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써놓은 글들을 몇 개 찾았다. 날짜가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당시 일하면서 함께 모아둔 자료들로 추측하건대 2003년에 쓴 글들이지 싶다. 기억하지 못하던 그림들도 함께 찾았는데 천천히 올려야겠다. 우선은 글들부터.
- 성공과 실패
좋은 영화로 호평받은 적이 있는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다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개봉했다가 금세 막을 내려버린 영화 한 편도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와 성공한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약 그가 표절을 한 시나리오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그는 '실패한 적 없는' 작가로 기억되겠지만 동시에 '표절작가'로도 기억됐겠지...
잘못된 성공보다 실패가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약 그가 표절을 한 시나리오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그는 '실패한 적 없는' 작가로 기억되겠지만 동시에 '표절작가'로도 기억됐겠지...
잘못된 성공보다 실패가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향수
후배가 생일선물로 사달라는 향수를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후배가 부탁한 것을 주문한 후에도 다른 제품들의 사용후기 같은 걸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비교적 저가의 제품부터, 무지하게 비싸 저걸 사면 아까워서 어떻게 뿌리나란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재미난 건 A란 향수와 향기가 거의 똑같다는 B란 향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습이었다. 비슷하지만 값이 싸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고보면 고가의 향수를 찾는 사람은 그걸 뿌림으로써 '고가 제품 유저'란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그 향기와 똑같은 것을 다른 데선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구입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나도 가끔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맡아보지 못한 좋은 향기가 나면 고개를 돌리곤 한다. 사람을 표현하는 데엔 참 여러 종류의 방법이 있구나란 생각도 문득.
뜬금없이 김홍신 의원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읽은 수필집에서 그는 향수를 가리켜 "뚜껑을 열어놓으면 금세 날아가버리는 사치스러운 물"이라면서 향수를 뿌리는 여자를 "컹컹 짖어대는 암캐"로 비유했었다. 글쎄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것 같진 않던 그 분. 나는 지금 '사치스러운 향수'가 그가 있는 한나라당보단 훨씬 좋은데.
그러고보면 고가의 향수를 찾는 사람은 그걸 뿌림으로써 '고가 제품 유저'란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그 향기와 똑같은 것을 다른 데선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구입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나도 가끔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맡아보지 못한 좋은 향기가 나면 고개를 돌리곤 한다. 사람을 표현하는 데엔 참 여러 종류의 방법이 있구나란 생각도 문득.
뜬금없이 김홍신 의원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읽은 수필집에서 그는 향수를 가리켜 "뚜껑을 열어놓으면 금세 날아가버리는 사치스러운 물"이라면서 향수를 뿌리는 여자를 "컹컹 짖어대는 암캐"로 비유했었다. 글쎄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것 같진 않던 그 분. 나는 지금 '사치스러운 향수'가 그가 있는 한나라당보단 훨씬 좋은데.
- 광고
어린 시절 내 머리속의 '미래도시'란 거리 가득한 고층빌딩 옥상마다 설치된 전광판이었다. 주말밤이면 졸음을 참으며 보던 SF영화 덕이 컸으리라. 전광판을 통해 끊임없이 나오던 각종 광고는 내게 '21세기의 모습'이었다. 어느날 문득 거리에 넘치는 전광판을 보며 내 환상이 별 거 아니었단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지만.
오히려 '광고'라는 건 화려한 전광판이 아니어도 종종 나를 놀라게 한다. 그것들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 천연덕스럽게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버스 손잡이에 광고가 붙었을 때 말이다. 이전보다 커진, 그리고 그 늘어난 면적만큼의 광고가 붙은 손잡이를 잡으며 이젠 정말 별의 별 곳에 광고가 나붙는구나 생각했다.
언젠가는 공중전화 부스 위마다 높이 올려진 광고판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전화 부스의 윗공간이 아쉽다는 듯 떡하니 올려진 광고판이란, 내겐 자연스럽기보다 어딘지 당혹스런 풍경이었다.
요즘은 지하철 옆면에도 광고가 붙는다. 문에만 붙이는 걸론 모자라는지 옆면을 아주 도배하듯 붙이곤 한다. 버스 옆면의 광고판도 일률적인 크기를 벗어난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고보면 지하철 표에 광고가 찍혀있기도 하고, 하다못해 학교의 학생식당 식권에도 어느 제과 업체의 과자 광고가 일일이 찍혀있다.
이제 또 어느날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광고를 접하고 '어찌 이런 생각까지!' 라며 감탄하게 되겠지.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것도 은근히 재미난 일이다.
오히려 '광고'라는 건 화려한 전광판이 아니어도 종종 나를 놀라게 한다. 그것들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 천연덕스럽게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버스 손잡이에 광고가 붙었을 때 말이다. 이전보다 커진, 그리고 그 늘어난 면적만큼의 광고가 붙은 손잡이를 잡으며 이젠 정말 별의 별 곳에 광고가 나붙는구나 생각했다.
언젠가는 공중전화 부스 위마다 높이 올려진 광고판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전화 부스의 윗공간이 아쉽다는 듯 떡하니 올려진 광고판이란, 내겐 자연스럽기보다 어딘지 당혹스런 풍경이었다.
요즘은 지하철 옆면에도 광고가 붙는다. 문에만 붙이는 걸론 모자라는지 옆면을 아주 도배하듯 붙이곤 한다. 버스 옆면의 광고판도 일률적인 크기를 벗어난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고보면 지하철 표에 광고가 찍혀있기도 하고, 하다못해 학교의 학생식당 식권에도 어느 제과 업체의 과자 광고가 일일이 찍혀있다.
이제 또 어느날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광고를 접하고 '어찌 이런 생각까지!' 라며 감탄하게 되겠지.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것도 은근히 재미난 일이다.
- 인터넷 대란
연초에 전국의 인터넷망이 한 순간에 마비된 '인터넷 대란'이 있었다. 그때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까지 설쳐대었다. '전국민 행동 요령'이란 것이 등장하고나선 더욱 그랬다.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해 불안한 사람들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부적'이란 소설엔 또다른 세계인 '테리토리'가 등장하는데, 인터넷이란 공간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뜬금없는 이 생각에 나는 괜시리 가슴이 뛰고 설레어서 몹시 흥분했었다. 잠까지 못 잘 정도로.
인터넷은 확실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소시민이 거물을 공격할 수도 있고, 현실과는 또다른 나를 선보일 수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세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장점이다. 인터넷 매체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홈페이지에 올린 만화가 여기저기 퍼져 출판까지 하게 된 나부터도 인터넷의 수혜자이다. 나는 종종 인터넷이란 것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내 글과 그림을 선보이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은 때로 내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마다 달린 독자평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능한 한 조선닷컴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어떤 기사를 싣고 있는지 궁금해 들어갈 때가 있는데, 기사만 보고 한숨을 쉬는 걸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 아래 달린 독자의견을 볼 때 사실 더욱 한숨이 나온다. 예를 들어 두 여중생 압사 사건의 경우 '얼마나 떠들고 있었으면 전차 오는 소리도 못 듣고 있었을꼬, 교통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반미에 이용하지 말라, 미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시민의 목소리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내 주위의 평범한 누군가이겠지... 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지간한 포털사이트마다 뉴스홈을 운영하는 요즘, 그곳들의 게시판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불경기라 미니스커트가 유행이란 기사에 달린 뜬금없는 '미니스커트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논쟁들... 당신은 누군가 만원짜릴 손에 들고 가는 걸 보면 달려가 돈을 뺏는가.
다른 이의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이렇듯 때로 절망이 되어 돌아온다. '미워할' 대상이 '확실한' 무언가에 그치지 않고 내 주위 필부필부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지금. 아마도 예전보다 이상주의자란 건 나오기 힘든 때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해 불안한 사람들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부적'이란 소설엔 또다른 세계인 '테리토리'가 등장하는데, 인터넷이란 공간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뜬금없는 이 생각에 나는 괜시리 가슴이 뛰고 설레어서 몹시 흥분했었다. 잠까지 못 잘 정도로.
인터넷은 확실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소시민이 거물을 공격할 수도 있고, 현실과는 또다른 나를 선보일 수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세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장점이다. 인터넷 매체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홈페이지에 올린 만화가 여기저기 퍼져 출판까지 하게 된 나부터도 인터넷의 수혜자이다. 나는 종종 인터넷이란 것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내 글과 그림을 선보이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은 때로 내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마다 달린 독자평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능한 한 조선닷컴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어떤 기사를 싣고 있는지 궁금해 들어갈 때가 있는데, 기사만 보고 한숨을 쉬는 걸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 아래 달린 독자의견을 볼 때 사실 더욱 한숨이 나온다. 예를 들어 두 여중생 압사 사건의 경우 '얼마나 떠들고 있었으면 전차 오는 소리도 못 듣고 있었을꼬, 교통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반미에 이용하지 말라, 미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시민의 목소리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내 주위의 평범한 누군가이겠지... 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지간한 포털사이트마다 뉴스홈을 운영하는 요즘, 그곳들의 게시판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불경기라 미니스커트가 유행이란 기사에 달린 뜬금없는 '미니스커트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논쟁들... 당신은 누군가 만원짜릴 손에 들고 가는 걸 보면 달려가 돈을 뺏는가.
다른 이의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이렇듯 때로 절망이 되어 돌아온다. '미워할' 대상이 '확실한' 무언가에 그치지 않고 내 주위 필부필부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지금. 아마도 예전보다 이상주의자란 건 나오기 힘든 때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궤변
종종 들어가는 한 사이트에서 목격한 대화.
A란 사람이 올린 글의 한 대목에 대해 B란 사람이 해명을 요구하자, A가 발끈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언중유골이랬다. 말 속의 뜻을 헤아리는 자세가 아쉽다."
그 글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A가 처음에 썼던 글은 아무리 보아도 뼈는커녕 비늘도 없어뵈는 횡설수설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B가 요구한 해명은 적절한 것이었다. B의 잘못이 있다면 '언중유골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생각없는 글에 해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B는 무슨 이유에선지(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란 걸 눈치챘기 때문일 듯) 더 이상 답글을 달지 않았다. 아마도 A는 내심 근엄하게 꾸짖은 자신의 대응에 흡족해하고 있을 터.
넷상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해명을 요구한 글에 '반말체로' 상대를 꾸짖는 A의 자세도 꼴불견이었지만, '궤변'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논쟁을 할 때 상대방이 궤변을 늘어놓는 건 세 가지 경우인 듯 하다. 알면서도 일부러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궤변이 되고 만 경우, 자기가 말하는 게 당최 왜 궤변인지도 모르는 경우.
알면서도 늘어놓는 이에겐 죄책감이라도 줄 수 있고, 어쩌다 그리 된 이에겐 실수를 알려줄 수 있지만... 마지막 경우엔 도무지 방법이 없다. 대화 끝에 상대방이 알아차리면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어째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알려주던지, 아니면 B처럼 대응을 안 할 수밖에...
A란 사람이 올린 글의 한 대목에 대해 B란 사람이 해명을 요구하자, A가 발끈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언중유골이랬다. 말 속의 뜻을 헤아리는 자세가 아쉽다."
그 글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A가 처음에 썼던 글은 아무리 보아도 뼈는커녕 비늘도 없어뵈는 횡설수설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B가 요구한 해명은 적절한 것이었다. B의 잘못이 있다면 '언중유골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생각없는 글에 해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B는 무슨 이유에선지(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란 걸 눈치챘기 때문일 듯) 더 이상 답글을 달지 않았다. 아마도 A는 내심 근엄하게 꾸짖은 자신의 대응에 흡족해하고 있을 터.
넷상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해명을 요구한 글에 '반말체로' 상대를 꾸짖는 A의 자세도 꼴불견이었지만, '궤변'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논쟁을 할 때 상대방이 궤변을 늘어놓는 건 세 가지 경우인 듯 하다. 알면서도 일부러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궤변이 되고 만 경우, 자기가 말하는 게 당최 왜 궤변인지도 모르는 경우.
알면서도 늘어놓는 이에겐 죄책감이라도 줄 수 있고, 어쩌다 그리 된 이에겐 실수를 알려줄 수 있지만... 마지막 경우엔 도무지 방법이 없다. 대화 끝에 상대방이 알아차리면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어째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알려주던지, 아니면 B처럼 대응을 안 할 수밖에...
- 거울 보는 남자
문득 주위에서 5초 이상 거울을 보는 남자를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떠올리려니 도무지 기억나지가 않고, 딱 한 명 내 또래 K가 거울을 자주 보곤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을 뿐.
좀 전에 동아리방에 앉아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방으로 걸어오는데 밤마다 학교를 도는 수위 아저씨가 우리 동아리방 앞의 전신거울 앞에 서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날 발견하시곤 황급히 걸음을 옮기셨다. 어쩐지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는데...
내 남동생도 데이트를 하기 전에 나에게 오늘 복장이 어떠냐고 물어보곤 한다. 몰랐는데 남성용 컬러로션도 꽤 팔리는 모양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사용후기에 올라온 글을 보니 '얼굴이 정말 뽀얘졌다'고 감탄하는 얘기가 많다. 주위에 남자 친구들을 보아도 '피부 좋아졌다'거나 '그 옷 잘 어울린다'는 이야길 하면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그들이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은 정작 보기 힘들다.
'거울'하면 떠오르는 남자 중 한 명이 K라면, 한 명이 더 있다. 딴지일보에 있을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후보로 나온 정동영 의원 인터뷰에 따라간 적이 있다. 어리버리한 내가 그런 곳에 갈 입장은 못 되었지만 정치인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진촬영을 맡던 분이 신혼여행을 가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사진기자처럼 가게 되었는데, 각설하고,
정동영 의원이 인상 깊었던 건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정 의원이 한쪽에 둔 캠코더와 카메라를 발견하더니 "사진도 찍습니까?" 라고 묻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시간을 달라며 방을 나가더니 잠시 후에 되돌아왔다. 매무새를 고치고 온 모양이었다. 물을 발라 정리한 듯한 머리...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이어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체리향 챕스틱을 꺼내더니 입술에 발랐다. 그는 역시 앵커 출신이었다.
좀 전에 동아리방에 앉아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방으로 걸어오는데 밤마다 학교를 도는 수위 아저씨가 우리 동아리방 앞의 전신거울 앞에 서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날 발견하시곤 황급히 걸음을 옮기셨다. 어쩐지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는데...
내 남동생도 데이트를 하기 전에 나에게 오늘 복장이 어떠냐고 물어보곤 한다. 몰랐는데 남성용 컬러로션도 꽤 팔리는 모양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사용후기에 올라온 글을 보니 '얼굴이 정말 뽀얘졌다'고 감탄하는 얘기가 많다. 주위에 남자 친구들을 보아도 '피부 좋아졌다'거나 '그 옷 잘 어울린다'는 이야길 하면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그들이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은 정작 보기 힘들다.
'거울'하면 떠오르는 남자 중 한 명이 K라면, 한 명이 더 있다. 딴지일보에 있을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후보로 나온 정동영 의원 인터뷰에 따라간 적이 있다. 어리버리한 내가 그런 곳에 갈 입장은 못 되었지만 정치인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진촬영을 맡던 분이 신혼여행을 가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사진기자처럼 가게 되었는데, 각설하고,
정동영 의원이 인상 깊었던 건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정 의원이 한쪽에 둔 캠코더와 카메라를 발견하더니 "사진도 찍습니까?" 라고 묻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시간을 달라며 방을 나가더니 잠시 후에 되돌아왔다. 매무새를 고치고 온 모양이었다. 물을 발라 정리한 듯한 머리...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이어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체리향 챕스틱을 꺼내더니 입술에 발랐다. 그는 역시 앵커 출신이었다.
- 기록
휴학을 하고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한 일은 웹기획과 사이트의 카피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청바지에 가발을 쓰고 다니며 나름대로 재미있는 작업을 하던 때였다.
어느날 사장님이 협력업체와 하는 미팅자리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옷이라곤 학교 다닐 때 입던 것밖에 없던 나는 부랴부랴 정장 바지를 사 입고 따라 나섰는데, 내가 했던 일은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그들과 미팅을 하는 동안 옆에서 내용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사장님 말인즉슨, "대화를 할 때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사실과 다르거나 섣부른 말을 하기 힘들다"는 것. 나는 그날 2:2로 마주앉은 그들의 가운데에 앉아 미팅 내용을 무조건 열심히 받아적으며 상대 회사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쪽 사람들은 내가 하는 기록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특히 숫자가 등장할 때엔 큰 액수를 말했다가 내쪽을 힐끔 보곤 "그렇다기 보단...", "정확히는..." 이라며 정정하곤 했던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기록은 확실히 무서운 것이다. 때로 기록이란 건 잘못됐던 기억을 정정해주는 잔인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로 들었다면 한 번 듣고 넘어갔을 내용이, 글로 남았을 땐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며 언제든 화를 다시 돋울 여지가 생기기도.
언젠가부터 나는 화가 나거나 마음이 불편할 땐 메일을 보내는 걸 삼가게 됐다. 분노가 잔뜩 담긴 메일을 받은 상대가 행여 나중에 그 글을 다시 읽고 안 좋았던 일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란 염려에서다.
그리고 또, 연애의 기록이란 것도 사실 무겁긴 마찬가지.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메일과 문자 메시지들은... '사랑한다'고 진심을 호소하던 기록과 '사실은 사랑한 적 없다'고 얘기하는 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건 정말 처연한 일이다...
어느날 사장님이 협력업체와 하는 미팅자리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옷이라곤 학교 다닐 때 입던 것밖에 없던 나는 부랴부랴 정장 바지를 사 입고 따라 나섰는데, 내가 했던 일은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그들과 미팅을 하는 동안 옆에서 내용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사장님 말인즉슨, "대화를 할 때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사실과 다르거나 섣부른 말을 하기 힘들다"는 것. 나는 그날 2:2로 마주앉은 그들의 가운데에 앉아 미팅 내용을 무조건 열심히 받아적으며 상대 회사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쪽 사람들은 내가 하는 기록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특히 숫자가 등장할 때엔 큰 액수를 말했다가 내쪽을 힐끔 보곤 "그렇다기 보단...", "정확히는..." 이라며 정정하곤 했던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기록은 확실히 무서운 것이다. 때로 기록이란 건 잘못됐던 기억을 정정해주는 잔인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로 들었다면 한 번 듣고 넘어갔을 내용이, 글로 남았을 땐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며 언제든 화를 다시 돋울 여지가 생기기도.
언젠가부터 나는 화가 나거나 마음이 불편할 땐 메일을 보내는 걸 삼가게 됐다. 분노가 잔뜩 담긴 메일을 받은 상대가 행여 나중에 그 글을 다시 읽고 안 좋았던 일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란 염려에서다.
그리고 또, 연애의 기록이란 것도 사실 무겁긴 마찬가지.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메일과 문자 메시지들은... '사랑한다'고 진심을 호소하던 기록과 '사실은 사랑한 적 없다'고 얘기하는 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건 정말 처연한 일이다...
- 식습관과 복수
사람들과 고기 같은 걸 먹으러 가면 늘 듣는 말이 "좀더 드세요"이다. 사실 나는 아까부터 꽤 많은 양을 꾸준히 먹고 있는 중인데도, 잘 먹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더욱이 다 익지 않은 고기도 잘 집어먹는 나이기에 이미 배는 부르거늘. 사람들은 왜 이리 안 먹고 있냐고 한다.
나의 비밀(?)을 알고있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내가 무언가를 집어서 먹는 움직임이 작은 편이고, 더욱이 음식을 씹을 때 우물우물 조용히 먹는데다, 입에 고기를 넣은 후엔 젓가락을 바로 내려놓고 있는 버릇 때문에 마치 안 먹고 있는 듯 보인다나.
그러고보면 그런 식습관은 나란 사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많은 복수를 계획하는 속좁은 사람이지만 그런 것은 대개 상상으로만 끝난다. 현실화되는 일이 있다 해도 상대방은 눈치도 못 챌 정도의 소극적인 복수가 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들을 마음속에서 없애나간다. 화가 난다고,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당장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는다. 겉으론 조용하지만 속으론 그 사람을 없애나간다. 그런 일이 쌓여 마음속의 그가 사라지면, 나는 어느날 갑자기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내린 결론임에도, 상대방으로선 아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지금도 꾸준히, 누군가와 누군가를 조용하고 은밀히 지우고 있다. '제발 더 이상 지워지지 않게 되길' 이란 바람은 없이, 그들을 마음만으로 살해한다.
나의 비밀(?)을 알고있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내가 무언가를 집어서 먹는 움직임이 작은 편이고, 더욱이 음식을 씹을 때 우물우물 조용히 먹는데다, 입에 고기를 넣은 후엔 젓가락을 바로 내려놓고 있는 버릇 때문에 마치 안 먹고 있는 듯 보인다나.
그러고보면 그런 식습관은 나란 사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많은 복수를 계획하는 속좁은 사람이지만 그런 것은 대개 상상으로만 끝난다. 현실화되는 일이 있다 해도 상대방은 눈치도 못 챌 정도의 소극적인 복수가 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들을 마음속에서 없애나간다. 화가 난다고,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당장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는다. 겉으론 조용하지만 속으론 그 사람을 없애나간다. 그런 일이 쌓여 마음속의 그가 사라지면, 나는 어느날 갑자기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내린 결론임에도, 상대방으로선 아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지금도 꾸준히, 누군가와 누군가를 조용하고 은밀히 지우고 있다. '제발 더 이상 지워지지 않게 되길' 이란 바람은 없이, 그들을 마음만으로 살해한다.
2007/02/20 15:43
2007/02/20 15:4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