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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 보여 2005/12/05
얼마 전, 오랫동안 들고 다니던 디카(IXUS-V)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홍대 앞 희망시장에 나간 서지의 사진을 찍다가 이 녀석을 땅에 떨어뜨렸는데, 렌즈가 꺾인 채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내가 가진 첫 디카였던 데다가 그 동안 오만 정이 들어 더 좋은 기종이 나와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던 터라 상심이 아주 컸다. 서지는 안타까워하는 내게 그녀 특유의 '어쩔 수 없지' 말투로 "액땜이라고 생각하렴." 이라 일렀지만, 나는 그 말에 발끈하여 "이게 무슨 액땜이야, 액이지! 땜이 이 정도면 액은 대체 뭐란 말이야!" 라고 울부짖었다.

차라리 그냥 내부가 고장난 거라면 좋았을텐데, 렌즈가 괴상하게 꺾인 채 잠든 녀석을 보고 있자니 -비유가 엽기적이지만- 애지중지 키우던 자식이 팔 하나가 똑 부러진 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 속이 상해서, 케이스에 담아 서랍 깊숙히 넣어 버렸다.

풀집에 강의를 나오시는 여의도통신 기자, 김진석 쌤에게 여쭤보니 A/S를 맡겨도 수리 비용이 최소 10만원은 나올 거라신다. 요즘 디카 가격이 많이 내려간 상태라 이 정도 사양이면 차라리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10만원 보다는 많이 들텐데 그냥 수리를 할까, 근데 최소 10만원이면 최대 20만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속시원하게 A/S 센터에 들러 수리 비용을 물어보면 빠른 대답이 나올텐데, 거기까지 다녀오는 게 귀찮아서 -_-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그러던 중에 디카를 수리하든 새로 사든, 이 참에 갖고싶던 필카를 장만하자! 라는 결심을 하고 구입한 것이 로모 피쉬 아이. 어안렌즈라서 물고기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볼록한 사진이 나온다는 카메라다. 모양도 예쁘고 그냥 필카보다는 갖고 다니기 재밌겠다 싶어 구입한 첫날, 회사로 돌아와 첫 필름을 끼우고 신이 나서 여기저기 찍어 보았다. 디카를 쓰던 버릇 때문에 미처 필름값은 생각 못 하고 같은 장면을 여러 장 찍기도 했고,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는 동료 안영감까지 닥달하며 '빨리 여길 쳐다보라'고 성화를 하고 있었는데, 안영감이 카메라 쪽을 보다 말했다.

"뚜껑이 닫혀 있네요?"

헉...... 액정모니터가 없는 필카인 까닭에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찍고 있었는데, 렌즈 뚜껑이 닫혀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구 찍어대고 있던 거였다. 당황해하는 내게 안영감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좋~댄다..."





오늘, 풀집 웹진 업데이트를 하러 회사로 나왔다. 몇 가지 찍어 편집해야 할 것이 있어서 회사용 디카를 집어 들었다.

찍어야 하는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카메라 전원을 켰는데, 액정이 온통 까맣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배터리가 다 닳았나? 충전해놓은 새 배터리로 갈아 끼웠지만 마찬가지다. 이 카메라는 국장님이 쓰던 캐논 프로90is인데, 내가 쓰던 IXUS-V보다 기능도 많고 복잡해서 얼마 전에 국장님께 장시간 사용법을 배웠지만 그 중 대부분을 잊고 말았다.

뭔가 설정이 잘못된 거겠지 싶어 메뉴 버튼을 눌러보기도 하고, 설명은 들었지만 다시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 버튼 저 버튼을 마구 눌러봤지만 허사였다. 아무래도 내 능력 밖의 일인 듯 싶다. 결국 국장님이 출근할 월요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군...... 하며 카메라 기능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내 돌머리를 탓하며 힘없이 책상 위에 카메라를 내려놓는데.





......렌즈 뚜껑이 닫혀 있었다.






2005/12/05 02:41 2005/12/05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