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에 해당되는 글 3건

  1. 무기력 2002/10/17
  2. 추석 연휴 2002/09/21
  3. 그들을 만났다. 2000/07/21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루종일 생산적인 일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고
동아리방에 처박혀 밥만 먹고 잠만 잤다.
깨어있는 시간엔 멍하니 앉아있었다.
답답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는 수시로 무언가만 먹어댔다.

액체: 콩쥬스, 삼각 커피우유, 코코 포도, 이프로 부족할 때, 코카스, 아이스 라떼, 남양 딸기우유, 남양 커피우유

건더기: 오징어덮밥, 비빔밥, 야채호빵, 숏다리 오징어, 매실맛 사탕, 동아리 애들이 사온 과자들...

써놓고나니 황당이 더하다 =_=;
종일 먹고 마실 걸 달고 산 셈이다.
나는 분명 다음 주에 낼 과제도 많고 시험도 많다.
그래서 나를 찾는 전화들에 '도무지 시간이 안 난다' 라며 튕겨댔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꾸만 쏟아지는 잠에 동아리 소파에 누워 잠을 자다가
깨어있는 시간엔 멍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먹었다.
실기실에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보고서 쓸 자료라도 찾아야 했지만 거기도 갈 수 없었다.
나는 종일 불안하고 우울하고 지쳐있었다.
그래 지쳐있었다....

바깥이 두려워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종일 동아리방 반경 몇 미터를 못 벗어났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누워서 잠을 자다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내게 동아리 후배가 말을 걸었다.

"언니를 키운 건 팔할이 동방이에요"

=_=;

아아 내일은 달라질 수 있을까
기운을 내어 작업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병든 개처럼 잠만 자지도 않고
내가 할 일의 계획을 세워 착착 진행할 수 있을까

중간고사가 끝나면 혼자 강화도나 가서
이박삼일 시체처럼 누워있다 오면 좋겠다.
혼자 뒹굴고 울고 티비보고 정신 못 차리다가
잠바를 꿰어입고 밖으로 뛰어나가 새우튀김을 사먹고 싶다.
내 인생에서 몇 번째 쯤으로.... 편안했던 그 때가 그립다.




2002/10/17 23:37 2002/10/17 23:37
19일 (목)

아침) 아침 수업이 휴강된 날. 늦잠을 자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다.

점심) 집을 나서다. 한남동에 있는 고모님 가게를 찾아가다. 드릴 물건을 전해드리고 용돈을 받다. 추석 연휴 전 날이라 오후 수업도 휴강된 상태이지만 과제를 검사받을 게 있어 학교에 가다. 전공 교수님을 뵙고 동아리방에 가다. 노영권이 동방에서 두 시간이나 잤다며 벌건 얼굴로 맞이하다.

저녁)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동방에 들른 윤희와 영권과 수다를 떨다. 동방에서 수다를 떨던 우리는 밖으로 나와 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가서 계속 수다를 떨다. 분식집으로 가는 길, 하늘의 달이 멋지다며 윤희가 사진을 찍다. 그것이 달인지 해인지에 대해 세 명이 언쟁을 하다. 하늘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종이를 오린 듯한 그 동글뱅이가 달 같기도 하고 해 같기도 하다. 한참을 떠들다 이 나이에 달과 해를 구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통하여 그만 두다. 떡볶이와 튀김, 꼬마김밥을 먹다. 여러 주제로 여러 이야길 하며 낄낄거리다. 윤희와 영권은 집으로 가고, 나는 다시 동방에 올라오다. 책을 조금 읽다 나오다.

밤) 집으로 가는 길, 평소에 차가 안 밀리면 10분도 안 되어 질주했을 '학교 앞~ 경복궁역' 코스를 50분만에 가다. 벌써 귀성 행렬이 시작된 듯. 차를 오래 타면 쉬이 지치고 멀미까지 하는 촌스러운 나는 이내 가사 상태에 빠지다. 뒷바퀴 위에 얹힌 좌석에 앉았더니 뜨거운 열이 라지에타처럼 올라오다. 사람들은 "이제 곧 터널을 통과하오니, 건강을 위해 창문을 닫아주십시오" 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 지 40분이 지나도록 창문을 다시 열지 않다. 괴로워하던 나는 버스가 세종문화회관을 지날 때 앞쪽 창문 옆 자리가 비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옮기다. 창문을 활짝 여니 살 것 같다. 다행히 그 때부터 길이 잘 빠지다. 바람에 머리가 산발이 되었지만 기분이 좋다.

버스에서 내려 동네 시장에 들르다. 차례 지낼 것들을 사러 다니다. 오랜만에 시장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는데 명절은 명절이라 가게마다 활기가 넘치다. 다행히 과일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그리 비싸지 않다. 두 손 가득 먹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오다. 개인적인 일을 하다 새벽에 자다.




20일 (금)

아침) 늦잠을 자다.

점심) 음식을 만들다.

저녁) 음식을 만들다.

밤) 음식을 만들다......


그래도 이번 추석엔 송편을 안 만들고 사먹기로 했고, 바쁜 와중에도 엄마가 부침개와 산적을 만들어주셨기에 일이 조금 일찍 끝나다. 예년같으면 모든 요리가 끝나는 때가 자정을 훌쩍 넘기다. 우리집이 큰집이 아닌데도 이렇게 음식을 만드는 이유는 내 아버지의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다. 엄마가 바쁘셔서 차례나 제사 음식은 동생과 내가 맡아오다 동생이 군대에 간 이후론 혼자서 해내다.

이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장하다. 제사 음식 못 만드는 거 하나 없다. 올해엔 안 만들어서 그렇지 송편도 이쁘게 만들다. 결혼하면 시어머니한테 칭찬 많이 받을 거다. 그러나 나는 칭찬받는 것보다 음식을 안 만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다. 그런 칭찬은 안 받아도 좋으니 만들지 말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사실 우리 집 차례상도 다른 집보다 많이 간소한 편이지만 좀더 간소해졌으면 하고 소망하다. 그러나 나에겐 내가 그리 정붙이지 않은 아버지의 차례상이지만, 엄마에겐 당신 남편에게 차려주는 한 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내용을 갖춰 차리고 싶어하는 엄마 마음을 생각하여 반항하지 않다.

종일 생선과 달걀, 마늘 따위의 냄새를 맡다가 마지막에 식혜를 끓여내는 것으로 모든 일과가 끝나다. 샤워를 하기 전, 모니터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폼을 잡아보다 상을 닦지 않은 것이 생각나 일어나다. 구석에 짱박혀있던 큰 상을 꺼내 먼지를 닦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벽장에 넣어뒀던 향과 향로를 꺼내 닦아두다. 가게에서 올라온 엄마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 밤 인사 후 내 방에 돌아오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21일 (토) : 예상 일과

일찍 일어나 아버지 차례를 지내다. 차례상을 치우고 서둘러 큰집으로 향하다. 영등포에 있던 큰집이 얼마 전 수원으로 이사가면서 명절의 행보가 약간 더 가빠지다.

큰집에서 어른들에 둘러싸여 내가 요즘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지 또 얘기하다. 나는 명절만 되면 행복해지다. 도대체 학교는 언제 졸업하는 건지 또 얘기하다. 입학한 지 5년 째인데 해마다 얘기하다. 내가 이미 졸업한 줄 아는 어른에게 아직 학생이라고 확인해드리다. 아직 졸업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해 또 얘기하다. 휴학 중에 무슨 일을 한 건지 또 얘기하다. 전공이 무언지에 대해 또 얘기하다. 왜 그런 과에 들어갔는지 또 얘기하다.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하고싶은지 또 얘기하다. 그 일을 하고싶은데 왜 이런 과에 들어갔는지 또 얘기하다. 애인이 없는 이유에 대해 또 얘기하다. 살이 찐 이유에 대해 또 얘기하다. 귀를 많이 뚫은 이유에 대해 또 얘기하다. 머리 염색을 한 이유에 대해 또 얘기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란 주제로 또 얘기하다.

그리고 서둘러 부천에 있는 외갓집으로 향하다. 외갓집에서 내가 요즘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지 또 얘기하다. 나는 명절만 되면 행복해지다.........




2002/09/21 02:50 2002/09/21 02:50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요즈음,

어젠 학교 동아리방에서 모처럼 혼자 여러 시간을 보냈다.

내가 뭘 해야하는지 헷갈리고 자꾸만 게을러질 때에

동방은 내게 알 수 없는 기운이 되어 주는데,

다리뻗고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모처럼 내 모습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요즘 난 나를 너무 잊고 살았다.

한동안 무슨 헛짓거리를 하며 꿈에 절어 살았나 싶다.

그러고 돌아와 밤에 공원에 갔다. 언제나처럼, 동생이랑 배드민턴을 치러.

평소처럼 치던 중에 깜짝 놀랐다.

나무, 바닥, 수풀 사이사이에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들이 있었다.

아 내가 그동안 왜그랬지.. 생각도 못하고 살았잖아.. 안녕 여러분, 미안해요 다시 봐서 기뻐요




그들을 다시 만났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또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2000/07/21 06:49 2000/07/21 0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