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 해당되는 글 4건

  1. 동갑내기 2006/04/24
  2. 싫어요 2004/11/23
  3. 감정 표현 2004/04/16
  4. 어른 2004/01/25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손톱 깨무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네일샵에 드나드는 중이다. 의지력으로 고쳐지지 않던 버릇은 비싼 케어를 받으면서야 본전 생각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지지난 주였나, 네일샵에 부부 한 쌍이 들어왔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편은 아내를 데려다주고 사라졌다가, 그녀가 메니큐어를 말리고 있을 즈음 돌아와 앉아 있다가 아내와 함께 일어났다.

여자친구를 따라와 한 시간 가량 되는 시간을 지루해하지도 않으며 기다리다 가는 남자들을 보아왔지만, 그 부부를 바라보면서는 어쩐지 좀 묘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건 아내 되는 여자가 나와 동갑이란 사실을, 그녀와 직원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정한 스커트 차림에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곱게 맨 여자를 처음 봤을 땐 -나이 들어 보이는 남편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깨물어서 엉망이 된 손톱을 정리하러 그곳에 간 나와 달리 그녀는 단지 미용을 위해 온 것이었고, 일요일 오전에 곱게 차려입고 남편과 함께 찾아온 맑은 얼굴의 그녀와 달리 청바지 차림의 나는 전날 회사에서 밤을 새고 간 참이라 눈꼽이 자꾸 끼는 것을 신경쓰며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어쩐지 나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갈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지 못하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던 이유가 그녀의 얼굴이 나이 들어 보여서라기 보다는 어딘지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좀 괴상해졌다.

스물아홉이란 내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아니란 사실이야 진작 알고야 있었지만, 나와 동갑인 누군가는 저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는 '진짜 어른' 처럼 보였다)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내가 그녀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사실이 결코 뿌듯하지 않고 오히려 쑥쓰러운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겠다.

얼마 전 술을 마신 일행은 영화감독과 촬영감독, 배우 등이었다. 그 날 나보다 한 살 많은 여배우는 "연기는 제가 평생 할 일이라 당장의 결과에 조급해하지 않으려 해요."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오늘의 말'로 선정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그래 나도 그림 그리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어차피 평생 할 일이라면 당장 이루는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 삼았지만, 네일샵에서 마주친 부부를 떠올리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이라는 한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란 차원에서도 나는 더디게 살고 있구나 란 기분이랄까? 내 주위엔 아직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애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만 축내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 중에서 두 번째로 결혼한 인숙이 '임신 12주 째' 란 연락을 해 왔다. 나중에 출산일을 가늠하기 위해 달력에 '인숙 12주' 라 써놓고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그녀와 나와 인숙은 이렇게 참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2006/04/24 03:02 2006/04/24 03:02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나에게 "너는 어른이 되었다" 고 선포했다. 그리고 앞으론 지금까지처럼 멋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탱자탱자 살아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고, 공감하지 못하는 내게 월급봉투를 쥐어주곤, 봉투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앞으로 착실히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몇 가지 이유들을 덤으로 안겨주고 떠났다. 오 하느님, 세상엔 깨달음을 얻게 하는 다양한 무엇이 있을텐데요. 왜 하필 그게 돈이었나요.




2004/11/23 22:38 2004/11/23 22:38
어렸을 적 나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기쁜 티를 내지 않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슬픈 티를 내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 내 감정을 눈치챈 것 같으면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의연하게(그걸 의연한 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찍은 사진에 나온 내 표정은 그래서 모두 똑같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웃을 줄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보고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게 "사진 찍을 땐 좀 웃어라"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졸업사진이 나온 날 아이들이 사진을 보겠다고 우우 하고 달려들자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잘 나왔으니까 걱정 마. 미영이만 빼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런 면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웃길 수도 있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 앞에만 가면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던 거다. 오죽하면 스무살 때 사귄 남자친구는 내게 "네가 남자냐"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래도 음, 저래도 음. 나중에 그 친구는 노골적으로 까페 옆자리에 앉은 다른 여자를 가리키며 "저 여자 정말 애교 많다" 라는 말을 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졌던 것엔 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 친구의 생일을 함께 보내고 집에 돌아가던 길, 나는 그 친구의 등을 부여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는데, 남자친구의 생일에 특별히 해 준 것도 없고 애교도 떨지 못하고 활짝 웃어주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그런 종류의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 날 일방적으로 잠시 떨어져 있자고 이야기하고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 뒤늦게서야 다시 만나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 친구는 냉정하게 돌아섰고, 뒤늦게서야 울며 불며 내 감정을 이야기했지만 너무 늦은 일이었다.


내가 어느 누구의 앞에서도 잘 웃게 된 것은, 우습게도 학교 앞 커피숍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막 실연을 한 직후여서 무슨 일이라도 정신없이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일하기 시작한 그 커피숍에서, 나는 나를 모르는 손님들이 뚱한 내 표정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래 억지로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웃으며 서빙을 하고, 웃으며 계산을 했다. 고작 한 달 반을 일했을 뿐인데 그곳을 나온 뒤에도 나는 웃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이란 게 워낙 단순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 큰 상태였기 때문에 학습 속도가 빨랐던 것인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때부터 놀랄만큼 잘 웃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여기서도 하하, 저기서도 헤헤. 사람들은 나를 유쾌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곧잘 웃기기도 잘 한다고 이야기했다. 워낙 웃어대니 자기를 좋아해서 늘 웃는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대시한 남자들도 생겼다. 본의 아니게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이 무척 미안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때 내가 워낙 잘 웃었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할 때면 언제나 잘 웃어주었기 때문에 오해를 할 수 있었겠다 싶었던 거지 그 당시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웃는 것 말고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툴렀는데,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날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던 그 사람은 그 여자에게 "미영이가 표현에 서툴러" 라고 말했고, 그 얘기를 내 남자를 뺏은 그 여자에게 직접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그 여자가 술에 취해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 라며 내게 안겨 울었을 때의 기분만큼이나 더러운 것이었다.


............라는 식의 길고 긴 글을 쓰려 했는데 더 이상 쓰기 싫어졌다. 귀찮기도 하고 다른 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어릴 때와 달리 점점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지금의 나는 오히려 감정을 숨기지 못해 걱정이다. 얼마 전 지금 다니는 회사의 한 분에게, 예전에 다닌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야기를 듣던 분이 깔깔 웃으며 말씀하셨다. "미영씨 표정이 장난이 아냐! 감정을 그렇게 못 숨겨서 어떡해?" 난 그냥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을 하면서 얼굴을 무척 찌푸렸던 모양이다. 전 동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다녀야 좋을 것이 없는데 말이다.

요즘은 그렇다. 나는 웃는 것 뿐만 아니라 눈물도 잘 감추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라면 낫지만,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될 상황에서, 그러니까 어려운 상대 앞에서 글썽이는 것은, 어느 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야 마는 것은 정말이지 곤란하다. 그러는 순간 나는 상대방과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투정을 부리는 혹은 나약한 아랫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운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속상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숨기는 게 너무 어렵다. 아니 어려워졌다. 나는 내 눈물을 통제할 수 없다.

어린 아이가 감정을 숨길 때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아이다운 것은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른이 감정을 있는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고, 어른스러운 것은 감정을 적절히 숨길 줄 아는 것이다. 쓰다 말다 멋대로 끝을 맺는 이 글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아이였을 때와 어른인 지금의 감정 표현이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




2004/04/16 17:58 2004/04/16 17:58
1.
문득,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언제인지 떠올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이건 내 나이엔 버거운 일인데' 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일들이 차르르 지나간다.

나는 내가 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유년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치유하며 한 단계씩 성숙하지 못하고, 그냥 다 끌어안고 어느 틈에 자라버렸다.



2.
언젠가 말한 것처럼.... 오래된 일이라 해도, 내가 잘못했던 이들에게 뒤늦은 사과를 하고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찾아가 내게 사과를 해줄 순 없냐고 부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냐고, 당신이 나에게 '미안하다' 고 말해주면 내 마음은 이제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 부디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해 줄 수는 없겠냐고.

마음이 이럴 뿐이지 정말 이런 말을 하며 돌아다닐 리는 없겠지만, 설령 그런다고 해도 죽은 이에게선 사과를 받을 수 없다. 사과조차, 받을 수가 없다. 죽은 이를 향한 감정이란 대개 버거운 것이겠지만, 미움 역시 그렇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서 미안하다 라는 말을 꼭 듣고 싶었다. 언젠가의 어린 나는, 내가 원해왔던 건 딱히 다른 게 아니라 그 짧은 한 마디였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도 깨닫곤 넋을 잃고 말았다. 어쩌면 그 때부터 나는 흐지부지 희미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2004/01/25 03:29 2004/01/25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