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해당되는 글 3건

  1. 부장 2006/03/30
  2. 정리 2004/01/24
  3. 너를 존경한단다 2001/03/07

화창한 봄 날씨를 내다보며 따분해하고 있는 오후에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장미영 부장님이시죠?"

모르는 목소리다. 그런데 부장님 운운하며 농담을 건네는 걸 보니
안면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친하지 않은 사람의 느닷없는 농담에 관대하지 않은 지라
냉담한 어조로 응했다.

 "누구시죠?"

 "ㅇㅇ은행입니다."

아 재미까지 없어. 더 냉담하게 대꾸했다.

 "그런데요?"

 "다름이 아니라 내일 오전에 저희가 장미영 부장님 회사로 찾아가서
 직원들에게 몇 가지 상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선물도 드리구요.
 괜찮을까요?"

캑.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상품 소개란 말보다 '선물' 이란 말에 혹한 나는 덜컥 '괜찮습니다' 라고 해버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대방의 말.

 "직원이 몇 명 정도 되나요? 저희 직원이 가서 모두에게 설명을..."

순간 전직원을 앞에 놓고 상품 소개를 하는 은행직원과-
그 옆에서 내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저기 제가 일개 직원 주제에 부장 행세를 해서 설명회를 열어도 좋다고 승낙했는데
 다들 바쁘신 것은 알지만 잠시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선물도 준다잖아요'

라고 변명하는 광경이 그려졌다. ......두려웠다. 그래서 말했다.

 "다 함께 설명을 듣는 건 불가능하겠는데요.
 부서가 네 다섯 명씩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내일 말고, 다음 달에 아주 싹싹한 여직원을 보내서
 (그룹 별) 설명을 하라 해야겠군요."

다행이다. 그런데 어디서 내 연락처를 봤기에 '부장'이란 되도않는 정보를 얻은 걸까.

 "그런데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나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정보수집능력이 뛰어납니다.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마세요, 다치십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기어이 내가 부장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달에 전화가 다시 오면 목소리를 바꿔
'장미영 부장은 회사 돈을 횡령하고 도망갔다' 고 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부장으로 둔갑하게 되었나.




2006/03/30 18:07 2006/03/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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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종일 심심해하다가 방청소를 했다. 제법 많은 물건을 버렸는데, 그 동안 갖가지 이유를 붙여놓고 간직해온 것들을 오늘은 눈 딱 감고 참 많이도 정리했다. 예를 들면 내 돈을 주고 처음 산 곱창끈 같은 것 말이다. 그건 중1 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삼각지에서 샀던 건데, 버릴까 말까 갈등이 있었지만 그냥 버렸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에서 부채춤 출 때 썼던 부채도 정리했다. 웬만하면 갖고있고 싶었지만 너무 낡은 나머지 조금만 움직여도 거기에 달린 깃털이 부서져서 사방에 나풀거려 할 수 없었다. 그 밖에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머리끈과 핀, 모자, 말라붙은 싸인펜, 도무지 언제 쓰게 될 지 모를 로션 샘플, 도무지 언제 뭘 산 건지 모를 영수증 따위를 모으니 커다란 비닐봉지로 세 개 나왔다.


2. 오늘 버린 물건 중엔 내가 받았던 선물도 있었다. 그래도 선물받은 건 다 갖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것들도 정리해버렸다. 기준은 선물을 주었던 사람과의 사이가 지금 어떤가란 것이었는데, 물건을 보는 순간 그 사람 생각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선물(이쯤되면 선물이라 말하기도 곤란하다)은 얄짤없이 내다 버렸다.


3. 좀전에 아는 오빠와 얘기하던 중 오늘 한 청소가 화제로 올랐는데, 그 분도 오늘 책상 정리를 하시다가 예전에 받은 선물을 버리셨단다.
 "3년 전에 받은 사탕은 이제 버려도 될 것 같아서요."
 "하하, 난 2년 전에 받은 로션을 조금 발라보고 버렸는데."
정말 크게 웃었다.


4. 오늘은 소품을 중심으로 정리를 했고, 이제 책장과 옷장도 한바탕 뒤집으려 한다. 책장에 책만 있었으면 굳이 정리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런저런 서류나 메모 같은 게 섞여있기 때문이다. 분명 버려도 될 것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물론 책 중에서도 99년 대학입시 자료집 같은 건 이제 갖고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마침 눈에 보이길래 예로 든 건데, 98학번인 내가 99년 자료집을 왜 소장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옷장도... 머리핀과 마찬가지로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없어도 되는 옷이 아닐까. 고3 때의 나에게 잘 어울렸던 펄럭이는 나시는.... 지금은 맞지도 않는데다 뜯어진 곳도 있어 걸치지도 못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굉장한 배바지도 아울러.....


5. 뭐 계획은 대충 이렇다.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녀볼까 생각하는 터이고 모레는 약속이 있어서 당장은 추가 정리를 할 수 없겠지만, 조만간 날을 잡아 정리를 해야겠다.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정리, 나에겐 꽤 큰 결심이다.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들을 손에서 놓는 일 말이다.


6. 나는 오늘 정리를 하면서 평소보다 덜 세부적인 기준을 둔 셈이다. 구멍이 큰 체로 걸러냈다고 해야 할까. 물건을 앞에 두고 내게 묻는다.
 "앞으로 이것을 평생 볼 수 없대도 상관없느냐?"
그럼 그걸 살아가면서 한 번은 보아야 할 이유가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나 자신에게 대충 대충 물었다. 그리고 오래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비닐봉지에 넣어 버렸다.


7. 이렇게 하면 좀 간단히 살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을 이것저것 끌어안고 사는 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것도 간단히, 서랍에 넣어둔 것도 간단히, 간단히 놓아두고 살면, 조금 덜 복잡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오래 전의 기억을 자꾸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눈앞에 없을테니까.


8. ......라고 말은 하지만, 무엇보다 방안의 먼지를 줄이고 싶기도 했음 -_-;; 요즘 무슨 스트레스를 그리 받는다고... 알러지로 몸이 말이 아님. 이렇게 심한 건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특히 얼굴과 손은 대박. 아아 산에서 살고싶다 ㅠㅠ




2004/01/24 05:44 2004/01/24 05:44
하루를 지내고 잠들 때 즈음엔 언제나 오늘도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으로도 힘든 삶을 사는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오버질을 하는 건진 몰라도 어쨌든 그렇다.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살아남는다' 내지는 '버텨냈다' 또는 '참아냈다' 혹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건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이렇게 살아가니 하느님(난 지금 무교지만 종교를 막론한 신이란 존재는 믿는다)이 싫을 때가 더 많다. 그 양반은 공정하거나 너그럽지 못하고 잔인하며 까탈스러운데 거기다 눈치도 없다.

(그래서 난, 사장이 망나니면 갈아치우고 대통령이 건달이면 쫓아내자고 목소릴 높이는 사람들이 어째서 신이란 존재 앞에선 무조건 자기가 잘못했다고 '내탓이오' '내 업보요'하며 용서를 비는지 아리까리하다)

어쨌든, 언제나처럼 오늘도 하루를 접으며 잘 버텨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까닭에 내가 나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용케도 잘 살아남는 내가 가끔씩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게 비록 얄팍한 자기합리나 연민일지라도..




내 핸드폰엔 그래서, 얼마전부터 이런 멘트가 떠 있다.

<너를 존경한단다>

.. 이게 내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고 배려이다.




2001/03/07 07:34 2001/03/07 0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