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렬로 앉아 앞만 바라보는 버스의 시스템을 좋아하는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야 하는 지하철을 탈때마다 난감하다.
(물론 빠르다는 점과 몰려서 오는 법이 없다는 점, 방향 표기가 자세히 되어있는 점 등에선 맘에 드는 편이다)
그래서 지하철에 탈 때면 신문이나 소책자등을 읽게 된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은근히 낯을 가리는 탓이다.
우야튼, 그러다보니 신문을 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땐 중간에 갈아타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반대로 타놓고는 신문을 보느라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한참을 가는 경우도 생긴다. 여유가 있는 때라면 상관없지만 급한 일이 있어 달려가는 경우에는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그저껜가 시청 앞에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회사가 있는 곳은 2호선 문래역. 시청까지 2호선을 타면 곧바로 가게 된다.
빈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 문득 내 귀에 안내방송이 들렸다. 탄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시청이란다. 하마트면 또 지나칠 뻔했다.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잽싸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청입니다"라는 우리말 안내방송이 끝나고 영어 방송이 나오는데 시청은 시티홀 이거늘, 영어로도 '시청, 시청~'하고 있는 거였다. -.-
아니 뭐 이런 안내방송이 다 있어.. 하며 갸우뚱거리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깥을 내다보니...
'신촌'이었다...-_-;
2.
어제는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사람들과 밖으로 나갔다.
회사에서 길을 건너면 작은 분식집이 하나 있는데 그리로 가고있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걸을 수도 없을만큼 심각한 통증이다. 횡단보도 앞에 빨간 소화전이 있었는데 그 쇳덩어리에 무릎을 찧은 것이다.
난 그런 소화전을 영화에서만 봤다.(보통 도망치던 자동차가 그걸 치게 마련이고 그럼 거기서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장면이 나온다) 내 주위에 그런 소화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_-;) 아무리 그래도 그걸 못 보고 무릎을 찧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무릎은 피멍이 들고 벗겨진채로 잔뜩 부어올라 있다.(세게도 박았다 -_-;) 어제 하루 절뚝이며 다녔더니 오늘은 양쪽 다리가 다 땡긴다. 오마이갓이다.
밤에 동생넘은 내 무릎을 보고 사연을 듣더니 미친 듯이 낄낄거린다. 냉정한 동생이다. ㅡ,.ㅡ
3.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
재수할 때, 다니던 화실 강사와 마찰이 있던 적이 있다. "왜 나를 싫어하지?"하며 궁시렁거리던 내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넌 공주가 아냐. 누구나 널 좋아할 수는 없어"
그 말을 듣고 많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지? 내가 공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누군가 날 싫어하는 것을 참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새내기 때엔 좀 상반되는 상황이 있었다. 어떤 모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던 때였다. 그들은 나를 정말 좋아해 주었다.
그때 누군가가 했던 말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기 주관이 없고 남에게 자기를 맞추는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냐?"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정말 무뎌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얻는 상처같은 것도 빈도와 깊이면에서 많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상처받았을 타인들의 말이나 행동에도 너스레를 떨며 그러려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럴 수 있게 된 건 이제 나름대로 자리잡은 대인관계관 때문이다.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지. 나도 이유없이 괜히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내가 이유없이 미울 수 있겠지." 뭐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누가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는 눈치가 보여도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가 날 피하는 것 같은 눈치가 보여도 좀더 의연히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어 좋은 점은? 세상살이 단순하지가 않아(^^;) 그게 나의 오해였음이 드러날 때도 있고 그의 의사에 상관없이 내가 늘 웃어주다 보니 어느새 되려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그 동안 나도 스트레스 덜 받고 괜한 마음고생도 피하게 된다. 하루하루는 짧은데 불편한 시간은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그리고 음, 확실히 내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너무 눈치보며 고민하는 때도 줄어들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좀더 주체적이 된 느낌이다. 실제로 내 행동도 많이 변했다.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지만 지금은 그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걸 내가 느낀다.
근데 이 얘기를 왜 꺼냈냐구?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자위하는 것일 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거든.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혹시라도 인간관계 때문에 열받는 양반덜은 나같은 자위라도 하면 스트레스라도 덜 받진 않을런지.
(덧붙임: 물론 그렇다고 남 배려를 안 하고 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믄 뭐가 눈치이고 뭐가 배려인지 가릴 수 있겠지. 나도 좀더 현명해져야 하겠고..)
일렬로 앉아 앞만 바라보는 버스의 시스템을 좋아하는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야 하는 지하철을 탈때마다 난감하다.
(물론 빠르다는 점과 몰려서 오는 법이 없다는 점, 방향 표기가 자세히 되어있는 점 등에선 맘에 드는 편이다)
그래서 지하철에 탈 때면 신문이나 소책자등을 읽게 된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은근히 낯을 가리는 탓이다.
우야튼, 그러다보니 신문을 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땐 중간에 갈아타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반대로 타놓고는 신문을 보느라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한참을 가는 경우도 생긴다. 여유가 있는 때라면 상관없지만 급한 일이 있어 달려가는 경우에는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그저껜가 시청 앞에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회사가 있는 곳은 2호선 문래역. 시청까지 2호선을 타면 곧바로 가게 된다.
빈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 문득 내 귀에 안내방송이 들렸다. 탄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시청이란다. 하마트면 또 지나칠 뻔했다.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잽싸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청입니다"라는 우리말 안내방송이 끝나고 영어 방송이 나오는데 시청은 시티홀 이거늘, 영어로도 '시청, 시청~'하고 있는 거였다. -.-
아니 뭐 이런 안내방송이 다 있어.. 하며 갸우뚱거리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깥을 내다보니...
'신촌'이었다...-_-;
2.
어제는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사람들과 밖으로 나갔다.
회사에서 길을 건너면 작은 분식집이 하나 있는데 그리로 가고있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걸을 수도 없을만큼 심각한 통증이다. 횡단보도 앞에 빨간 소화전이 있었는데 그 쇳덩어리에 무릎을 찧은 것이다.
난 그런 소화전을 영화에서만 봤다.(보통 도망치던 자동차가 그걸 치게 마련이고 그럼 거기서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장면이 나온다) 내 주위에 그런 소화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_-;) 아무리 그래도 그걸 못 보고 무릎을 찧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무릎은 피멍이 들고 벗겨진채로 잔뜩 부어올라 있다.(세게도 박았다 -_-;) 어제 하루 절뚝이며 다녔더니 오늘은 양쪽 다리가 다 땡긴다. 오마이갓이다.
밤에 동생넘은 내 무릎을 보고 사연을 듣더니 미친 듯이 낄낄거린다. 냉정한 동생이다. ㅡ,.ㅡ
3.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
재수할 때, 다니던 화실 강사와 마찰이 있던 적이 있다. "왜 나를 싫어하지?"하며 궁시렁거리던 내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넌 공주가 아냐. 누구나 널 좋아할 수는 없어"
그 말을 듣고 많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지? 내가 공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누군가 날 싫어하는 것을 참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새내기 때엔 좀 상반되는 상황이 있었다. 어떤 모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던 때였다. 그들은 나를 정말 좋아해 주었다.
그때 누군가가 했던 말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기 주관이 없고 남에게 자기를 맞추는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냐?"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정말 무뎌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얻는 상처같은 것도 빈도와 깊이면에서 많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상처받았을 타인들의 말이나 행동에도 너스레를 떨며 그러려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럴 수 있게 된 건 이제 나름대로 자리잡은 대인관계관 때문이다.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지. 나도 이유없이 괜히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내가 이유없이 미울 수 있겠지." 뭐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누가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는 눈치가 보여도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가 날 피하는 것 같은 눈치가 보여도 좀더 의연히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어 좋은 점은? 세상살이 단순하지가 않아(^^;) 그게 나의 오해였음이 드러날 때도 있고 그의 의사에 상관없이 내가 늘 웃어주다 보니 어느새 되려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그 동안 나도 스트레스 덜 받고 괜한 마음고생도 피하게 된다. 하루하루는 짧은데 불편한 시간은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그리고 음, 확실히 내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너무 눈치보며 고민하는 때도 줄어들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좀더 주체적이 된 느낌이다. 실제로 내 행동도 많이 변했다.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지만 지금은 그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걸 내가 느낀다.
근데 이 얘기를 왜 꺼냈냐구?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자위하는 것일 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거든.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혹시라도 인간관계 때문에 열받는 양반덜은 나같은 자위라도 하면 스트레스라도 덜 받진 않을런지.
(덧붙임: 물론 그렇다고 남 배려를 안 하고 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믄 뭐가 눈치이고 뭐가 배려인지 가릴 수 있겠지. 나도 좀더 현명해져야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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