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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고 2005/12/19
  2. 동생의 사고 2005/08/22
어제는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저런 일을 치르러 돌아다니느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바람에 중요한 계약 자리에서 찻잔 받침을 떨어뜨리고 콜라가 가득 든 유리컵을 볼링공처럼 마룻바닥에 데굴데굴 굴리거나 긴히 메모할 쪽지가 없어 눈 질끈 감고 까페에 비치된 잡지 한 쪽을 뜯어내다 곧바로 직원에게 걸리며 내게 묻지도 않은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지하철을 타고나서야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음을 깨닫는 등, 온종일 브라운 신부처럼 온갖 사고를 치며 돌아다녔다.




2005/12/19 00:10 2005/12/19 00:10
동생은 요리사다. 그리고 이제 겨우 스물 다섯 살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다른 곳에 비해 출근시각이 늦은 곳이라, 동생은 나보다 두 시간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게 됐다. 화장도 하지 않고 뛰쳐나와 회사 가까이 다다랐을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쳐서 병원에 가고 있는데 와 주면 안 되겠냔다. 얼마나 다쳤길래 병원에 오라고 하나, 꼭 가야 하냐고 물으니 올 수 없겠냐고 재차 묻는다. 순간 어느 정도 작게 다친 것으론 동생이 출근길의 나를 굳이 부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어보니...... 밀가루를 반죽하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 갔단다.

얼마나 다친 건가, 혹시 손가락이 잘리기라도 한 걸까, 심장이 마구 떨렸다. 동생은 지금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길인데 얼마나 다쳤는지는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동생이 가고 있다는 병원을 향해 달렸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데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 옮긴 그곳을 다니는 걸 동생은 매우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장사는 잘 되는데 종업원은 적은 곳이라 하루 14시간씩 일했고, 밥은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여의치 않아 집에 오면 늘 뻗다시피 했다. 허리가 아파서 똑바로 누워 자지 못했고, 8월 들어선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예비군 훈련 기간의 임금은 월급에서 제외하겠다는 사장과 다투기도 했고, 사장이 없을 때 매일 가족들을 데려와 공짜로 밥을 먹이려는 아줌마 때문에 열받아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은 이달 말까지만 그곳에 나가고 이제 다른 곳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어젯밤에도 온 가족이 모여앉아 그곳에서 생긴 열 받는 일들을 성토하다가 결국 내가 낄낄거리며

"그래, 내가 언제 꼭 그 소재들을 모아서 베스트셀러 극본을 써줄게"

하고 말하는 바람에 다 함께 한참을 낄낄거리다 굿나잇 인사를 했는데.

이제 꼭 퇴사를 열흘 남겨둔 상황에서 사고가 난 거다. 택시는 더디게 달렸다. 아직 정오도 안 된 시각인데 도로엔 자동차들이 넘쳐 흘렀다. 올라가는 미터수가 요금이 아닌 시간으로 다가와 고스란히 가슴에 꽂히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지나가는 차들에게

"야 이 새끼들아, 다들 대중교통 이용하고 다녀!"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세상의 온갖 신에게 원망도 퍼부어댔다. 사고가 나도 차라리 나한테 났으면 좋았을텐데. 기도할 때마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엄마와 동생만큼은 지켜달라고 했는데 이런 사고를 터뜨리다니. 신은 세상에 없던지, 있대도 변태 아니면 미치광이일 거라고 속으로 마구 욕설을 하며 질질 짰다.

병원을 찾아 응급실로 달려들어가자 동생이 먼저 알아보고 나를 불렀다. 붕대를 감은 왼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은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좁은 공간으로 손이 빨려 들어가 짓눌린 바람에 왼손을 앞으로 쓸 수 있을 지는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만의 하나, 손을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앞이 캄캄했지만 티를 내면 동생이 더 불안해 할까봐 괜찮을 거라고 달랬다.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자꾸 한숨을 쉬었다.

"이주 노동자냐?"
"헤헤"

동생은 전문대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조리사 자격증도 따서 벌써 여러 군데에서 일해온, 나름대로 사회인이 다 된 인간이다. 하지만 내겐 고작 스물 다섯 짜리, 아직도 어리기만 한 우리 집 막내란 생물체에 불과하다. 그런 놈이 가뜩이나 힘든 곳에서 일하다 손이 뭉개져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데 한없이 안쓰럽기만 했다. 잠시 후에 동생 회사(동생은 대기업 위탁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왔다. 동생과 함께 일하는 아줌마와 보안계 직원. 모두 동생의 손이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다행히 산재보험 처리가 되어 입원비와 치료비는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땐 병원비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 후 엑스레이 필름이 나왔다. 벽에 걸린 필름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가 다가와 동생의 손에 감긴 붕대를 풀고 검사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치료를 하면 손을 쓸 수 있다고 얘기했다. 보통 그런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간 경우 100명 중 98명은 손을 쓸 수 없거나 다친 부위를 잘라내야 하는데, 동생은 극적으로 희귀한 2%에 들어갔다는 거였다. 아, 어찌나 기쁘던지. 누나 가슴을 피 말리게 한 동생에게 하이킥을 날려야 한다고 머리에서 신호를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빡빡머리 동생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뭉개진 살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을 해야 하고, 또 잘못될 경우 살이 썩을 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뼈와 신경이 다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그 자리에 있던 동생 회사 직원들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직원들이 본사에 전화를 하고 병원비를 치르고 하느라 부산을 떠는 동안, 간호사가 동생의 손을 다시 소독하더니 병실로 올라가라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던 동생이 멈칫했다. 급하게 실려온 바람에 주방에서 신던 무릎까지 올라오는 까만 고무 장화를 그대로 신고 온 것이었다. 환자복에 고무 장화라니. 동생 발에 장화를 신겨주며 말했다.

"......자, 쪽팔리겠지만 힘내라."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병실용 슬리퍼를 갖다 주었다. 슬리퍼와 물병, 치약 칫솔 비누 수저 등이 들어 있는 '입원용 키트'가 만원이란다.

남는 병실이 없어 오늘은 일단 1인실을 쓰기로 했다. 좀전에 보안계 직원이 알려준 병실 하루 요금을 말해주자 동생이 배시시 웃는다. 이런 방을 쓰게 될 줄 생전 몰랐단다. 당연히 몰랐겠지, 나도 몰랐다. 그래서 좋냐? 하며 뻑큐를 날려주었다. 그런 사이 또다른 안전관리과 직원이 방문했다. 평생 바캉스라곤 가본 적이 없는 듯한 하얀 얼굴의 그는 병실에 들어와 동생의 손을 잡고 급하게 달려오느라 사고날 뻔 했다. 정말 놀랐다. 내 얼굴 창백한 거 보이냐, 고 말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동생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어깨를 다독이면서 나이를 물었고, 스물 다섯이란 동생의 말에

"군대는 다녀 왔니"

하고 물었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돌아간 후 물과 간식을 냉장고에 채워넣고 병실을 나서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상태가 파악되기 전에 미리 연락하면 놀랄 것 같아 그 때까지 전화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걱정부터 할까봐, 손을 좀 다쳤지만 아무 이상 없다고 빠르게 말하고 자세한 얘길 덧붙였다.

그리고 동생 일터로 가기로 했다. 동생은 일터에 놓고 온 지갑과 평상복, 신발을 챙겨 달라고 하면서 자기가 입고 온 작업복도 돌려드리고 오라 했다. 침대 옆에 내려놓여 있던 까만 봉투를 풀어 헤치자 쉰 냄새가 물씬 올라왔다. 생화학 무기와 다를 게 없다며 숨 막혀 괴로운 시늉을 하자 동생이 낄낄 웃었다. 병원을 나와 음료수를 사 들고 동생 일터로 갔다. 그곳에 남아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맞이했다. 옷을 받으러 들어간 주방 뒷쪽에서, 밀가루 범벅인 기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다친 건가요?"
"네..."

상상하던 것보다 작은 기계였다. 이런 작은 기계에 큰일이 날 뻔 했구나......하며 허리를 굽혀 들여다 보는데, 아직 닦지 않은 피가 보여서 또 눈물이 나려 했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내게 직원분들이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동생이 다친 곳에서 어디 밥이 넘어 가겠나. 차마 그 얘긴 하지 못하고,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나왔다. 기계만큼이나, 동생이 일하던 주방도 상상하던 것보다 아주 좁았다. 그곳에서 매일 아웅다웅하며 힘들게 일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핑글.

동생 일터를 나오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할 생각이 들지 않아 택시를 잡아 탔다.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겠건만, 기사 아저씨가 자꾸만 말을 건다. 동생과 통화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 목소린 완전 열아홉이네~ 목소린 완전 열아홉이야~"

하며 장난을 쳤다. 난 지금 장난에 화답할 기분이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뚱하게 앉아 있는데 아저씨가 말한다. 하나만 물어보겠다고. 역시 뚱한 표정으로 "네" 하고 짧게 대답하자 아저씨가 그런다. 인간에게 왜 생로병사가 있는지 혹시 아냐고. 그런 게 없음 좋겠단다. 아저씨의 친누나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이전에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이제와서 못난 동생이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후회된단다.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아저씨의 얘기에 마음에 걸었던 빗장을 삐걱 풀었다.

"정말 마음 아프시겠어요."
"그래요 그래. 생전에 해 준 게 없는 게 왜 이리 마음 아픈지."

이어폰을 꽂고 아저씨와의 대화를 완벽 차단하려던 나는 이내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오늘 사고가 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동생의 손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중에라도 엄마에게 전화할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병원과 동생 일터를 오가며 종일 생각한 건데, 동생이 다쳐서 병원에 갔을 때 달려갈 가족이 없었다면 그애는 얼마나 더 불안하고 쓸쓸했을까. 아무리 친한 친구가 찾아왔다고 해도 비교할 수 없었을 거야. 가족은 정말 소중한 존재다. 어떤 험한 일이 생겨도 내 가족만큼은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동생이 그나마 큰 기업 위탁업소에서 일하다 사고가 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중소업체 또는 영세업체였다면...... 아마 동생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이라며 꼼짝없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겠지. 낮에 동생을 웃기려고 '이주 노동자' 운운하며 농담을 했지만, 이주 노동자가 아니었대도, 어린 남자아이의 손 하나쯤 어떻게 되든 눈깜짝하지 않을 사업주가 분명히 어딘가엔 있었겠지. 따뜻하게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람들과, 영세업체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내려지길 기도했다.

이렇게 길기만 했던 오늘이 흘러가고 있다. 손수건은 아직도 축축하다. 내일 아침 일찍 동생 병원에 들러야겠다. 계속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동생아. 아까 홧김에 몇 차례 건넨 따뜻한 뻑큐는 잊어주렴. 오늘은 모처럼 편안히 푹 자거라.....




2005/08/22 20:55 2005/08/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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