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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둥굴레차 2003/01/27
어제는
모든 게 낯설었다.
잠든지 네 시간 만에 목이 말라 깬 나는
평소와 달리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아침 내내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고, 지나치게 의욕적이었고
그런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 집도 낯설게 느껴졌고
바닥의 타일이 낯설게 보이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는데, 칫솔모가 우르르 빠져 목에 걸렸고
가글을 해도 나오지 않아 빳빳한 모가 목구멍을 찔러 아파왔고, 급한 맘에 손가락을 넣은 바람에 좀전에 먹은 점심이 그대로 올라왔고
휴지통은 산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칫솔이 모가 다 빠져 담겨있는 게 자연스러운 공간은 아니었고
휴대폰의 벨소리도 이상하게 느껴져 아예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고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서며, 반사작용에 가깝게 불을 끄고 콘센트와 가스 밸브를 확인하는데 문득 지금 집을 나서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이 없었고
그러나 집안이나 집밖이나 묘하게 다가오는 건 마찬가지였고 사람들마저 낯설게 느껴졌고
밖으로 나오면 기분 전환이 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나는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길을 걷고 버스를 타서 학교에 갔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알바생의 시선을 피하며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고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어색했고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동아리방은 몹시 추웠고, 소파에 다리를 뻗고 앉아 노래를 들으며 책을 펼쳤고, 하필이면 들고 온 책이 〈거미 여인의 키스〉라 나는 기분이 더 암울해졌고
역시 들고 온 CD는 레이니선 1집이라 나는 더욱 가라앉았고
과연 내가 가져온 이 책과 CD들은 '하필' 골라진 것들인가 '알면서' 고른 것들인가 고민을 했고
학생회관은 그래도 사람 소리가 나는 여느 일요일과 달리 너무나 고요해 나 혼자 있는 듯 했고
나는 무서운 생각에 문을 잠그었고
어떤 일이든 일어나려면 혼자 있는 지금은 아니기를 바랬고
묘하기만 했던 하루를 되돌아보다가 어쩐지 자괴감이 들어 내가 미쳤지, 라 중얼거렸고
갑자기 피로가 밀려와 집에 가기로 결심하고
여전히 낯선 학교 앞 길을 내려와 낯선 횡단보도를 건너다 내 앞에 달려든 택시를 바라보았고
내 귀엔 레이니선의 노래만 들려오고 있었기에 그 광경이 현실감 없게 보였고
택시를 향해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손짓만 바라보다 몸을 돌렸고
몇 걸음 걷고 나서야 뒤늦게 철렁했지만
오히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이상한 하루를 보냈는지도, 란 생각이 들어 차라리 안도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집에 보란듯이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하루종일 쌓였지만 숨어있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덤비는 듯 해 까무러쳤고
얼마간 자다 일어났는데 여전히 무언가 자꾸만 낯설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칫솔모가 걸렸던 목이 아직 따끔하고 머리가 뜨거워
이제 다시 자려고.
아침엔 낯선 것들이 보이지 않음 좋겠어 인정하기 싫지만 실은 겁이 나.
둥굴레차는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온 건데 스무개 들이 상자야
오늘 이후로도 내가 차를 끓여 마시고 있을 거란 걸 증명해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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