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일학년 땐, 아침마다 교실 TV로 영어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인형극이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때 분위기야 요즘같지 않았으니 인형들이 뭔 소릴 하는지 통 모르는 채, 애들이랑 떠들기나 한 거 같다. 그리고 삼학년 땐가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영어 조기교육에 관심 있던 이전 교장선생님과 달리, 새 교장선생님은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 주의였기 때문에 우린 아침마다 시조창을 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배운 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전문가 아저씨의 선창이 스피커로 흘러나오면 우리가 따라 불렀다. "태사아아아안이 높다하되에에에에에에 하아느으을 아래 뫼이로다으아아아아아."
그리고 공책을 한 권씩 마련해서 매일 시조 한 편씩 썼다. 우린 숙제 안 해 혼난 얘기, 어제 먹은 간식 얘기 따위를 초장, 중장, 종장 3-4-3-4, 3-4-3-4. 3-5-4-3 형식으로 적어내었다. 매달 한 번씩은 시조짓기 대회라고 해서 한 학년에 몇 명씩 상도 주고 그랬다. 그 덕에 중고등학교 가서 시조 배울 땐 수월했다. 반 아이 하나는 창에 흥미를 느껴 국악중학교에 지원하기도 했다. 붙어서 다녔는지는 헷갈리지만. 여하간 막상 저 때는 아침마다 시조창을 하고 시조를 쓰고 그러는 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릴 때 배운 건 몸에 붙는 모양이라 아직도 시조를 흥얼거리곤 한다.
요 며칠 감기를 된통 앓고 있는데, 오늘 낮에 평소처럼 시조를 읊다가 내 목소리에 내가 솔깃했다. 감기로 쉰 목소리가 꽤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청사아아아안리이이이이이이 벼억계에에에에수우우야" ......워매, 이건 꼭 제대로 된 시조창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혼자 방에 앉아 벽을 보며 몇 번이나 창을 했다. 득음을 위해 피를 토하는 이처럼 비장한 자세로, 틈틈이 가래를 뱉어가면서.
이게 오늘 내 목소리가 형편없이 쉬어버린 이유. 우습지만 즐거웠도다.
가장 좋아하는 건 황진이의 시조들.
어느 정도냐면, 고액권에 신사임당 대신 황진이를 넣는 편이 낫다고 주장할 정도였다(집에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아 나 원 환장하게 좋은 거지.
그 중 '상사몽(相思夢)'이란 작품은 정민아라는 가야금 연주자가 곡을 붙여 부르기도 했는데
그녀의 노래도 아주 좋다. 아래는 퍼온 영상.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멀고 아득한 다른 날 밤 꿈에는
같이 출발해 중도에서 만나기를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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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시조는 참 좋죠^^기대승의 한시나 황진이의 한시, 난설헌의 가사와 시들도 참 좋아요.
전 신사임당보다 허난설헌이 고액권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유교 가부장제의 최대 피해자였죠. 맘대로 시를 쓸 수도 없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못난 남편 덕에 말이죠.
황진이의 시에는 꿈이라는 매개체가 참 많이 나오는데요,
전 그걸 가장 잘 계승한 게 박정현의 몽중인과 꿈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해요^^
저도 그 남편이란 사람 싫더라구요. 그 입장에선 또 할말이 있었겠지만은 일단은 콱... ㅎㅎ
박정현 노래는 잘 몰라요. aspacia님 글 보니까 저 두 곡을 들어보고 싶네요.
오늘은 덕분에 허난설헌과 박정현을 뒤적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