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 해당되는 글 3건

  1. 성북동 개들 2004/10/31
  2. 빌라 사람들 2004/08/15
  3. 3층 2004/06/18
쌀집 개 몽실이. 주인 아줌마가 애지중지 어쩔 줄 몰라하며 사랑하는 개. 제법 작지 않은 몸집인데도 아줌마는 몽실이를 안고도 다니고 업고도 다닌다. 낯을 안 가려 누가 다가가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등 애교 만점. 얼마 전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는데, 한 번만 보자고 몽실이에게 사정해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고 컹컹 짖으며 경계한다.

길 건너 이름 모르는 개. 내가 이름 붙인다면 빠삐용 쯤 되려나. 그 집 아줌마가 대문을 잠시라도 열어두면 득달같이 달려 나간다. 탈출했다 붙잡혀서 끌려 들어가는 광경을 본 게 벌써 여러 번. 우리 회사 직원이 잡아서 넣어준 적도 있다. 베란다에 나가 있으면 종종 "들어가!" 라 외치는 아줌마의 애정 섞인 외침이 들려온다. 틈만 나면 기를 쓰고 탈출하려 애쓰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제일 불쌍한 옆집 개. 저번에도 이 개에 대해 쓴 적이 있지만, 그 집 사람들은 대체 개를 키우는 건지 마당 한 쪽에 바위를 갖다 놨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화분을 키워도 그것보단 정성을 쏟겠다 싶다. 베란다에 서면 본의 아니게 그 집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데, 오고 가는 그 집 사람 누구도 그 개를 쳐다보는 꼴을 못 봤다. 그래도 녀석은 집주인이 차를 끌고 들어올 때면 차고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꼬리를 흔들고 목이 찢어져라 짖어대며 열렬히 환영한다. 주인이 마당에 들어서면 한 번만 봐 달라고 난리를 치지만, 주인은 결코 쳐다보는 법 없이 무심하게 현관에 들어선다.

처음엔 개 자체를 싫어하는데 집이나 지키라고 키우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 집에 새로운 개가 등장했는데,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새끼 강아지를 마당이 아닌 집안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가끔씩 그 개와 함께 주인 부부가 마당에 나와 활짝 웃으며 얼르고 달래고 난리도 아니다. 그 때도 원래 있던 개는 아우성을 치지만, 그들은 그 개 쪽으론 얼굴도 돌리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두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잔인한 인간들이라 욕한다. 아무튼 원래부터 짧은 줄에 매여 하루종일 빈 마당만 응시하는 그 개를 보며,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새로운 개가 등장한 후부턴 종종 늑대처럼 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지같은 옆집 사람들. 나는 그들이 싫다.




2004/10/31 02:17 2004/10/31 02:17
사무실 베란다에 서면 건너편 빌라가 눈에 들어온다. 빌라엔 맨 꼭대기집에 딸린 것인지 원래 그렇게 작은 집이 따로 있는 것인지 아리송한 삼각형 지붕의 다락방이 몇 개 있다.

그, 다락방 중 한 곳엔 어떤 남자가 있다. 처음에 그를 보았을 땐 하도 꼼짝도 않고 있어서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어느 날 밤 동료 직원이 "저기 보이는 거 사람 아녜요?" 라고 물었을 때 웃으면서 "에이, 저거 사람 아녜요. 저도 처음엔 사람인가 했거든요. 근데 며칠 동안 관찰했는데 움직이질 않거든요. 아마도......" 라고 말하는 찰나, 그 '사람'이 한쪽 팔을 움직였고, 놀란 나는 동네가 떠나가게 꺅 소리를 질러대고 말았다.

그 때부터 베란다에만 나가면 그 다락방을 보게 되었다. 강풀 님이 daum에 연재하는, 아파트가 배경인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을 보던 참이라 어쩐지 오싹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곳만 바라보면 무서워지기도 하고 그랬다. 폐인이 아닌가도 싶었다. 창가에 책상을 놓고 앉아 어쩜 저리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나 싶어서, 회사 사람들과 분명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는 둥 야동을 보고 있는 걸 거라는 둥 이야길 했다.

얼마 뒤 그 방의 조명이 바뀌었는지, 실루엣만이 아니라 그 사람 모습이 잘 보이게 되었다. 어찌됐든 줄기차게 앉아있는 그 사람. 낮에도 앉아있고 밤에도 앉아있다. 책장을 넘기는 모습도 보이는 걸 보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도 싶은데, 물건으로 착각할만큼 꼼짝 않던 그 사람은 요즘 들어 움직임도 커지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머리를 털거나 심지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무슨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잘 되면 좋겠다.

또 다른 어떤 집. 요 며칠 계속 밤마다 희미한 불빛이 번쩍거린다. TV를 보는 듯 한데, 전엔 그런 적이 없더니 요즘 들어 밤마다 그러고 있다. 혹시 며칠간 집을 비우면서 TV를 켜놓고 간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불이 꼭 꺼지는 걸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여름 휴가를 얻은 김에 밤마다 비디오를 잔뜩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 중이다.

그리고 다른 집들은, 대부분 늦게까지 불이 켜 있는 곳이 없다. 에어콘 때문인지 베란다 창도 꼭꼭 닫아 놓아서, 딱 한 번 어떤 여자가 왔다갔다 하는 실루엣을 본 것 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아, 저번에 꺅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빌라 앞뜰에 초등학교 고학년 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빤스만 입고 나와, 바바리맨처럼 몸에 두른 담요를 펄럭거리며 꺅꺅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곳 주민인 듯한 아줌마가 그 애를 지나쳤지만 눈길도 주지 않고 빌라로 들어갔다.




2004/08/15 01:48 2004/08/1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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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건물 1층, 세 명이 앉을 수 있지만 두 명이 앉아 일하던 골방을 벗어나 3층으로 이사를 했다. 골방에 앉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앉았던 건 아니고 입사할 때 자리가 부족해서 그랬던 건데, 나름대로 폐쇄적인 나는 그 방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1층 사람들은 3층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이 방엔 10명이 앉고도 자리가 남아 회의용 탁자를 놓았다. 내 자리는 출입구(문이 없다) 바로 앞이라, 방을 드나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방 밖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모니터를 홀라당 공개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일자 책상에서 ㄱ자 책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의자가 좀더 좋은 것이라 허리가 편해졌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햇빛. 사면 중 한쪽 면이 전면 유리다. 창문도 열 수 있고, 문이 달려있어 열고 나가면 작은 베란다도 있다. 1층에 있을 때 답답하면 현관 앞에 나가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던 것을 이제 못 하겠구나, 서운했지만, 3층에서 바라보는 성북동도 나름 괜찮구나, 생각했다. 옆집 잔디밭이 내려다 보이는데 잔디밭 구석엔 똥개가 한 마리 묶여있고, 얘야 하고 불러도 고개 한 번 돌리곤 무심해진다. 하긴 어제까지 3층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수 년 동안 그 개를 불러왔을테니 녀석이 새삼스런 반응을 보일 까닭이 없겠지.

그 전면 유리로 햇빛.이 들어온다. 창문 없는 골방에 있을 땐 형광등 불빛으로 불평 없이 지냈는데 이곳에 앉아있자니 낮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나비. 1층엔 밤마다 나방과 날파리가 날아들어 괴로웠는데 오늘 낮 이곳엔 흰나비 한 마리가 들어와 이 방과 저 방을 덩실덩실 날아다녔다. 물론 아직 밤이 되지 않았으니 이곳도 한 두 시간 뒤엔 나방과 날파리가 불빛을 따라 기어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도 지금 기분으론 괜찮을 것 같다. 여러가지 일들이 산재해 있지만, 햇빛과 베란다와 나비와 편한 의자와 ㄱ자 책상 같은 것들로 나는 지금 만족스럽다. 저녁으로 시킨 카레라이스 밥이 너무 적었던 것만 빼고. 그나마 많이 담긴 밥을 골라 집었는데, 나보다 적게 먹은 사람들이 배부르다고 하는 바람에 밥이 적단 말을 못했다. 어쨌든 여기는 3층.




2004/06/18 19:22 2004/06/18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