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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요일 2005/08/28
일요일. 회사로 오면서 저녁 대신 먹으려고 편의점 포장 오뎅을 사 왔는데, 뜯어보니 코딱지만해서 각자 '한 개'라고 말할 수도 없는 오뎅이 딸랑 5개 들어있어서 상처 받았다. 게다가 맛도 없었다......

회사에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내일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화장실 반경 10m 내에 대형 참사가 일어날텐데. 그건 재앙이다. 부디 오늘밤 다시 급수가 재개되길 바라고 있다.

어제 오늘 지하철에서, 저녁만찬에 초대받은 공작부인 같은 복장을 한 여인들을 많이 보았다. 요즘 그런 옷이 유행인가? 지하철에서 공작부인을 만난 것이 황송해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자꾸 눈이 그쪽으로 막 돌아갔다;;

어릴 적에 쓴 일기장은 많은데 간수를 잘 하지 못해 집안 여기저기 처박혀 있다. 그저께 밤에 무슨 노트를 찾다가 중3 때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다시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 인생 다 살아본 듯한 말투와 시니컬한 태도라니.

요즘 벌여놓은 일이 많은데 어제 그제 막 의욕이 넘쳐흘러, 여세를 몰아 오늘까지 으라차차 해내려고 회사에 온 건데, 막상 앉으니 넘쳐흐르던 의욕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누워서 자고 싶기만 하다. 낮엔 서양에게 전화가 와서 '일이 많아 어쩌냐' 고 염려하길래 '하고싶은 일인데 뭘' 이라 대답했는데.

내가 온갖 일을 끌어안고 사는 걸 보는 친구들은 가끔씩 그렇게 일해서 뭐할 거냐고 물어본다. 인생 뭐 있냐고도 하고,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라고도 하고, 쉬면서 하라고도 하고. 그럴 때면 그냥 농담으로 '돈이라도 벌어놔야 시집가지' 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난 노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뺀질이라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며칠을 누워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내가 얻는 건 편안함과 심신의 안정. 그런데 무언가 일이라 불려지는 것들을 해서 결과물을 얻었을 땐,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 밀려드는데 그게 굉장히 달콤하단 말이지. 나는 노는 게 일하는 거다, 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일하는 것도 즐거울 때가 있다, 라고 말할 수는 있다.

물론 때때로 생계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 작업에만 몰두하는 전업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돈에 매이지 않고 살 수 있었다면 그림이든 글쓰기든 뭔가 창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었을테고, 그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ㅡ란 공상에 빠지곤 하는데. 그건 천재가 아닌 나의 아쉬운 소리일 뿐이겠지. 어쨌든 추석이 되기 전에 고장난 믹서기도 사야 하고, 차례상에 올릴 것들을 사야 하고, 월요일엔 세금도 내야 하고, 당장 오늘밤엔 동생이 먹고싶다는 양념통닭도 사야 한다. 결혼을 하면 이런 압박이 더 심해지겠지? 나로 하여금 금전의 압박과 친인척 관계, 출산과 육아, 때때로 뽕 맞은 사람처럼 밤새 노는 자유의 상실...... 이런 각종 두려움을 끌어안고라도 함께 살고싶은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엔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아직까지 일부러 찾고싶은 생각은 없지만.




2005/08/28 17:46 2005/08/28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