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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100년 (6) 2008/06/23
  2. 감정 표현 2004/04/16


일요일.
태수와 동네 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반색하며 뛰어왔다.

"와, 개다."
"응. (태수를 보며) 누나다, 누나."

"(태수를 쓰다듬으며) 저, 개 좋아해요. 근데 개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건 귀찮아 해요.
그래서 키우긴 싫고요, 같이 있는 건 좋아해요."
"그래. 언니도 항상 똥을 치우지. (손에 든 봉지를 내밀며) 이것도 똥이야. 좀 아까 치운 거야."

"얘 겁 많아요? 안 짖네요?"
"응. 겁쟁이야."
"꼬리도 흔들어요? 지금은 안 흔드는데?"
"원래 반가우면 흔드는데, 지금은 누나를 처음 봐서 어색한가 봐."

"(계속 태수를 쓰다듬고 만지며) 귀엽다. 몇 살이에요?"
"한 살도 안 됐어."
"(갸우뚱) 영 살이에요?"
"응. 올해가 이천 팔년이지? 얘는 이천 칠년, 작년 겨울에 태어났어.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됐지."
"그래도 얘가 더 크면 새끼도 낳겠죠?"
"얘는 남자야."
"그럼 아빠만 되는 건가? 새끼는 못 낳고?"
"응, 그치."
"(아쉬워 하며) 새끼도 낳으면 좋을텐데."

"그래도 얘가 더 크면 멋있겠다, 그죠? (팔을 크게 벌리며) 나중에 한 이만해져요?"
"아니. 얘는 그렇겐 안 커. 더 작아. (팔을 작게 벌리고) 한 이만큼?"
"그래도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더 크겠죠."
"ㅎㅎ 그래."

"(태수에게 손을 내밀며) 손. 손. 얜 손 달라고 해도 안 줘요?"
"아직 안 가르쳤어."
"그래서 못해요? 지금 가르치면 안되나?"
"응. 머리도 좀 나빠. ㅎㅎ"
"더 크면 하겠네요.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하겠죠."
"ㅎㅎ 그래."
"(앞발을 가리키며) 이건 손이고 (뒷발을 가리키며) 저건 발이에요?"
"사실 개는 전부 발이야. 발이 네 개라 네 발 동물이라고 해.
앞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손이라고 하는 거지, 이건 전부 발이야."

"(태수 이름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이 동네 사네요?"
"응. 언니는 저기 위에 살아."
"아 저쪽이요? 나도 가봤어요. 저기 슈퍼에 맨날 간 적도 있어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었어요.
난 여기 앞에 살아요. 저기 살면 학교가 멀겠다. 난 여기 살아도 먼데.
제가요, 여덟 살이라 학교 다녀요."
"아, 그럼 일학년인가?"
"네. 제가 나이를 여덟 살이나 먹었거든요. 그래가지고요."
"ㅎㅎ 그래?"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이 이천 팔년이잖아요. 그럼 이천 십삼년에 얘는 몇 살이에요?"
"다섯 살쯤?"
"나는요?"
"지금 여덟 살이니까, 열 세 살?"
"나두요? 나이를 같이 먹네요?"
"그치. 다 똑같이 먹지. 어른들도 같이 먹지."
"그럼 이천 백년에 얜 몇 살이에요?"
"그땐 벌써 죽었겠네. (아차 싶어서) 개는 사람보다 오래 못 살아.
이십년 쯤 살면 되게 오래 산 거고, 보통은 십년 넘게 살다 가."
"그렇구나. 난 이천 백년까지 살 건데. 근데 전 할머니 되는 건 싫어요. 안 되면 좋겠어요.
왜냐면요, 할머니 되면 엄마랑 떨어져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 싫으니깐."
"그래?"
"네. 그래도 나는 이천 백년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깐. 그때까지 많이 남아서 좋아요."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많이 남았네. 좋겠다."




태수와 아이 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06/23 01:58 2008/06/23 01:58
어렸을 적 나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기쁜 티를 내지 않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슬픈 티를 내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 내 감정을 눈치챈 것 같으면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의연하게(그걸 의연한 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찍은 사진에 나온 내 표정은 그래서 모두 똑같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웃을 줄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보고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게 "사진 찍을 땐 좀 웃어라"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졸업사진이 나온 날 아이들이 사진을 보겠다고 우우 하고 달려들자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잘 나왔으니까 걱정 마. 미영이만 빼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런 면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웃길 수도 있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 앞에만 가면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던 거다. 오죽하면 스무살 때 사귄 남자친구는 내게 "네가 남자냐"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래도 음, 저래도 음. 나중에 그 친구는 노골적으로 까페 옆자리에 앉은 다른 여자를 가리키며 "저 여자 정말 애교 많다" 라는 말을 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졌던 것엔 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 친구의 생일을 함께 보내고 집에 돌아가던 길, 나는 그 친구의 등을 부여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는데, 남자친구의 생일에 특별히 해 준 것도 없고 애교도 떨지 못하고 활짝 웃어주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그런 종류의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 날 일방적으로 잠시 떨어져 있자고 이야기하고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 뒤늦게서야 다시 만나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 친구는 냉정하게 돌아섰고, 뒤늦게서야 울며 불며 내 감정을 이야기했지만 너무 늦은 일이었다.


내가 어느 누구의 앞에서도 잘 웃게 된 것은, 우습게도 학교 앞 커피숍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막 실연을 한 직후여서 무슨 일이라도 정신없이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일하기 시작한 그 커피숍에서, 나는 나를 모르는 손님들이 뚱한 내 표정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래 억지로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웃으며 서빙을 하고, 웃으며 계산을 했다. 고작 한 달 반을 일했을 뿐인데 그곳을 나온 뒤에도 나는 웃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이란 게 워낙 단순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 큰 상태였기 때문에 학습 속도가 빨랐던 것인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때부터 놀랄만큼 잘 웃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여기서도 하하, 저기서도 헤헤. 사람들은 나를 유쾌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곧잘 웃기기도 잘 한다고 이야기했다. 워낙 웃어대니 자기를 좋아해서 늘 웃는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대시한 남자들도 생겼다. 본의 아니게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이 무척 미안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때 내가 워낙 잘 웃었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할 때면 언제나 잘 웃어주었기 때문에 오해를 할 수 있었겠다 싶었던 거지 그 당시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웃는 것 말고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툴렀는데,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날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던 그 사람은 그 여자에게 "미영이가 표현에 서툴러" 라고 말했고, 그 얘기를 내 남자를 뺏은 그 여자에게 직접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그 여자가 술에 취해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 라며 내게 안겨 울었을 때의 기분만큼이나 더러운 것이었다.


............라는 식의 길고 긴 글을 쓰려 했는데 더 이상 쓰기 싫어졌다. 귀찮기도 하고 다른 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어릴 때와 달리 점점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지금의 나는 오히려 감정을 숨기지 못해 걱정이다. 얼마 전 지금 다니는 회사의 한 분에게, 예전에 다닌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야기를 듣던 분이 깔깔 웃으며 말씀하셨다. "미영씨 표정이 장난이 아냐! 감정을 그렇게 못 숨겨서 어떡해?" 난 그냥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을 하면서 얼굴을 무척 찌푸렸던 모양이다. 전 동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다녀야 좋을 것이 없는데 말이다.

요즘은 그렇다. 나는 웃는 것 뿐만 아니라 눈물도 잘 감추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라면 낫지만,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될 상황에서, 그러니까 어려운 상대 앞에서 글썽이는 것은, 어느 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야 마는 것은 정말이지 곤란하다. 그러는 순간 나는 상대방과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투정을 부리는 혹은 나약한 아랫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운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속상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숨기는 게 너무 어렵다. 아니 어려워졌다. 나는 내 눈물을 통제할 수 없다.

어린 아이가 감정을 숨길 때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아이다운 것은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른이 감정을 있는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고, 어른스러운 것은 감정을 적절히 숨길 줄 아는 것이다. 쓰다 말다 멋대로 끝을 맺는 이 글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아이였을 때와 어른인 지금의 감정 표현이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




2004/04/16 17:58 2004/04/16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