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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2003/05/13
  2. 가방의 비밀 200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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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3 03:34 2003/05/13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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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비밀이 많다. 그건 나의 친절하지 못한 성격탓이기도 한데, 내게 '응응응하고 끙끙끙하다 흑흑흑하고 캑캑한 일' 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 내게 "오늘따라 표정이 왜 그러니?" 라 물으면 굳이 그에게 '응, 실은 나 오늘 응응응하고 끙끙끙하다 흑흑흑하고 캑캑캑 해버렸어" 라 설명해주고 싶지 않은 때가 있기(사실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저 "비밀이야" 라고 대답을 하면, 적어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 그럭저럭 괜찮은 답변이 되는 거라고 믿고있다.

나에게도 차마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부끄럽고 속상한 비밀들이 분명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그것들을 제외한 나의 많은(!) 비밀들은 대개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절차가 내키지 않아 생긴 것들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도 참 시시콜콜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내게 '가방의 비밀' 이란 것이 있다. 얼마 전에 이름을 붙인 것인데, 내 가방은 여느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를 자랑한다. 종종 그날 메고 다닌 가방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체중계에 올려보곤 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평균 무게는 3~4kg 정도 되고, 종종 5kg가 넘는다. 지난 학기 어느 날은 가방이 너무 무거워 재어보니 7kg이 넘어 있었다. 모르긴 해도 수험생이나 수석 수집가가 아닌 이상 이런 가방을 갖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에 가방이 무거운 것을 정말이지 싫어하였다. 중학생 때 우리 학교엔 나무로 만든 사물함이 있었는데, 교과서며 참고서, 체육복, 미술도구까지 어지간한 물건은 모두 그 안에 넣어두고 다녔던 게다. 그래서 나는 늘 사물함 문을 닫을 때면 터질듯한 물건들을 힘으로 밀어붙여 간신히 자물쇠를 채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복을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연 나는 깜짝 놀랐다. 넣어둔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공책 한 권 남김없이 전부 다. 놀란 나는 이내 누군가 쓸모도 없는 내 물건들을 훔쳐간, 그것도 범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물쇠를 도로 채워놓은 교활한 행위에 격분하여 펄펄 뛰었는데, 잠시 후에 내 사물함의 바로 아래칸을 쓰는 아이가 와서 자신의 사물함을 열고는 나 못지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

내 물건은 누군가 훔쳐간 것이 아니었다. 넣어둔 물건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사물함 나무판자가 무너져내려 '텅 빈 것이나 다름없던' 아래칸으로 내려앉은 것일 뿐이었다. -_-;;

고등학생 때에도 별다르진 않았다. 다행히 그 때는 철제 사물함이었기에 바닥이 무너져내릴 걱정이 없어 나는 마음놓고 책들을 쑤셔넣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고등학교의 사물함이 중학교의 사물함보다 크기가 작았기에 책상 서랍까지 책으로 꽉꽉 들어찬 게 흠이었다. 공책 한 권을 빼려면 다른 책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으니깐.

그래서 나는 가끔 - 한 학기에 한 두 번쯤?- 교내 소독 행사를 한다며 (교실에 무차별로 '농약' -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을 살포하는 행사였는데, 월요일에 등교하면 허옇게 된 책걸상을 휴지로 닦아내야만 안심하고 엎드려 잘 수 있었다) 학교에 있는 짐을 모두 가져가라는 명령이 제일 싫었다. 언젠가는 미처 쇼핑백이며 큰 가방을 준비하지 못 해 청소함에 있는 쓰레기 봉투에 참고서들을 담아 들고 가기도 했고, 방석 커버의 지퍼를 열곤 그 안에 책을 넣어 가져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짐이 많은 걸 싫어했음에도, 그 때 내 가방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야 참고서에 치여 살던 수험생이었기에 그랬다고 치고... 요즘의 내 가방은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다. 학기 중도 아닌 방학인 주제에 왜 이리 무거운가 말이다. (여담이지만, 지난 학기 나는 많은 짐을 쉽게 나르기 위해 '쪽팔림'을 무릅쓰고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등교한 적도 종종 있었다 -_-;;)

환장하겠는 것은 가방을 탁탁 털어 꼭 필요한 것만 넣어보는 작업을 해도 무게가 크게 줄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 한 권을 빼서 흐뭇해하면 주간지나 노트같은 게 그만큼 들어가고, 하다못해 필통 무게를 줄여볼까 하여 펜을 몇 자루 빼어보아도 그 자리엔 메모지랄지 남에게 받은 명함, 지우개 등이 다시 들어차니 말이다.

얼마 전 나의 가방을 들어본 동아리 남자 동기 둘(노영권, 김경원)은 '어떻게 이런 걸 들고 다니냐' 며 어이없어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나의 비밀 하나를 알아차린 것이다. 평소에 '사는 게 힘들어' 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나는, 특별히 고독하거나 괴로운 일이 생겨서 그러는 게 아니라 '가방이 무거워서' 란 사실을. 이에 그들과 나는 이를 '가방의 비밀' 이라 명명하고, 다시 한 번 그들 앞에서 '사는 게 힘들어' 따위의 말을 꺼냈다간 코웃음의 형벌을 받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하였다.

갑자기 가방 이야길 꺼낸 건, 오늘도 나의 가방이 매우 무거웠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침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물건을 넣고 나왔다가 약속이 틀어져 종일 들고 다닌 통에 더욱 무거웠는데, 숨을 헐떡이며 동아리방에 들어선 나를 발견한 '그들' 중 하나인 김경원은 내 가방을 노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언젠간 저걸 버리고야 말겠어." -_-;;

좀전에 동아리방 소파에 길게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나는 지쳤어..." 라 중얼거리던 나는, 문득 내가 너무 어이 없어졌다. 처음에 말했듯 내게도 분명 커다란 비밀 몇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객관적으로 보나 체감지수로 보나 나라는 개인이 감당하기엔 매우 힘겨운 것들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진짜' 비밀들만으로도 사는 게 힘들 만 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사는 게 힘들다' 고 느끼는 때는 그런 비밀 때문이 아니라 '가방의 비밀' 같은 사소하고 어처구니 없는 비밀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이 무거워서, 샌들이 불편해서, 살이 쪄서 작아진 쫄티 때문에 배에 힘을 주고 있느라 괴로워서, 주어야 할 전화와 메일을 미루고 있어서, 버스를 오래 타 멀미가 나서,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해서 등등.... 내가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란 정작 이런 것들일 때가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가뜩이나 오늘따라 가방이 더욱 무거워 힘이 다 빠져있는데, 좀전에 커피 자판기는 거스름돈으로 50원짜리 동전 대신 10원짜리 5개를 뱉어내었다. 고맙기도 해라,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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