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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비 2002/02/28
 '한 번쯤은 이런 내게도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늘 항상 언제나 처음부터 지금처럼 믿고 있었어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전부 나를 배신하진 않을 거라고
 늘 항상 언제나 처음부터 지금처럼 믿고 있었어 하지만

 가끔은 너무 힘들기도 했었지
 가끔은 비바람 치기도 하니까

 언젠가는 이런 내게도 정말 좋은 사람 생길 거라고
 늘 항상 언제나 진심으로 지금처럼 믿고 있었어

 내 곁에 있어줘 너의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목이 메어와

 인생은 믿는대로 그대로 그래서 한 번쯤은 이렇게
 가끔은 깜짝 놀랄 일도 생기지 언제나 비바람 치는 건 아니지

 언젠가는 이런 우리도 정말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그대로 나의 곁에 있어줘
 지금 너 그대로가 참 아름다워 목이 메어와'  (자우림/나비)


요즘에 이 노랠 들으면 위안이 된다. 그러면서도 고작 이런 노래 가사에 위안을 받다니, 하며 궁시렁거리기도 하고. 여하간 나란 인간은 늘 이런 식이다.

예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남들은 사랑은 어떻게 하고 이별 얘긴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은데 자신은 도무지 모르겠다고. 그 얘길 들으며 이별을 해야했던 나는, 화도 내고 무어라 잔소리(?)도 하고싶었지만 너는 그러냐 남들은 안 그렇겠냐 누구는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 정석처럼 알고있어 사랑하며 살겠냐 싶어 입을 다물었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 가만 보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연애해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남들은 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석처럼 알아서 살고있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지.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머릿속이 빙빙 돌지.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게 사랑이든 무어든 틀을 정해놓고 거기 맞춰 진행하려고 하며 틀에서 벗어날라치면 앗 이건 사랑이 아닌가봐 사는 게 아닌가봐 내가 할 일이 아닌가봐 낙인을 찍는 그런 것이었는데 말이지. 나는 왜 끊임없이 네모 하나 그려놓고 나는 이 안에 있어야 하는데 왜 밖으로 나가는 걸까 의심하고 한탄하고 있는가 말이지. 그런데 그런 틀이 없다면 그게 옳은 걸까 근데 내가 이 틀을 만든 이유는 뭐지 이유란 게 있긴 있었나 내가 만든 건가 남들이 만든 것에 올라탄 건가 내가 만들었던 게 맞긴 맞는데 지금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그럼 기억도 못하는 이유는 정말 내 것이 맞기는 한가 그것부터 다시 회의가 들어 결국은 아무 판단도 못 내리고 에잇 더 생각하기 귀찮아 하며 어리버리 멍하니 앉아있단 말이지. 차라리 그렇게 멍하니 계속 앉아있음 좋겠는데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아서 모두 뒤엉킨단 말이지.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따위의 책은 거들떠도 안보다가 언젠가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가는대로 해라'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 '남자처럼 행동하고 여자처럼 성공해라' 같은 처세술책을 부여잡고 나도 잘 살고 싶어 나도 사람들 틈에서 모나지 않게 어울리고 싶어 나도 성공하고 싶어 트림하며 앉아있었지만 이제 다시 그런 책을 마주하면 들춰보기도 싫다. 읽는 순간 아 맞다, 이렇게 사는 거구나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거구나 나는 이래서 제대로 못사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여봐야 책을 덮는 순간 모조리 까먹으며 남의 얘기가 되는 동시에 남는 건 결국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나를 깨달으며 느끼는 자괴감이다. 실제로 그 많은 처세술책을 읽은 뒤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단 한 가지 항목은 이것뿐이다. '빌려준 돈은 당당하게 받아라'. 돈을 빌려준 상황이던 내게 무척 인상깊던 내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돈을 꿔간 친구에게 전화 한 통 제대로 못 한다. 결국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사는 게 암담해 정신과에 갔다는 친구는 그래도 의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길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나에게 병원행을 권했지만 주위에서 의부증이 심하거나 상식적인 사고라곤 쥐뿔도 모르는 얼치기 정신과 의사밖에 보지 못 한 나는 어딜 가나 그런 작자들이 의사라고 앉아있겠지 별 수 있겠어 어딜 그런 작자들과 상담을 하란 말이야 하며 거절했는데 얼마 전 병원을 찾은 또다른 친구의 말을 듣곤 병원행은 완전히 포기했다. 의사만 못 믿고 있었는데 나눠주는 약은 더 가관이라나. 잠이 늘고 한없이 순해지고 성욕이 감퇴하며 멍한 상태가 된다는데 그럼 바보 아냐. 가뜩이나 바보가 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말이지.

하고싶은 일은 많은데 한없이 겁은 나고 여기저기서 부담감은 잔뜩 안겨주고 그게 내겐 너무 무거운데 나는 자꾸 딴길로만 튀고싶고 막상 그럴 용기는 안 나고 용기를 내볼까 하다가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벗어나질 못하고 그러기엔 욕심은 많은데 따라가지 못 하는 내가 짜증나고 짜증이 나니까 불안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그러다보니 아무 것도 못 하는 멍청한 상태가 계속되고.

누가 나한테 꺼지라고 해주면 고마워하며 꺼져줄텐데. 하느님이고 누구고 총을 들고 나타나서 '꺼져!' 하면 '앗, 감사합니다' 하며 냉큼 꺼지고 싶은 기분이다. 밖에 잠깐 나갔다가 날씨는 지랄같이 좋아서 눈이 부시길래 몇 걸음 더 못 나가고 창고 처마 밑에 서있다 들어왔다. 날이 좋아서 나갔다 오면 더 청승떨고 있을 것 같다. 창고 안이 침침해서 대낮부터 감상에 빠져 이 지랄인 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자우림 노래 가사는 왜 적어논 거야.



2002/02/28 13:54 2002/02/28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