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있던 날. 앨리스와 시청 앞에 있었다.
광장 한쪽에 앉아 있는데 눈물만 자꾸 났다.
애도와 상실감. 그리고 무엇보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광장에 나와 있는 것뿐이란 사실때문에. 분하고, 속상했다.
탄핵 때에도, 작년 촛불정국 때에도, 지금도
분노를 참지 못해 거리로 나갔지만 그뿐이었다.
무력함. 막막함. 너무 높은 벽.
무기력은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
2.
밖을 바라봐도 깜깜하고
나를 바라봐도 깜깜하다.
눈 둘 곳이 없어.
하소연할 곳도 없다.
3.
지인들과 술에 대한 이야길 하다가.
요즘 술을 일부러 되도록 멀리한댔더니, 누군가 나에게
맨정신으로만 살기 힘든 세상에 어떻게 술을 멀리할 수 있냐며
나더러 독하다고. 자기는 그럴 수 없다고.
나도 한때 그랬다. 맨정신이 싫으니 술을 마시자, 라며 술을 마시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술을 마시면 더 또렷한 맨정신이 되던 걸.
덮어뒀던 기억, 애써 외면하던 현실, 깜깜한 앞날 같은 것들이
술을 마시면 자물쇠를 열고 몽땅 튀어나오던 걸. 그러면 얄짤 없이 한동안 깊은 우울.
요즘의 나에겐 술이 독인 셈이야. 어두운 것들을 이성으로 꾹꾹 누르고 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1. 꿈
꿈 안 꾸는 법 없나.
며칠쯤 참담한 악몽을 꾸더니
요 며칠은 이제 내가 얼마나 찌질한 인간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꿈을 연이어 꾸고 있다.
내 무의식이 그렇다니 더 싫어. 아니 뭐 그래. 이 캐찌질.
2. 술
술만 마시면 봉인돼 있던 우울한 감정이 뛰쳐나온다는 걸 눈치채고, 술을 멀리한지 꽤 됐는데
이달엔 두 번 과음을 했다. 그중 두 번째가 그저께 술자리였는데
기분이 좋아서 자꾸 마셨다지만 역시 폭탄주는 무리였다. 다음날인 어제 종일 몸도 기분도 저 바닥으로 가라앉아 애먹었다.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되고 있고. 아아 술아, 이제 한동안 다시 또 안녕하자.
3. 감기
콧물이 계속 나오고 지끈거리는 걸 보니 감기로구나.
이게 다 술기운에, 우산이 있는데도 굳이 비 맞으며 돌아다녔기 때문. 아아 술, 그놈의 술.
4. 치통
치과 가기 전엔 아프지 않던 어금니가
치과 치료 받고 금니로 변신한 이후부터 오히려 종종 아프다.
신경치료로 신경도 없어진 이가 어떻게 왜 아프지?
5. 날씨
날씨마저 꿀꿀하구나. 하늘도 술 마셨냐.
6. 실종
목요일에 문성근, 추자현 주연 영화 <실종> 시사회에 다녀왔다.
<추격자>를 보지 않아 비교하진 못하겠지만, 영화가 주는 충격이 비슷하려나.
영화 보다가 기분이 더럽고 무서워서 울었다.
와 이걸 또 어떻게 만화로 그리냐능. 영화 바꾸겠다고 할까. ㄷㄷ;
7. 나이
애진작에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이젠 처음 만나는 누구도 내가 이십대일 거라 착각해 주지 않더라.
그래도 아직은 정장 차림의 100% 회사원 포스 총각이
내 나이도 묻지 않고 당연하단 듯 '누님'이라 부르기 시작하면 난 좀 어색해......
주량이 센 편이었던 나.
재작년까지 제법 술을 자주 마시다가
작년부턴 일부러 술을 줄였다. 술자리에 가도 물만 마시다 오는 식.
작년 올해 술 마신 횟수를 합쳐도 양손에 꼽을 정도였고
몇 달 전부터는 아예 금주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술을 피한 건, 술이 잘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술이 우울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술자리가 즐겁든 아니었든 상관 없이 그랬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길엔 너무나 우울해져서 그 기분 그대로 우울한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중 올 시월엔 어찌어찌 금주의 봉인이 풀려서
많이는 아니어도 맥주 한 잔 걸치는 날이 꽤 있었는데.
어제, 친구 송별회를 한다고
하우스 맥주 무제한 제공, 뭐 이런 맥주집에 가서
일인당 요금보단 많이 마셔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심정으로
맥주를 막 들이키게 됐던 것이다.
밀맥주와 흑맥주를 세 잔 반쯤 마셨다.
정직한 오백 씨씨 잔이었으니 대략 천오백 씨씨 넘게 마셨다.
그리고 일행과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을 잃었다!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걷고 있었다.
그 상황이 기막히고 어딘지 모를 패배감, 당혹감, 허탈함, 억울함이 밀려와서
난 그만 길 위에서 울고 말았다.
어찌어찌 정신 차려 집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걸었지만 너무 힘겨웠고
새벽엔 달갑지 않은 갈증과 위통으로 잠을 설쳤다.
그리고 오늘, 느즈막히 일어나 다짐했다.
이제 술은 안 되겠다. 다시 금주다.
취해서 길을 잃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어젯밤 겪은 감정의 파도 말이야.
그건 너무 익숙해서 더 괴로운 것이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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