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딴지일보 기자가 됐을 때

딴지의 기자가 되고 얼마 후에 아는 분이 전화를 하셨다. 동네의 다른 주민과 마찰이 있으시단다. 그걸 기사로 써서 혼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많은 그 분은 딴지일보가 어떤 사이트인지 모르고 계셨고, 단지 내가 '기자' 가 되었다고 하니까 아마 그런 기사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반상회보가 아닌 이상, 딴지같은 특이한 매체가 아니라 일반 일간지였다 하더라도 주민 간의 사소한 신경전을 기사로 쓰지는 못 했을 것이다.

여하간 그 분이 아니더라도 편집국으로는 기사를 써 달라는 전화가 많이 오는데,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도 없어 전화를 하는 분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사연들을 모두 기사화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 분들이 이 글을 보실 리는 없겠지만, 빌릴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기에 -_-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그 밖에 들은 기사 요청 중에 기억나는 건 '흡혈 인간이 살아남아 우리 주변에 있다는데 조사해달라' (진지했었다), '가수 A와 B가 사귄다는데 진짜냐' 등이 있고, 기사화 요청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보고 다니는 여자가 있는데 이쁘게 생겼다. 꼬시고는 싶은데 도에 대해 얘기할까봐 겁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걸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 낸 책에 소개됐듯이 '엄마가 휴대폰을 못 사게 해서 그러는데 명의 좀 빌려달라' 같은 부탁도 있다..... ㅡㅡa

몇 안 되는 여기자인데다가 얼굴이 안 알려졌기 때문에 사귀자는 메일도 간혹 받는데, 이 경우도 매우 곤난하다. 당신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 대뜸 '사겨볼래요?' 라는 멜을 보냈는데 '좋습니다, 만나볼까요?' 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겠냐고 묻고싶었다. - -;

항의 메일도 많이 받았다. 내가 보아도 내용이 부실하고 형편없는 기사라 스스로도 쪽팔릴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어김없이 항의 메일이 날아든다. 한 번은 "이 업계에 대해 아는 것도 쥐뿔 없으면서 아는 척을 했군" 이란 내용의 메일이 왔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아는 게 별로 없으면서 잘난 척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폰트 크기 72, 빨간 글씨로 이렇게 써서 날렸다.



"들켰다!! -o-;;"


('들켰네요!' 하지 않고 반말로 쓴 건, 상대방이 욕을 매우 섞어 보냈기 때문이다)


항의 방문도 받아봤다. 내가 쓴 기사가 아니고 다른 분이 쓴 기사에 대한 항의였는데, "사옥으로 가서 따지겠다" 란 전화를 받고 정말 두려웠다. 기사를 쓴 분은 온라인 기자라 사옥에는 나와있지 않다고 얘기해도 기어이 와야겠단다.

게다가 그 기사가 종교 관련 기사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두려웠다. 예전에 만민교회 신도들이 MBC 뉴스룸을 점거한 일도 있지 않던가. 나는 사옥으로 들어온 수많은 신도들이 고함을 지르며 의자를 던지는 상상을 하며 덜덜 떨었다. 설상가상 그 날따라 편집국엔 아무도 없었다! 편집장님은 사정이 생겨 미국에 가 계셨고, 다른 기자분들도 모두 외근을 나가 계신 것이다.

분노에 찬 이들을 혼자 커버할 생각에 기가 막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미국에 있는 편집장님에게 살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잠시 후 이런 답장이 왔다. "흐흐, 잘 해 봐" -_-;;

이윽고 사옥으로 '한' 청년이 진입(?)했다. 그렇다. '한' 명이었던 것이다.... 상상한 것처럼 수많은-_-;;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일단 안도를 하긴 했는데, 가만 보니 그 청년도 맥이 풀려하는 것 같았다. 자기 딴에는 화가 나서 따지려고 굳은 각오를 하고 왔을텐데 편집국엔 아무도 없고 웬 어린(그 때는 어렸다 -_-) 여자가 추리닝을 입고 반기니 어이가 없었을 게다. 게다가 겁에 질린 무기력한 나는 그가 화를 낼 기회를 줄 여력도 없었다.

"이번 기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구요!"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그쪽 종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ㅇㅇ교를 이야기한 것이니, 그쪽에서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구요!"
"뭐야? 당신이 우리 입장이 돼 봐! 그런 기사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어?"
"지금 반말했어요? 언제 봤다고 반말이예욧?"
"당신이 지금 반말하게 만들잖아!!"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이번 기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구요!"
"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_-;

그 날 그 총각은 5분 간의 항의(?)를 마치곤 내 나이와 출신학교, 전화번호 등을 묻더니 유리문이 있는 화장실과 침실, 주방, 운동실 등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미끄럼틀을 타보고 돌아갔다......



나이가 어린 여자란 걸 이용하면 안 되겠지만,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이 또 있었는데, 누군가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곤 '한 번 만나자'란 연락을 받고 나간 때이다. 그런 연락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하던 나는, 글을 쓸 땐 손이 가는대로 실컷 흉을 봤지만 직접 면전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란 생각에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흉을 마구 보았다가 우연히 그와 마주친 것도 아니고, 흉을 보았다는 이야길 들은 당사자가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얼마나 떨리겠는가.... -_-;; 내가 그 분을 만나러 나간다고 하니 다른 기자분들은 "올 것이 왔다", "드디어 박살나겠군" 하는 축제 분위기-_-였고, 나는 거의 죽을 상이 되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이윽고 들어간 식당, 삼촌뻘 되는 나이의 그 분이 맞은 편에 앉았고, 그의 동료가 함께 자리했다. 처음엔 조금 서먹하고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풀어졌다. 나중에 들으니 그 분 역시 기사를 보고 "날 이렇게 까다니" 하며 화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30대 중반의 남성일 거라 추측한 그 분은 얼굴이나 보자 하며 불러낸 거였는데,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했다는 어린 여자애가 나와 앉아있으니 김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 날도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기사에 하도 '씨바, 졸라'를 쓰고 말투가 과격(?)해서 그런지, 내가 남자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도대체'란 이름도 남성스럽단다. '도대체 오빠 이랬어요.....' 하는 메일이랄지 '같은 남자 입장에서 이럴 수 있어?' 하는 메일을 받던 나는, 어느 날 내가 쓴 기사에 슬쩍 어릴 적 사진을 끼워 넣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화였기 때문에 삽화로 넣은 거였는데, 그 기사를 올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되고 10분도 안 돼 독자투고란에 이런 글이 떳다.

제목: 도대체 기자님~

내용: 어렸을 때 꼭 여자처럼 생기셨네요 ^^

-_-;;;



2002/09/23 15:33 2002/09/23 15:33
3. 딴지일보 기자가 됐을 때 (2)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을 나열했는데, 쓰다보니 다른 길로 마구 새어버렸다 -_-;; 이제 처음에 인용한 서민 님의 경우처럼 직업 때문에 받는 '질문'을 써야겠다.

무슨 단체 모임에라도 나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할 때면, 내 옆에 있던 분들이 꼭 "딴지일보 기자입니다" 라고 이야길 하신다. 그럼 나는 "3월에 퇴사했습니다" 라고 토를 달지만 상대방은 이미 공격적인(?) 자세로 돌변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총수는 몇 살인가? (이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듣는다. 참고로 나는 총수님의 정확한 나이를 몰라 그냥 '30대 초반' 이라 대답한다)

② 편집장은 총수보다 나이가 많은가? (이것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많이 궁금한가 보다. 나는 편집장님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역시 '두 분이 비슷하십니다' 라고 얼버무린다. 이쯤 되면 상대방은 내가 상근직이 맞긴 맞았나란 의문을 품는다....)

③ 정말 회사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화장실 문은 유리로 되어 있는가? (이건 "예" 라고만 하면 되는 좋은 질문이다 ㅡ.ㅡ;)

④ 월급은 얼마인가? 딴지는 뭘 먹고 사나? (연봉은 대외비이며, 회사 근처에 식당이 별로 없어 서너 군데에서 시켜 먹는다고 한다 -_-)

⑤ 함주리 기자는 정말 함 주나? (간혹 받는 질문이다. 여기서 밝히는데 함주리 기자님은 비위가 매우 약한 분이다. 아무나 함 주지 않는다)

그리고 대답하기 가장 곤난한 질문......

⑥ 기자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는데 날 떨어뜨리더라. 도대체 왜 떨어뜨린 거냐?

 

간혹 듣는 질문이지만 이 경우 제일 곤란하다. 가끔 기자 채용 공고를 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시를 하는데, 내가 그들의 글을 가려 뽑은 적도 없거니와 간혹 편집장님이 "이 글 어때?" 하고 보여준 경우가 있다손쳐도 그 글들을 일일이 기억하진 못 한다. 떨어진 글이라면 더 그렇다 -.-;;

그런데 상대방은 자기가 이러이러한 이름으로 이러저러한 글을 보냈는데 떨어졌다며 나를 추궁한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유독 강한 터라 자신의 글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 그의 앞에 앉아있는 건 재미없는 글을 쓰기로 낙인 찍힌 내가 아닌가. 기자 모집에 응시를 할 사람이면 딴지의 애독자일테고,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글을 올리는 사람인지 잘 알고있을테다. 설상가상 질문을 한 사람이 현재 다른 매체의 기자라든지, 자유기고로 활동하든지 하는 글 잘 쓰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민망해진다.

'너 같은 애도 기자라고 글을 쓰는데 왜 난 안 뽑은 거지?' 라고 얘기하는 듯 한 눈빛을 보며 나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가 떨어진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쒸, 내가 뽑는 것도 아닌데......'

애써서 추리해보면 ① 재미가 없었든지 ② 글을 못 썼든지 ③ 재미도 있고 글도 잘 썼지만 딴지 기조에 맞지 않았다든지 ④ 메일을 잘못 보냈다든지.......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고작 이 정도 추리야 상대방도 못 했을 리가 없고...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싶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왜 떨어진 거죠?"
"저희는 외모만 보고 뽑기 때문입니다"

-_-

그 사람이 웃으면 다행이지만,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면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참고로 제가 수석이었습니다......."



2002/09/23 15:32 2002/09/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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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올라오자마자 보이던 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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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의 옥상은 인형들에게 분양.
오른쪽의 그림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강영민 님의 'cross'란 작품을 구입한 것입니다.(디지털 프린팅)
을지로 3가 벽화 기사를 쓰며 알게 된 작가분이죠. 어쩐지 낯이 익은 그림 아니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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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앞줄의 펭귄군, 늠름하고 당차보여 좋아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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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8 17:23 2002/08/28 17:23
Tag //
올 초에 찍어두었던 딴지 사진들.
사옥을 둘러봅시다. 사파리 하는 셈 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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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기 전, 문 앞에 놓여있는 똥침 기계.
이 기계를 만든 회사에서 선물로 주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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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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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에 붙어있는 [외부인 출입 수칙]
잘 안 보이는 분들을 위해 전문을 옮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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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8 17:00 2002/08/28 17:00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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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3 19:55 2001/06/13 19:55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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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07 20:33 2001/06/07 20:33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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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6 20:18 2001/05/16 20:18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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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1 00:01 2001/01/01 00:01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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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1 22:08 2000/12/21 22:08

 [매체: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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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0 22:39 2000/11/20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