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의 기자가 되고 얼마 후에 아는 분이 전화를 하셨다. 동네의 다른 주민과 마찰이 있으시단다. 그걸 기사로 써서 혼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많은 그 분은 딴지일보가 어떤 사이트인지 모르고 계셨고, 단지 내가 '기자' 가 되었다고 하니까 아마 그런 기사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반상회보가 아닌 이상, 딴지같은 특이한 매체가 아니라 일반 일간지였다 하더라도 주민 간의 사소한 신경전을 기사로 쓰지는 못 했을 것이다.
여하간 그 분이 아니더라도 편집국으로는 기사를 써 달라는 전화가 많이 오는데,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도 없어 전화를 하는 분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사연들을 모두 기사화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 분들이 이 글을 보실 리는 없겠지만, 빌릴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기에 -_-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그 밖에 들은 기사 요청 중에 기억나는 건 '흡혈 인간이 살아남아 우리 주변에 있다는데 조사해달라' (진지했었다), '가수 A와 B가 사귄다는데 진짜냐' 등이 있고, 기사화 요청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보고 다니는 여자가 있는데 이쁘게 생겼다. 꼬시고는 싶은데 도에 대해 얘기할까봐 겁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걸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 낸 책에 소개됐듯이 '엄마가 휴대폰을 못 사게 해서 그러는데 명의 좀 빌려달라' 같은 부탁도 있다..... ㅡㅡa
몇 안 되는 여기자인데다가 얼굴이 안 알려졌기 때문에 사귀자는 메일도 간혹 받는데, 이 경우도 매우 곤난하다. 당신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 대뜸 '사겨볼래요?' 라는 멜을 보냈는데 '좋습니다, 만나볼까요?' 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겠냐고 묻고싶었다. - -;
항의 메일도 많이 받았다. 내가 보아도 내용이 부실하고 형편없는 기사라 스스로도 쪽팔릴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어김없이 항의 메일이 날아든다. 한 번은 "이 업계에 대해 아는 것도 쥐뿔 없으면서 아는 척을 했군" 이란 내용의 메일이 왔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아는 게 별로 없으면서 잘난 척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폰트 크기 72, 빨간 글씨로 이렇게 써서 날렸다.
('들켰네요!' 하지 않고 반말로 쓴 건, 상대방이 욕을 매우 섞어 보냈기 때문이다)
항의 방문도 받아봤다. 내가 쓴 기사가 아니고 다른 분이 쓴 기사에 대한 항의였는데, "사옥으로 가서 따지겠다" 란 전화를 받고 정말 두려웠다. 기사를 쓴 분은 온라인 기자라 사옥에는 나와있지 않다고 얘기해도 기어이 와야겠단다.
게다가 그 기사가 종교 관련 기사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두려웠다. 예전에 만민교회 신도들이 MBC 뉴스룸을 점거한 일도 있지 않던가. 나는 사옥으로 들어온 수많은 신도들이 고함을 지르며 의자를 던지는 상상을 하며 덜덜 떨었다. 설상가상 그 날따라 편집국엔 아무도 없었다! 편집장님은 사정이 생겨 미국에 가 계셨고, 다른 기자분들도 모두 외근을 나가 계신 것이다.
분노에 찬 이들을 혼자 커버할 생각에 기가 막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미국에 있는 편집장님에게 살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잠시 후 이런 답장이 왔다. "흐흐, 잘 해 봐" -_-;;
이윽고 사옥으로 '한' 청년이 진입(?)했다. 그렇다. '한' 명이었던 것이다.... 상상한 것처럼 수많은-_-;;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일단 안도를 하긴 했는데, 가만 보니 그 청년도 맥이 풀려하는 것 같았다. 자기 딴에는 화가 나서 따지려고 굳은 각오를 하고 왔을텐데 편집국엔 아무도 없고 웬 어린(그 때는 어렸다 -_-) 여자가 추리닝을 입고 반기니 어이가 없었을 게다. 게다가 겁에 질린 무기력한 나는 그가 화를 낼 기회를 줄 여력도 없었다.
"이번 기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구요!"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그쪽 종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ㅇㅇ교를 이야기한 것이니, 그쪽에서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구요!"
"뭐야? 당신이 우리 입장이 돼 봐! 그런 기사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어?"
"지금 반말했어요? 언제 봤다고 반말이예욧?"
"당신이 지금 반말하게 만들잖아!!"
"이번 기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구요!"
"예....."
그 날 그 총각은 5분 간의 항의(?)를 마치곤 내 나이와 출신학교, 전화번호 등을 묻더니 유리문이 있는 화장실과 침실, 주방, 운동실 등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미끄럼틀을 타보고 돌아갔다......
나이가 어린 여자란 걸 이용하면 안 되겠지만,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이 또 있었는데, 누군가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곤 '한 번 만나자'란 연락을 받고 나간 때이다. 그런 연락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하던 나는, 글을 쓸 땐 손이 가는대로 실컷 흉을 봤지만 직접 면전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란 생각에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흉을 마구 보았다가 우연히 그와 마주친 것도 아니고, 흉을 보았다는 이야길 들은 당사자가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얼마나 떨리겠는가.... -_-;; 내가 그 분을 만나러 나간다고 하니 다른 기자분들은 "올 것이 왔다", "드디어 박살나겠군" 하는 축제 분위기-_-였고, 나는 거의 죽을 상이 되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이윽고 들어간 식당, 삼촌뻘 되는 나이의 그 분이 맞은 편에 앉았고, 그의 동료가 함께 자리했다. 처음엔 조금 서먹하고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풀어졌다. 나중에 들으니 그 분 역시 기사를 보고 "날 이렇게 까다니" 하며 화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30대 중반의 남성일 거라 추측한 그 분은 얼굴이나 보자 하며 불러낸 거였는데,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했다는 어린 여자애가 나와 앉아있으니 김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 날도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기사에 하도 '씨바, 졸라'를 쓰고 말투가 과격(?)해서 그런지, 내가 남자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도대체'란 이름도 남성스럽단다. '도대체 오빠 이랬어요.....' 하는 메일이랄지 '같은 남자 입장에서 이럴 수 있어?' 하는 메일을 받던 나는, 어느 날 내가 쓴 기사에 슬쩍 어릴 적 사진을 끼워 넣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화였기 때문에 삽화로 넣은 거였는데, 그 기사를 올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되고 10분도 안 돼 독자투고란에 이런 글이 떳다.
내용: 어렸을 때 꼭 여자처럼 생기셨네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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