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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럼프 2005/11/24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굳이 따져보자면 한 2주쯤 됐나. 그보다 더 됐나.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 진짜. 의욕이라곤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 그런 거 말이다.

회사 사이트 업데이트를 매주 꼬박꼬박 해야 하는데 혼자 하고 앉아 있자니 씨발, 하고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 쓸까 생각하고 생각나면 글 쓰고 청탁할 사람 찾아 연락하고 청탁한 글 안 들어온다고 열받아 하고 글 들어오면 내가 쓴 거랑 그것들이랑 웹에 올리려고 이미지 만들고 매일 바뀌는 사이트 롤링 페이지 기계처럼 만들어 서버에 올리고 그리고 이런 일들만 있을 리가 없으니 알파에 베타 플러스.

사이트 열고 처음엔 주말에 밤새서 월요일 오전에 짠- 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나름 즐겁기까지 했는데 점점 지치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지난 주말-이번 주초엔 퓨즈가 나가 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주가 돌아왔지만 업데되지 않은 메뉴가 왕창 생겼고, 이렇게 될 줄 뻔히 알면서 나는 손을 놓고 있었고, 뭔가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월요일을 맞이했다.

일에서 비롯된 우울증은 점점 더 악화되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이냐- 란 생각까지 하게 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더 우울해졌고, 심지어 어제는 너무 우울해서 -회사엔 몸살이 났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울해서였다- 출근도 안 했다. 그렇다고 집에서 허브차를 마신다거나 가벼운 산책을 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우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종일 누워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 회사에 출근해서도 그다지 나아질 것이 없었다. 아래는 오늘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다.

 실장님 "좋은 노래 있는데 틀어줄까?"
 나 "싫어요."
 안(동료) "우리 사다리 타서 아이스크림 사오기 할래요?"
 나 "싫어요."
 실장님 "저녁으론 뭔가 맛있는 걸 먹자."
 나 "싫어요."
 안(동료) "난 먼저 퇴근하지롱. 이 기자를 만나러 가요."
 나 "이 기자는 또 어떤 여자야?"

아... 글로 써놓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인간답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급기야 안(동료)이 "대체 씨는 행복한 거예요. 이런 땡깡 우리가 다 받아주잖아요." 라고까지 했는데,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지만 찔린 걸 들킬까봐 모르는 척 했다.

그나저나 늦은 밤부터 우울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것만 같다. 의욕이 다시 생기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이 의욕이 내면 깊은 곳에서 순수하게 생성되었다기 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동태처럼 일하다간 짤리는 순간이 올 수 있겠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어쨌거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시 의욕을 불살라 보자. 싶다.


[덧붙여서]
1. 기념으로 집에 오는 길에 우유랑 오징어숏다리를 사 와서 귤이랑 같이 먹었다. 맛있다.
2. 한창 우울한 심정을 물질로 보상받겠다는 듯 쇼핑몰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놓은 상품들은 어떡하지? 그냥 삭제하면 되겠지만, 다시 보는 순간 정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악 누가 나 대신 장바구니 좀 비워주세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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