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장대처럼 비가 쏟아지더니, 오후에는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 안에서 추측한 바깥 날씨가 생각보다 더운 것에 심통이 난 나는, 선글라스를 낀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툴툴거리고 있었다. 학교에 거의 다다른 즈음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데 건너편에 서있는 낯익은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아는 아이가 맞나 그 학생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내 옆에 서있던 여학생 둘이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를 거는 거였다.
그러나 그 때 내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2Pac이 랩을 하느라 쉴 새 없이 'mother fucker!' 를 쏟아내고 있던데다, 두 학생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던 까닭에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누구지, 아는 사람들인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지난 학기 내내 모르는 사람이 달려와 인사를 거는 통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적잖게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멍해있던 나는 얼른 이어폰을 빼고 "네?" 라고 반문을 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 왈, 이 근처에 여관이 있느냔다.
아무리 늙게 봐주려고 해도 고등학생이 분명한 두 여학생은 밝은 오후에 상명대 앞에서 '여관' 을 찾고 있던 게다. 그 상황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 자칫 머뭇거릴 뻔 했는데, 어쨌든 이 근방에는 여관이 없었다. 번화가도 아닐 뿐더러, 주위에 술집이 즐비하지도 않고, 삼거리 중 어느 쪽으로 차를 타고 가도 한참을 달려야 여관이든 여인숙이든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 근방에 여관은 없다.
"없는데요" 라고 말하곤 고개를 돌리려다가 문득, 두 학생만 함께 묵을 곳이라면 굳이 여관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꺼냈다.
"하루 주무실 건가요?"
궁금해서 물은 거였는데, 말을 꺼내고 나니 마치 내가 여관 삐끼라도 되어 흥정을 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괜히 움찔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얼른 대답했다.
"이틀 묵을낀데여."
"그럼요, 저기 학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고시원이 있거든요. 거기서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여관보다 싸니까요."
불쑥 떠오른 생각을 말해놓고도 꽤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 아니고 겨우 이틀인데다가, 고시원 방이 좁기는 하지만 여학생 둘이 묵기엔 그다지 불편함이 없을 듯 했다. 게다가 요즘은 방학이라 지방 학생들이 많이 내려가 빈 방도 꽤 있을 거였고, 요즘 고시원은 냉방도 잘되고 세면장도 쓸만하다는 친구들의 증언(!)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또다른 학생이 질문을 했다.
"얼만데여?"
앗... 글쎄, 얼마일까? 한 달에 십만원 대 단위부터 비싼 곳은 삼십만원 대 이상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던데, 게다가 우리 학교 앞 고시원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이라 비쌀 것만 같은데. 그래도 여관보다야 싸지 않을까? 혹시 비슷하게 받으면 어쩌지? 어쨌든 난 이용료가 얼만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러면서도 바로 전에 여관보다 싸다고 권해줬다니...
"그...건 모르겠는데요...."
못 일러줄 것을 가르쳐준 마냥 자신감이 없어진 내게 다른 학생이 또 질문을 했다.
"하루씩도 잘 수 있어예?"
헉... 그것도 모르겠다. 저 고시원에서 하루를 재워줄는지. 보름 단위도 아닌 하루 이틀 방을 내어주는 곳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고작해야(벌써 몇 년이 지난) 고시원이 아닌 '독서실' 이란 곳에서 1박에 오천원 정도를 받고 책상과 담요를 내어주었다...란 기억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것도 모르면서 이 친구들에게 올라가기도 힘든 저 언덕 위의 고시원을 권해줬다니...
풀이 죽은 나는 조그맣게
"글쎄요,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번 졸라보세요"
하곤 괜히 허허 웃어버렸다. 학생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에..." 하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대충 이야기한 꼴이 되어버린 나는 창피한 마음에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빠르게 길을 건넜다.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의 초입에 있는 편의점으로 스윽 들어가며 살짝 뒤를 돌아봤는데, 여학생들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아주 쓸모없는 얘기로 들리진 않았나보다, 하며 안도를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거리를 사고 밖으로 나왔다. 아마 학생들은 저 앞에 걸어가고 있을 거였고, 행여나 그들이 양갈래 길에서 머뭇거리면 길을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편의점 앞이 시끌시끌했다. 7 ~ 8 명은 되는 여학생들이 떠들고 있던 게다.
그냥 지나치려다 '여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 그들을 살펴보니 맙소사, 두 여학생이 끼여있었다. 그렇다. 역시 나의 말은 못 미더웠던 게다. 아마도 학교에서 내려오던 학생들에게 근처에 여관이 있는지 물어본 모양이었다. 혹시나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머쓱할 것 같아 얼른 몸을 돌려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다행히(?) "근처엔 여관이 없는데..." "고시원은 있어도 여관은 없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씨익 웃으며 계속 걷고 있는데 이내 뒷쪽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이어폰을 꽂은 후라 말소리가 또렷이 들리진 않았지만 어조로 보아 투덜투덜하는 것 같다. 굳이 끝내 여관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더라도, 가파른 이 언덕을 처음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투덜거릴 거란 생각에 실실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첫 등산객(!)치곤 빠른 속도로 걸어 이내 나를 앞질러갔고, 나는 그들이 무사히 고시원을 찾아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다. 저 고시원은 이틀 동안 묵을 거라는 학생들을 흔쾌히 받아줄까? 방학인데다 이 시각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어쩌면 주인 아저씨(혹은 아주머니)는 잠깐 마실을 갔든가,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길을 따라 올라가던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이 다시 나오는지를 살펴봤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로 들어설 때까지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까닭에 어린 친구 둘이서 여관을 찾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부디 고시원에서 잘 묵고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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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왜 여관을 찾았을까?"
동아리방에 들어서서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투리를 쓰고, 휑한 이 근방에서 여관을 찾는 점으로 미루어 지방에서 온 학생들같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도 그들이 대학에서 주최하는 각종 경시대회(영어, 수학, 미술 등)에 참가하기 위해 올라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대학 주최 경시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면 그 대학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는 곳이 많이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 시험을 볼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근처(?)의 국민대나, 어쩌면 바로 앞의 경기상고나 경복고 쯤에서 시험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학생들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괜한 소리일 가능성이 크기에 미안한 얘기지만, 가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기에도 순하고 모범생처럼 생긴 여학생들이 가출을 해서, 하필 서울 변방(?)의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영 아닌 것 같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집을 나온 학생들이라면 그렇게 아무나 잡고 당당한 얼굴로 "여관이 어딨죠?" 라고 물어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세 번째 추측은 혹시 서울에서 열리는 공개방송이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올라왔다가 숙소를 잡는 게 아닐까란 것이다. 굳이 그런 행사가 없어도 어느 가수의 집(혹은 연습실)에 가기 위해 큰맘을 먹고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 주위에 늘상 학생들이 진을 치고있는 풍경을 본 적은 없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전자쪽 같다. 요즘 정동극장에서 god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데, 그곳에 가기 위해 올라온 두 학생이 광화문 앞 빌딩 숲에서 여관을 찾지 못 해 두리번거리다, '상명대'라 쓰여있는 버스를 발견하고 '대학 앞이니 유흥가든 여관이든 있겠지'라 짐작하고 여기로 온 게 아닐까. 그리 먼 곳도 아닌데다 광화문 앞에선 이쪽으로 오는 버스가 많으니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곳은 군사지역에 개발제한 구역이라 매우 황량하다는 사실은 몰랐겠지만.
그 외에 '친구 집에 놀러온', '교환 학생인', '집에 물난리(혹은 빚쟁이의 들이닥침)가 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잠시 대피중인', 등의 가능성을 따져보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그만 두었다.
그리고 문득, 아까 그 학생들은 왜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이 여관 대신 고시원을 추천한 것이 못내 마뜩찮은 듯한 표정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어쩌면 처음 오는 도시의 '여관'이란 곳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더운 날씨에 더 헤매지 않고 고시원이나마 찾을 수 있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그러다 나는 이내, 그 어린 친구들이 어쩌면 이 모든 귀찮음과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여관'이란 곳에 묵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소녀 둘이서만 낯선 도시의 여관방에서 잠을 잔다, 라는 것은 그들에게 큰 모험일 것이고, 그들은 어쩌면 방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오늘을 벼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 연습장을 펼쳐놓고 계획을 짜며 키득거렸을 수도 있다.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서 반 친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상상해 두었을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별의 별 시시한 모험거릴 그렇게나 많이 상상했던 인간이 아닌가.
그러나 그 때 내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2Pac이 랩을 하느라 쉴 새 없이 'mother fucker!' 를 쏟아내고 있던데다, 두 학생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던 까닭에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누구지, 아는 사람들인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지난 학기 내내 모르는 사람이 달려와 인사를 거는 통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적잖게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멍해있던 나는 얼른 이어폰을 빼고 "네?" 라고 반문을 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 왈, 이 근처에 여관이 있느냔다.
아무리 늙게 봐주려고 해도 고등학생이 분명한 두 여학생은 밝은 오후에 상명대 앞에서 '여관' 을 찾고 있던 게다. 그 상황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 자칫 머뭇거릴 뻔 했는데, 어쨌든 이 근방에는 여관이 없었다. 번화가도 아닐 뿐더러, 주위에 술집이 즐비하지도 않고, 삼거리 중 어느 쪽으로 차를 타고 가도 한참을 달려야 여관이든 여인숙이든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 근방에 여관은 없다.
"없는데요" 라고 말하곤 고개를 돌리려다가 문득, 두 학생만 함께 묵을 곳이라면 굳이 여관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꺼냈다.
"하루 주무실 건가요?"
궁금해서 물은 거였는데, 말을 꺼내고 나니 마치 내가 여관 삐끼라도 되어 흥정을 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괜히 움찔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얼른 대답했다.
"이틀 묵을낀데여."
"그럼요, 저기 학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고시원이 있거든요. 거기서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여관보다 싸니까요."
불쑥 떠오른 생각을 말해놓고도 꽤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 아니고 겨우 이틀인데다가, 고시원 방이 좁기는 하지만 여학생 둘이 묵기엔 그다지 불편함이 없을 듯 했다. 게다가 요즘은 방학이라 지방 학생들이 많이 내려가 빈 방도 꽤 있을 거였고, 요즘 고시원은 냉방도 잘되고 세면장도 쓸만하다는 친구들의 증언(!)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또다른 학생이 질문을 했다.
"얼만데여?"
앗... 글쎄, 얼마일까? 한 달에 십만원 대 단위부터 비싼 곳은 삼십만원 대 이상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던데, 게다가 우리 학교 앞 고시원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이라 비쌀 것만 같은데. 그래도 여관보다야 싸지 않을까? 혹시 비슷하게 받으면 어쩌지? 어쨌든 난 이용료가 얼만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러면서도 바로 전에 여관보다 싸다고 권해줬다니...
"그...건 모르겠는데요...."
못 일러줄 것을 가르쳐준 마냥 자신감이 없어진 내게 다른 학생이 또 질문을 했다.
"하루씩도 잘 수 있어예?"
헉... 그것도 모르겠다. 저 고시원에서 하루를 재워줄는지. 보름 단위도 아닌 하루 이틀 방을 내어주는 곳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고작해야(벌써 몇 년이 지난) 고시원이 아닌 '독서실' 이란 곳에서 1박에 오천원 정도를 받고 책상과 담요를 내어주었다...란 기억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것도 모르면서 이 친구들에게 올라가기도 힘든 저 언덕 위의 고시원을 권해줬다니...
풀이 죽은 나는 조그맣게
"글쎄요,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번 졸라보세요"
하곤 괜히 허허 웃어버렸다. 학생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에..." 하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대충 이야기한 꼴이 되어버린 나는 창피한 마음에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빠르게 길을 건넜다.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의 초입에 있는 편의점으로 스윽 들어가며 살짝 뒤를 돌아봤는데, 여학생들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아주 쓸모없는 얘기로 들리진 않았나보다, 하며 안도를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거리를 사고 밖으로 나왔다. 아마 학생들은 저 앞에 걸어가고 있을 거였고, 행여나 그들이 양갈래 길에서 머뭇거리면 길을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편의점 앞이 시끌시끌했다. 7 ~ 8 명은 되는 여학생들이 떠들고 있던 게다.
그냥 지나치려다 '여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 그들을 살펴보니 맙소사, 두 여학생이 끼여있었다. 그렇다. 역시 나의 말은 못 미더웠던 게다. 아마도 학교에서 내려오던 학생들에게 근처에 여관이 있는지 물어본 모양이었다. 혹시나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머쓱할 것 같아 얼른 몸을 돌려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다행히(?) "근처엔 여관이 없는데..." "고시원은 있어도 여관은 없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씨익 웃으며 계속 걷고 있는데 이내 뒷쪽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이어폰을 꽂은 후라 말소리가 또렷이 들리진 않았지만 어조로 보아 투덜투덜하는 것 같다. 굳이 끝내 여관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더라도, 가파른 이 언덕을 처음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투덜거릴 거란 생각에 실실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첫 등산객(!)치곤 빠른 속도로 걸어 이내 나를 앞질러갔고, 나는 그들이 무사히 고시원을 찾아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다. 저 고시원은 이틀 동안 묵을 거라는 학생들을 흔쾌히 받아줄까? 방학인데다 이 시각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어쩌면 주인 아저씨(혹은 아주머니)는 잠깐 마실을 갔든가,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길을 따라 올라가던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이 다시 나오는지를 살펴봤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로 들어설 때까지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까닭에 어린 친구 둘이서 여관을 찾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부디 고시원에서 잘 묵고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 "학생들은 왜 여관을 찾았을까?"
동아리방에 들어서서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투리를 쓰고, 휑한 이 근방에서 여관을 찾는 점으로 미루어 지방에서 온 학생들같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도 그들이 대학에서 주최하는 각종 경시대회(영어, 수학, 미술 등)에 참가하기 위해 올라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대학 주최 경시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면 그 대학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는 곳이 많이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 시험을 볼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근처(?)의 국민대나, 어쩌면 바로 앞의 경기상고나 경복고 쯤에서 시험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학생들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괜한 소리일 가능성이 크기에 미안한 얘기지만, 가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기에도 순하고 모범생처럼 생긴 여학생들이 가출을 해서, 하필 서울 변방(?)의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영 아닌 것 같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집을 나온 학생들이라면 그렇게 아무나 잡고 당당한 얼굴로 "여관이 어딨죠?" 라고 물어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세 번째 추측은 혹시 서울에서 열리는 공개방송이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올라왔다가 숙소를 잡는 게 아닐까란 것이다. 굳이 그런 행사가 없어도 어느 가수의 집(혹은 연습실)에 가기 위해 큰맘을 먹고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 주위에 늘상 학생들이 진을 치고있는 풍경을 본 적은 없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전자쪽 같다. 요즘 정동극장에서 god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데, 그곳에 가기 위해 올라온 두 학생이 광화문 앞 빌딩 숲에서 여관을 찾지 못 해 두리번거리다, '상명대'라 쓰여있는 버스를 발견하고 '대학 앞이니 유흥가든 여관이든 있겠지'라 짐작하고 여기로 온 게 아닐까. 그리 먼 곳도 아닌데다 광화문 앞에선 이쪽으로 오는 버스가 많으니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곳은 군사지역에 개발제한 구역이라 매우 황량하다는 사실은 몰랐겠지만.
그 외에 '친구 집에 놀러온', '교환 학생인', '집에 물난리(혹은 빚쟁이의 들이닥침)가 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잠시 대피중인', 등의 가능성을 따져보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그만 두었다.
그리고 문득, 아까 그 학생들은 왜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이 여관 대신 고시원을 추천한 것이 못내 마뜩찮은 듯한 표정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어쩌면 처음 오는 도시의 '여관'이란 곳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더운 날씨에 더 헤매지 않고 고시원이나마 찾을 수 있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그러다 나는 이내, 그 어린 친구들이 어쩌면 이 모든 귀찮음과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여관'이란 곳에 묵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소녀 둘이서만 낯선 도시의 여관방에서 잠을 잔다, 라는 것은 그들에게 큰 모험일 것이고, 그들은 어쩌면 방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오늘을 벼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 연습장을 펼쳐놓고 계획을 짜며 키득거렸을 수도 있다.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서 반 친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상상해 두었을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별의 별 시시한 모험거릴 그렇게나 많이 상상했던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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