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에 해당되는 글 3건

  1. 그냥 2007/01/06
  2. 주말 2006/12/18
  3. 일요일 2005/11/06
1.
남의 취향을 비웃는 건 좋지 않다.
냉소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데도 종종 그렇게 되곤 해서, 그럴 때마다 '너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 라며 스스로를 꾸짖곤 한다.


2.
일이 좀 안 풀린다. 일정도 그렇지만 요 며칠 계속 심란하구나. 연말부터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꾸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탓인 게 분명해서 미안한데 어떻게 사과해야할 지 애매해서 망설이는 일도 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어서 난감한 경우도 있고. 다 신경 끄고 집중해서 일만 하기에 나는 너무 심약하다.


3.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을 놓거나, 바로 '언니 오빠'가 되어 팔짱 끼고 친한 척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회사 다니면서 만난 많은 동갑내기 혹은 연하 동료들과도 누구누구씨 아니면 누구누구 선배, 하고 불러왔다. 지금까지 말을 놓고 서로 이름만 부르며 지낸 동료는 또래 세 명 뿐. 그나마 그 중 둘은 퇴사 후에야. 하지만 지내다 보면 속으로 '이 사람하고는 그냥 존대나 격의 없이 지내도 좋겠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래도 그런 말을 입밖으론 꺼내지 못하고 꿀꺽. 어느날 갑자기 말을 놓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애교나 살가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웃기는 짓은 잘했지만. 헤어진 남자친구 하나는 심지어 '넌 애교는 없는데 유머는 역대 최고'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며 들이대면 난 좀 당황스러워서 오히려 뒤로 빠지게 된다. 나중에 늙고 외로워지면 '망할 년, 복에 겨운 소릴 하고 앉아 있었구나. 지금 이렇게 쓸쓸한 건 다 네 탓이야!' 라며 자책하게 될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지금도 나에게 막 들이대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4.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이 된 기념으로 이십대를 돌아보는 글이라도 쓸까, 하다가 관뒀다. '자, 스무 살부터 떠올리자. 요이- 땅!' 했으나 스무 살에 한 건 연애. 이십대 초반에도 중반에도 후반에도 연애, 연애, 연애. 분명 허구헌날 연애만 하며 산 건 아닌데. 다른 일도 많이 했고 혼자인 날도 많았는데 기억이란 왜 이렇게 편협한 것이냐. 어쨌든 연애하며 빛나는 순간들이 당연 있었으나 그에 따라오는 떠올리기도 싫은 안 좋은 기억들 하며. 이걸 지금 글로 정리해둔들 무슨 소용이냐 싶어 관뒀다. 그렇게 감성적인 접근이 아니라 연애를 하며 얻은 객관적인 무엇들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A 때문에 입에도 못 대던 생선회를 먹기 시작했지. 순대전골과 육회, 육포는 B 때문에. C 때문에 랍스터와 과메기를 먹어보았다-' 같은 순 음식 사연 뿐. 관뒀다.



2007/01/06 20:52 2007/01/06 20:52
금요일-
월간 논 원고 마감일. 온종일 미친듯이 작업하고 원고를 넘기니 저녁 7시. 그제서야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 발견. 며칠 전 구입해서 한 번도 신지 않은 채 '냄새 좀 빠지라고' 집게 옷걸이에 걸어 창밖에 널어놓은 롱부츠가 떠오름. 골고루 충분하게 젖어서 절인 배추처럼 늘어진 부츠를 손에 들고 낙담.

갑자기 생긴 '올드미스다이어리' 시사회 자리. 동대입구역인 우리집에서 브로드웨이 극장이 있는 신사역까진 겨우 다섯 정거장.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을 너무 딱 맞추어 출발. 지하철을 타고 휴대폰으로 헥사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림.

 "나 지금 안국역이야. 금방 도착할 거야."

안국역은 무슨... 이 열차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구만. 저 아저씨 뻥을 쳐도 괴상하게 치네... 하고 피식 웃다가 밖을 내다보니 정말 안국역. 내가 반대 방향 열차를 탄 것이었음. 부랴부랴 하차, 반대편 지하철을 기다려서 탑승. 먼저 극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지는 '지하철을 반대로 탄 걸 모르고 있었다'는 내 전화를 받고 애인인 곤오빠에게 얘기했지만, 곤오빠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니? 못 믿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브로드웨이 극장에 도착. 명단에 없다는 시사회 담당자와 잠깐의 실랑이(?) 끝에 극장으로 진입. 영화는 이제 막 시작된 상황. 허리를 굽혀 좌석을 찾아 앉고 있는데 스크린에서 예지원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대뜸 들려서 화들짝 놀람.

 "삼십대 백수 노처녀...!!"

 헐.

영화를 아주 잘 보고 흡족한 마음으로 귀가. 모처럼 만난 서지와 좀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먼 서지의 귀가시각이 임박하여 각자 집으로 향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귀가했는데, 문어발 전 남자친구와의 작업물이 모처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옴. 급 우울 모드.



토요일-
전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울 모드를 퇴치하는 덴 대청소가 약이라고 판단, 방청소 시작. 바닥이며 책상, 책장, 창틀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닦음. 앞으로 공연히 전 남자친구를 문득 떠올리는 일이 없도록, 그 동안 받은 선물들을 모조리 버림. 언젠가 그가 분홍색 구슬반지를 문구점에서 사와 끼워준 적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끼워보고 빼던 중에 줄이 끊어져 사방으로 구슬이 튐. 싹싹 쓸어모아 마저 버림.

저녁,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해토 망년회에 뒤늦게 합류하러 신촌으로 가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 가뜩이나 꿀꿀한데 눈까지 징그럽게 내리니 암담. 신촌 한복판에서 언성 높이고 따귀를 때려가며 싸우는 어린 커플 목격. 이런 큰 눈을 맞으며 저렇게 심하게 싸운다면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싶음. "낭만적인 기억은 금물이에요" 하며 다가가 우산을 씌워줄까 하다가 돌아섬.

2차가 끝나고 남은 멤버는 나, 동기 니꼴라스, 후배 양아, 묵이, 상태. 양아가 잘 안다는 마포의 어느 횟집에 가려 했지만, 평소 주말에도 자정 넘어 택시 잡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신촌은, 눈 폭격을 맞은 이날은 택시와 승객의 전투로 온통 아우성. 결국 신촌 횟집으로 들어가 3차 시작.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눈송이를 보며 우울한 기분이 자꾸 들었으나 대화만큼은 즐거웠음.

그간의 연애 패턴은 영 아니라는 충고를 들음. 그리고 앞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초반에 이애들에게 보여주고 검증 받겠다고 약속. '남자 보는 눈은 남자가 정확하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문제들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 그래도 나는 그이를 훨씬 많이 지켜봤다고. 너희는 단지 몇 시간만 보고 판단했을 뿐이잖니?' 라는 마음가짐 때문이란 걸, 이애들도 나도 알고 있음.

날이 밝음. 지하철 운행 시각까지 기다렸지만 춥고 취한 김에 택시에 승차, 집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감.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백여 미터를 걸어가야 하는데, 가뜩이나 취한 상태에 폭설을 예상 못하고 신고 나온 9cm 하이힐을 신고 경사진 눈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음. 결국 구두를 벗고 스타킹 바람으로 걷기 시작.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더운물을 들이부었음. 아이들과 낄낄거리며 얘기하다 돌아온 참이지만, 방에 들어오니 문득 속상해져서 펑펑 울기 시작. 끝난 연애로 우는 건 이게 마지막이라고 다짐.



일요일-
홍대 앞에서 후배를 만남. 가는 길에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보며 '저런 눈길을 구두를 벗고 걷다니' 하며 몸서리. 취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던 일.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이제 어딜 갈까 궁리. 이런저런 이유로 몇 곳을 패스시키고, 나의 권유로 후배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함. 그러나 이날따라 분위기는 어수선했고, 사람이 많아서 어정쩡한 자리에 티테이블을 놓고 앉아야 했음. 도무지 대화를 할 수 없게 만든 요인 중 하나는 근처 테이블 일행이던 한 아가씨. 방심할 틈을 주지 않고 들려온 그녀의 "꺅꺅꺅꺅!" 하는 요란한 웃음소리 때문에 도 나도 급 좌절.

얼마 후.
 "됐어. 이제 저 아가씨 그 정도로 크게 웃진 않을 거야."
 "언니가 어떻게 알아?"
 "봐 봐. 남자 일행 대부분이 일어나잖아. 남자들 중에, 저 아가씨가 마음에 둔 남자가 있을 거야. 그래서 평소보다 오버했던 거지. 이렇게 생각했을 걸. '내 솔직하고 내숭없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하지만 이제 다들 일어나니까, 이제부턴 그러지 않을 거야."
 "꺅꺅꺅꺅꺅!"
 "언니 뭐야. 그대로잖아."
 "남자 한 명은 남았잖아. (자신 없이)저 남자를 좋아하나 보지."

결국 음악을 듣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마시다 일찍 헤어짐. 후배는 나중에 문자메시지로 '우리가 만났던 날 중 가장 간소하고 조용했던 날'이란 평을 내림.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심.

 "어제 네가 방 닦은 걸레 있지, 그거 내가 현관 앞 계단 청소할 때 쓰는 걸레야!"



서른이 며칠 안 남은 나의 주말.




2006/12/18 23:33 2006/12/18 23:33
1. 일찍 일어나려고, 어젯밤 잠도 오지 않는데 먹기 싫은 밥 먹듯 꾸역꾸역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아침 7시...... 성공! 좋아서 아침을 맛나게 먹고 다시 잠들었다. -_-

한 시가 넘어서야 다시 일어나 동생과 집안 청소를 하고 회사로 나왔는데, 아, 담장마다 울긋불긋, 골목마다 낙엽이 수북수북. 이런 계절에 건물 안에 틀어박혀 일이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오늘은 조낸- 일하기 싫다.


2. 주말 동안 '혹시 이 문자 네가 보낸 거니' 란 연락이 세 건이나. 하나는 화이팅 기원, 나머지 둘은 행운의 편지의 변형된 문자.

이번이 처음이 아닌지라 이 참에 지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나는 익명으로 애교스런 문자 보내고 그런 거 하지 않아요. 문자 계속 주고받느니 통화 한 번 하는 게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구식 마인드를 갖고 있기도 하고,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 1004 같은 번호로 문자를 보내는 일은 더욱이 없습니다요 -_- 가끔 '소중한 사람 20명에게 이 문자를 보내봐- 3명 이상에게 돌아온다면 너는 외롭지 않은 거야' 하는 식의 문자를 받으면 '누군지 보낸 사람 초조하겠군' 생각하면서도, 내 안에 있는 '아저씨'의 피가 마구 끓어- 기어이 같은 문자를 돌리진 않아요. 그러니 지금까지 그런 문자를 내게 보냈다가 답장 못 받고 '말로만 친구였어!' 하고 괘씸해했을 친구들에게도 미안. 하지만 앞으론 그런 문자 보내지 말아줘, 답장 안 하는 대신 언젠가 네가 살인을 저지르고 찾아오면 숨겨주겠어.


3. MOT의 '카페인'이란 곡을 좋아한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마시면 심장이 뛴다'거나 '한 모금만 마셔도 잠이 안 와서'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이 다행스레 여겨질 정도이니까. 어제 MOT의 공연이 있었지만 한창 진행중인 감기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종일 누워 있느라 가지 못했다. 다음 공연은 언제? 다음 앨범은 언제?


4. 아, 빨리 시간이 흘러흘러 서른 살이 되면 좋겠다. 서른 살만 되어봐라. 다 죽었어~~~~!!!!!




2005/11/06 22:00 2005/11/06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