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지로'에 해당되는 글 2건

  1. 사고루 기담 - 아사다 지로 (4) 2009/03/09
  2. 악마 - 아사다 지로 2007/11/26

- 생각해보면 시마를 만났던 그날이 운명의 갈림길이었던 것 같소.
  자신의 앞길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나도 젊은 애들에게 자주 그렇게 설교하지만 인생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죠. 운명의 갈림길에는 늘 누군가 타인이 서 있소. 그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팔을 잡아끌지.
  그 타인이 제대로 된 사람이면 문제가 없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소.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인간은 신이 대충 성의 없게 정해주는 건지도 모르오. 선악이나 능력 같은 건 전혀 관계없지. 그런 별볼일 없는 인간에 의해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고 마는 거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할 만큼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놈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평생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
  '키 퍼슨(key person)'이라고 하던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누가 그런 키 퍼슨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무서운 부분이라오.
  그 시마라는 남자는 특별히 나와 친했던 것도 아니고, 긴 인생 속에서 보자면 잠깐 스쳐간 사람에 지나지 않아. 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러나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버리고 말았소.


- "물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사람은 있었지요."
  "그런 말이 아니오." 하고 다쓰는 큰 소리로 회장을 나무랐다.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려 한 적이 있느냐는 거요."
  "그거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렇지. 당신이나 나나,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항상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을 거요. 죽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을 몇 번이고 지나왔을 거요. 그 와중에서 다행히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을까요?"
  "그런 게 아니오."
  다쓰는 뱃속 깊은 곳에서 짜내는 듯한 소리로 내뱉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소. 아까도 말했듯이 인생에는 운이 좋고 나쁘고가 없단 말이오. 당신뿐 아니라 누구든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죽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오."
  실내에는 긴장된 고요가 가득했다. 아마 그 순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 살인은 정말 어려운 일이오. 나 자신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 젊음이란 그런 어려움을 모르지.
  여러분, 누구든지 오륙십 년 넘게 살아오다보면 한 번쯤은 살인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거요. 한두 번은 반드시.
  그런데 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겠소?
  운이 좋아서가 아니오. 당신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이오.
  때문에 나는, 세상 사람들 말처럼 야쿠자가 인간 쓰레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았으니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말이나 태도로 타인을 죽이는 건 죄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야말로 인간 쓰레기가 아니오?

<사고루 기담>中 '비 오는 밤의 자객' 일부, 아사다 지로作


2009/03/09 10:17 2009/03/09 10:17

그해 이학기부터 나는 차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교회도 없고 목사님도 없었다. 그 대신 낡은 목조 교사와, 내 이름을 성은 생략하고 이름으로만 불러대는 프로 레슬러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 나로서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 쌀 두 가마니처럼 생긴 선생님은 러닝 셔츠 한 장만 걸친 차림새로 교단에 서서, 이따금 통나무 같은 팔을 이리저리 꺾어 우드득하는 소리를 내어서 아이들을 웃기는 것이었다.

한낮의 쉬는 시간에 나 혼자 자습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휘파람을 불며 다가와, 무릇 아이들이란 반드시 소프트 볼을 해야만 어른이 될 수 있노라고 말했다.

너무나 깍듯한 인사 말씨 때문에 나는 모두의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그런 별종인 나를 업신여기는 친구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의지박약한 개종자처럼 이렇다 할 수난 한번 겪는 일 없이 그들에게 동화되었다.

놀이시간이나 체육수업 때면 나는 맡아놓고 모두의 짐덩어리였다. 그러나 내가 외야로 날아온 공을 처음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냈을 때, 교정과 교실 창문에서는 일제히 박수갈채가 들끓었다. 나는 마치 우승한 야구선수처럼 위닝 볼을 가슴에 품고 센터에서 홈 베이스까지 내내 울면서 달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넓고 넓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나는 신이 아닌 인간들의 선의에 의해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이윽고 정신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었다.


- 아사다 지로 단편소설, <악마> 중에서






2007/11/26 00:05 2007/11/26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