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손톱 깨무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네일샵에 드나드는 중이다. 의지력으로 고쳐지지 않던 버릇은 비싼 케어를 받으면서야 본전 생각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지지난 주였나, 네일샵에 부부 한 쌍이 들어왔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편은 아내를 데려다주고 사라졌다가, 그녀가 메니큐어를 말리고 있을 즈음 돌아와 앉아 있다가 아내와 함께 일어났다.
여자친구를 따라와 한 시간 가량 되는 시간을 지루해하지도 않으며 기다리다 가는 남자들을 보아왔지만, 그 부부를 바라보면서는 어쩐지 좀 묘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건 아내 되는 여자가 나와 동갑이란 사실을, 그녀와 직원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정한 스커트 차림에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곱게 맨 여자를 처음 봤을 땐 -나이 들어 보이는 남편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깨물어서 엉망이 된 손톱을 정리하러 그곳에 간 나와 달리 그녀는 단지 미용을 위해 온 것이었고, 일요일 오전에 곱게 차려입고 남편과 함께 찾아온 맑은 얼굴의 그녀와 달리 청바지 차림의 나는 전날 회사에서 밤을 새고 간 참이라 눈꼽이 자꾸 끼는 것을 신경쓰며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어쩐지 나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갈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지 못하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던 이유가 그녀의 얼굴이 나이 들어 보여서라기 보다는 어딘지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좀 괴상해졌다.
스물아홉이란 내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아니란 사실이야 진작 알고야 있었지만, 나와 동갑인 누군가는 저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는 '진짜 어른' 처럼 보였다)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내가 그녀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사실이 결코 뿌듯하지 않고 오히려 쑥쓰러운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겠다.
얼마 전 술을 마신 일행은 영화감독과 촬영감독, 배우 등이었다. 그 날 나보다 한 살 많은 여배우는 "연기는 제가 평생 할 일이라 당장의 결과에 조급해하지 않으려 해요."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오늘의 말'로 선정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그래 나도 그림 그리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어차피 평생 할 일이라면 당장 이루는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 삼았지만, 네일샵에서 마주친 부부를 떠올리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이라는 한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란 차원에서도 나는 더디게 살고 있구나 란 기분이랄까? 내 주위엔 아직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애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만 축내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 중에서 두 번째로 결혼한 인숙이 '임신 12주 째' 란 연락을 해 왔다. 나중에 출산일을 가늠하기 위해 달력에 '인숙 12주' 라 써놓고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그녀와 나와 인숙은 이렇게 참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지지난 주였나, 네일샵에 부부 한 쌍이 들어왔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편은 아내를 데려다주고 사라졌다가, 그녀가 메니큐어를 말리고 있을 즈음 돌아와 앉아 있다가 아내와 함께 일어났다.
여자친구를 따라와 한 시간 가량 되는 시간을 지루해하지도 않으며 기다리다 가는 남자들을 보아왔지만, 그 부부를 바라보면서는 어쩐지 좀 묘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건 아내 되는 여자가 나와 동갑이란 사실을, 그녀와 직원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정한 스커트 차림에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곱게 맨 여자를 처음 봤을 땐 -나이 들어 보이는 남편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깨물어서 엉망이 된 손톱을 정리하러 그곳에 간 나와 달리 그녀는 단지 미용을 위해 온 것이었고, 일요일 오전에 곱게 차려입고 남편과 함께 찾아온 맑은 얼굴의 그녀와 달리 청바지 차림의 나는 전날 회사에서 밤을 새고 간 참이라 눈꼽이 자꾸 끼는 것을 신경쓰며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어쩐지 나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갈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지 못하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던 이유가 그녀의 얼굴이 나이 들어 보여서라기 보다는 어딘지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좀 괴상해졌다.
스물아홉이란 내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아니란 사실이야 진작 알고야 있었지만, 나와 동갑인 누군가는 저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는 '진짜 어른' 처럼 보였다)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내가 그녀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사실이 결코 뿌듯하지 않고 오히려 쑥쓰러운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겠다.
얼마 전 술을 마신 일행은 영화감독과 촬영감독, 배우 등이었다. 그 날 나보다 한 살 많은 여배우는 "연기는 제가 평생 할 일이라 당장의 결과에 조급해하지 않으려 해요."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오늘의 말'로 선정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그래 나도 그림 그리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어차피 평생 할 일이라면 당장 이루는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 삼았지만, 네일샵에서 마주친 부부를 떠올리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이라는 한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란 차원에서도 나는 더디게 살고 있구나 란 기분이랄까? 내 주위엔 아직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애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만 축내고 있는데- 동갑내기 친구 중에서 두 번째로 결혼한 인숙이 '임신 12주 째' 란 연락을 해 왔다. 나중에 출산일을 가늠하기 위해 달력에 '인숙 12주' 라 써놓고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그녀와 나와 인숙은 이렇게 참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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