 통하는 영혼이라면, 영혼의 얘기 중에서
아무리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고, 납득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진심어린 자세로 들어주는 것.
이것이 영혼을 대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둘째, 그렇게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면
이 말 한 마디를 건네십시오.
이 말 한 마디면, 대부분의 영혼이 안도하거나, 눈물을 글썽이거나,
겸연쩍어 하다가도 고맙다고 인사하거나, 미심쩍어 하다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저승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는 이 한 마디로 수많은 영혼과 산 자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문장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외우고 있었으며
말년엔 소수민족의 언어로도 일일이 기록해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영혼을 인도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한 마디란 바로 이것입니다.


"자네 잘못이 아닐세."







2008/01/03 10:05 2008/01/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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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잠



 
아내는 '노란 잠'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노란 잠'이란 단어를 내뱉었을 때, 나는 몹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희귀한 병이에요.
 병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이라 주장하는 치들도 간혹 있지만은,
 그로 인해 가족이 고통스럽다면
 병이라고 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저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병이냐구요."

 "부인이 잠만 자고 계시는 건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모든 게 정상이거든요. 다만
 부인은 지금 꿈을 꾸고 계신 겁니다. 꿈을 꾸고 계신 건데,
 꿈속 세계가 좋아서 머물고 계신 거예요.
 그 세계가 싫어지지 않는 한은 깨어나지 않으실 겁니다."

 "이해가 안 되네요.
 억지로 깨우면, 꿈도 저절로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저희가 깨울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잠 하나를 못 깨워요?"

 "약이랄지, 물리적 충격으론 부인을 깨울 수가 없어요.
 노란 잠 증후군은 당사자가 깨어나려는 의지가 없으면 어떤 방법도 소용 없거든요.
 힘드시겠지만, 부인 스스로 꿈에서 벗어나길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의사는 몹시 난감해하며 나를 진료실 밖까지 배웅했습니다.

 "이것 참, 저도 이런 말씀밖에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댁에서 모시기엔 어려움이 많을 텐데, 일단은 이대로 저희 병원에서 지켜보시는 편이……."

 나는 씩씩대며 아내의 병실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세차게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나 소용 없었습니다.

 "정말 꿈 꾸고 있는 거야?"

 ……

 "내가 뭘 잘못했어? 그래서 도망친 거야?"

 ……

 "거기가 얼마나 좋길래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일어나서 꿈 얘길 해 줘. 내가, 그대로 해줄게."

 ……

 "노력할게."

 ……

 아내는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을 잘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는 듯 보였습니다.
 그것이
 아내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이었기에
 나는 그만 목놓아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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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01:49 2007/12/28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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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氏



나는 꼼짝없이 식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엊저녁 퇴근길에 사온 콩이-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이 좀 덥군."

얼어붙은 채로 노려보는 나에게,
콩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왜 그러나?"

기가 막혀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나를 먹겠지?"
"그러겠지."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이래서야 어디 먹을 마음이 나기냐 하겠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콩이 말을 건넨 순간부터, '먹느냐 안 먹느냐' 가 아니라
'죽이느냐 마느냐' 란 문제가 돼버린 것입니다.

"아쉽군."

콩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하지만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네."
"그러면 다냐?"

화가 치민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내 평생 콩이 말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 콩이 말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멋대로 지껄이더니 미련이 없다고?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난 아니라구. 이제 콩을 먹긴 다 틀린 거지. 비위가 상해서 먹을 수가 있겠어? 그뿐 아니야. 앞으론 뭘 먹든 그게 갑자기 말을 걸면 어쩌나 불안에 떨 거라구. 새우가 말하고, 고등어가 말하고, 무가 말하고, 사과가 말하면 어쩌지? '어르신, 제가 보기보다 아직 덜 익었는데요, 옆엣 놈을 먼저 드시면 안 될깝쇼?' 그러면 그걸 먹고 싶어지겠냔 말야. 찻잎이 말을 해도 볼 만 하겠군. 찻물을 붓는 순간 뜨겁다는 둥, 이러지 말라는 둥, 그냥 먹으면 안 되냐는 둥 떠들어 댈 테니까. 그런 밥맛 떨어지는 일이 또 있겠냔 말야. 너 같은 콩 따위야 팔자가 늘어져가지고 기껏해야 벌레 눈치나 볼 줄 알겠지만, 인간은 다르다고.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알아? 가뜩이나 눈치 봐야 할 일도 많은데 이제 음식들 눈치까지 보게 생겼으니 썅! 날 그 지경으로 몰아넣고 넌 그냥 편하게 가시겠다? 살만큼 살았으니까 미련은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건방진 콩 자식!"

나는 길길이 뛰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콩은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말했습니다.

"콩이 말하는 게 그렇게 드문 일인 줄은 몰랐네.
그런데 원, 그렇다면
그저 콩이 말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친구들한테 수다나 떨면 그만 아닌가."

그러더니 콩은 아주 질려 버렸다는 듯,
영영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습니다.






2007/12/14 01:19 2007/12/1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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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



 사람들은 대개, 어른이 되어 무언가 큰 일을 해내면 신문에 오릅니다.
 그게 훌륭한 일이든 못된 일이든 간에 말입니다.
 때로는 어린 나이에 어른 못지 않은 일을 해서 신문에 오르는 경우도 있지요.

 아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태어나자마자- 정확히 말하면 생후 일주일만에- 신문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아이를 주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남다를 것 없었으니까요.
 특별히 예쁜 외모도 아니었고,
 유난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공놀이나 노래, 그림 그리는 재주 따위가 신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은 단 하나,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썩 귀여움 받을 수 있는 재능은 아니었습니다.
 보육원의 사정이란 뻔한 것이어서, 오히려 아이의 식탐이 커질수록
 보모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던 것입니다.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잘 먹는다니?"
 하며 신기해하던 보모들은, 이내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많이 먹는다니!"
 하며 꿀밤을 때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네 살이 되자 남자 어른보다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여섯 살이 되자 남자 어른이 먹는 밥의 세 배는 먹게 되었습니다.
 일곱 살이 되자 이제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배불리 먹을 때까지 밥이 나오는 일이 없어졌거든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는, 자기가 무언가 먹어치울 때마다
 어른들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는 것이 슬펐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잘 먹는 것 뿐인데
 이것으론 귀여움을 받을 수 없으니 어떡하나요.

 그날도 아이는 모두 잠든 밤에, 배가 고파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부엌에 갔지만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다음 날 식사꺼리를 모두 해치우곤 하는 아이 때문에
 보모들이 음식을 감춰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허기를 달랠 생각으로 숟가락을 빨았습니다.
 숟가락이 막대사탕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차게 빨던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숟가락이 목구멍 깊이 들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손을 넣어 빼내보려 했지만, 이미 저 아래로 내려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거든요.
 쇠로 만든 숟가락을 삼켰는데, 배가 아프긴커녕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숟가락 열 두 개와 젓가락 열 두 벌,
 접시 여덟 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무엇이든 입에만 넣으면
 힘들이지 않아도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기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보모들이 법석을 떨 때
 아이는 다른 아이들 틈에 누워서 편안히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의자 스무 개, 책상 일곱 개, 벽시계 두 개,
 청소솔과 대걸레를 먹어치웠을 때쯤, 아이는 들키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
 동화책과 인형, 텔레비전과 축구공 같은 건 결코 먹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이애는 괴물이야!"

 아이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보육원에서 내쫓겼습니다.
 뒤늦게 아이를 방송국에 제보해
 돈 벌 궁리를 해낸 원장이 아이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아이는 멀리 가버린 후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유일한 재주로는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거리를 떠돌면서 어떡해서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애썼지만
 아이가 뭔가를 먹어치우면, 어른들은 칭찬 대신
 비명이나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밤, 아이는
 골목 구석에 주저앉아 술을 토해내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힐끔 돌아보곤 저리 가라 턱짓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멀리 가지 않고 남자 주위를 맴돌다가
 근처에 있는 가로등을 먹었습니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남자가 창피해할 것 같았으니까요.

 아이는 여느때처럼 잽싸게 도망갈 자세를 잡았지만
 남자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손짓했습니다.
 사실 그게 다- 그가 몹시 취해 있었기 때문이지만
 아이는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가로등이 있었는데. 네가 먹은 거 같다?"
 "……네."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네가 먹은 거 맞지?"
 "네."
 "으하하하, 굉장하구나!"

 남자는 껄껄 웃으며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가슴팍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 것 따위 괜찮았습니다.

 "또 뭘 먹을 수 있는 거냐?"

 아이는 처음 듣는 칭찬에 들떠, 근처에 있던 자전거며 쓰레기 봉투,
 어느 집의 우편함과 대문 손잡이까지 먹어치웠습니다.
 남자는 줄곧 감탄 어린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다 말했습니다.

 "자, 이제 기억을 먹어 봐! 부탁이야!"
 "어디 있는데요?"

 남자는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습니다.

 "이런! 기억이 어디 있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다니.
 내가 말해 줄게. 다 말해 줄 테니까, 다 먹어주렴.
 난 지금 이놈의 기억들 때문에 괴로워 죽겠단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들을 중얼중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 먹은 것은 물론이고요.
 동이 터올 무렵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홀가분한 표정으로 골목을 떠났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반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에 뭘 먹어보라고 하든
 결국은 기억을 먹어달라고 청하곤 하는 것이죠.

 그러니 당신이 슬프고 또 슬픈 날, 공원 의자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꼬마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면, 매몰차게 밀어내지 말고 이야기해 보세요.
 그 아이가 바로 기억을 먹는 아이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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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1 00:00 2007/12/01 00:00


풍선


잠에서 깬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발목에 커다란 풍선이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풍선을 매단 적은 없습니다.
떠오르는 것이라곤 작은 술집에서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려 난처했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왜 헤어지자는 건진 묻지 않을게."

그러나 그녀는 내 입에서 헤어지고 싶어하는 이유가 백만 개쯤 나오기 전엔
결코 그치지 않을 기세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는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뿐인데
일어나니 처음 보는 풍선이 발목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일단 풍선부터 떼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너무나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었죠.
가위라도 가져오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외쳤습니다.

방바닥에서 1cm쯤,
그렇습니다, 아주 낮은 높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떠 있던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풍선이 떠 있고- 내 몸이 그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한 발을 내딛어 보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떠 있는 채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붕 뜬 채로 간신히 부엌에 가서 가위를 찾아
풍선을 매단 줄을 자르려 했지만, 좀처럼 잘리지 않았습니다.

'참, 터뜨리는 방법이 있었지!'

그러나 풍선은 가위로도, 드라이버로도, 식칼로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창문을 열었습니다.
찬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꿈이 아니란 사실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됐을 뿐이었습니다.
바람에 밀려 풍선이 훅- 저만큼 날아갔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함께 날아가버렸으니까요.

출근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나야. 내 발에 풍선이 달려 있는데 풀리지도, 터지지도 않아.
게다가 이것 때문에 둥둥 떠 있다구."
"그래."
"그래?"

태연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녀가 저지른 일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네가 달아놓은 거지? 집 열쇠라도 복사해 놓은 거야?
밤에 몰래 들어와서 묶어놓은 거냐고.
어떻게 떼어야 하는 건데? 이것 때문에 출근도 못하고 있잖아!"
"떼지 마."
"장난 그만 치고 빨리 말해 줘."
"떼지 마. 뗄 수도 없어. 넌 이제부터 풍선을 타고 다니게 될 거야."
"뭐?"
"나는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좋겠어.
그러면 네가 날 떠나는 걸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헤어지자고 한 건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잖아."
"이제 괜찮아.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난 네가 풍선 때문에 날아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든 채
그녀의 노래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좋겠네
도시가 바둑판으로 보이는 상투적인 비행이 아니어도 상관 없겠네
나는 네가 그저 바닥에서 오 센티 아니 일 센티라도 떠 있으면,
발을 내딛지 않고 풍선을 타고 다니는 거라면 좋겠네
네가 사라져도 나는 너를 탓하지 않을 수 있겠네
나는 걱정스러운 듯 물어오는 이들에게
너는 날아간 거라고 태연스레 말할 수 있겠네





 

2007/11/30 12:25 2007/11/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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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마을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곤 무작정 전국 일주를 떠올렸고
배낭 하나 메고 집을 나선 지 꼭 한 달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달력상으론 초가을이었지만 그 해따라 늦더위가 기승이었습니다.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며 걷던 나는, 지도에 없는 마을 입구에 다달았습니다.
5km는 더 걸어야 하는 어느 마을에 묵을 계획이었지만,
더위와 피곤에 지친 상태였기에 일찍 여장을 풀기로 결심했지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동안 지나친 곳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금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습니다.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죠.

분명히 사람이 우는 소리였고
그것도 여러 명이 우는 게 분명했습니다.
어떤 울음은 나직하게 흐느끼는 소리였고
어떤 울음은 차라리 외친다고 해야 할 정도로 통곡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척 섬뜩해졌지만, 한편으론 그 울음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논둑길을 따라 걷다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들판 곳곳에 허름한 움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움막들마다 사람이 들어가서 울고 있던 겁니다.
소리의 근원지를 알아낸 나는 조금 전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이런 괴상한 일이 또 있을까요?

차마 움막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진땀을 내며 머뭇거리고 있던 내게, 러닝셔츠 바람의 노인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거기서 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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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대체 사람들은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말입니다.

"여행 중에 들렀습니다."
"묵을 곳이 필요해? 그럴 만한 집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서 밤을 보낼 생각은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럼 뭐하러 여기에 가만 서 있는가?"
"다른 게 아니고, 어르신, 저기 움막들마다 사람이 들어가서 우는 게 맞습니까?"
"그렇지."

"……대체 왜들 저러고 있는 겁니까?"
"인정하고 있는 거지."
"네?"

"인정하게 된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뭐를 말입니까?"
"뭐긴. 어떤 거라든 말야. 자넨 그게 뭐가 됐든 인정하기 쉬운가?"
"……네?"

"다들 다른 이유로 들어가 있는 거여.
살다 보면 말이지, 뭐든 인정해야 할 때가 생기는 법이거든.
개인사가 됐든 집안 일이 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인정할 일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란 말야.
근데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이거든.
자네 한 번 생각해 봐. 이건 쌀이다, 라고 한 평생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보리라는 거야. 날벼락이지.
그래서 다들 인정할 게 생기면 저기 들어가서 우는 거야.
시원하게 울고 나오는 거라고."

"그럼, 어르신도 저기 들어가신 적이 있습니까?"
"원, 당연한 소릴. 내가 강철로 된 사람인가?"

노인의 말은 어처구니 없었지만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 풍습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는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 걸음을 돌리려다가, 마지막으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꼭 저런 데 들어가서 우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번데기 고치 같은 거야. 벌레도 고치에 들어갔다 나오면 훨씬 강해지지."
"예."

잠시 그 마을에 머물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습니다.
그랬다가는 내가 인정해야 할 것들이 한없이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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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00:19 2007/11/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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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어느 날 나는
뭔가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대체 뭘 인정해야 하지?"

인정하게 될 것이 뭔지도 몰랐지만
머릿속엔 계속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위 말이 맴돌기 시작했지요.

슬프고 또 두려웠습니다.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이제부터 착실히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계기로
무엇을 인정하게 될 날이 올지, 눈꼽만큼이라도 알아야
만반의 준비까진 아니래도- 마음이라도 단단히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나는 완벽하게,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뭘 인정하게 될 건지
그 날은 언제쯤일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결국 인정하게 될 미래 때문에 울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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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02:16 2007/11/2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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