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1/03/01
  2. 발자국 2011/01/11
  3. 착하게 2011/01/11
  4. 태수의 겨울밤 (10) 2009/12/28
  5. 겨울, 잡담 (4) 2009/01/14
  6. (3) 2008/11/20
  7. 발자국 (9) 2008/01/11
  8. (6) 2007/11/21
  9. 주말 2006/12/18
  10. 광화문 연가 2005/11/27
  11. [Hello Dodaeche] 18 : 빈 눈 2005/05/01
  12. 이태원 2004/01/22
  13. 200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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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눈이라 기운이 없는지 눈송이가 투욱 툭 무겁게 떨어진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괜히 눈을 받아 보았다. 툭.






2011/03/01 06:11 2011/03/0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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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얗고 추워졌지. 배고플 너의 발자국. 따라 걷는다.








2011/01/11 20:56 2011/01/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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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모두 착하게 눈을 맞아요.








2011/01/11 20:54 2011/01/1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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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눈이 많이 온 날이었어요.
누나는 꺼리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밖에 나가고 싶어서
산책줄과 현관문을 번갈아 쳐다보며 누나를 졸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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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또 꼼지락거린 바람에 해가 진 후에야 나왔지만,
괜찮아요! 신나게 돌아다녔습니다.
눈이 어찌나 왔는지,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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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눈에 굴하지도, 미끄러운 비탈길에 겁먹지도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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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 눈이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참 온갖 짓을 다 해 놨네요.
눈사람이란 것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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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적어 놓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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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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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누나만 해도요. 굳이 고 옆에 답장을 쓰더라구요.
아니 저게 다 무슨 쓸모 없는 짓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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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영역 표시 정도 가뿐히 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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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일은 봐야, 실속 있는 외출이라 할 수 있겠죠.
눈밭에서 똥 눠 본 적 있어요? 없으면 말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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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계속 돌아다니겠다고 버티다가, 누나에게 안겨서 귀가하고 말았습니다.
추워서 달달 떨었지만 재밌던 겨울밤이었어요.





2009/12/28 03:57 2009/12/2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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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창완,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미리 알 수 있는 것 하나 없고 후회 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다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


2. 이소라, 7집 9번 트랙.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3. 최규석.
연초부터 감기 몸살에 걸린 친구에게 <습지생태보고서>를 빌려주면서, 그 참에 나도 다시 읽었다.
최규석은 굉장하다. 그간 다른 만화가들의 다음 작품이 막연히 기대된 적은 있었어도
그 작가가 나이듦에 따라 어떤 작품을 그려낼까 기대된 적은 없었는데
최규석에겐 그런 기대가 든다. 이십대에 이십대로서의 <습지생태보고서>를 그려낸 그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어떤 만화를 그리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4. 감기.
날이 춥다. 몸도 춥고, 맘도 춥다.
주위에 감기 걸린 이들이 몇 있지만 용케 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확연히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게, 맥아리가 없다.
맥아리 없는 게 감기 때문인지 맥아리가 없어서 감기가 찾아온 건지
감기가 찾아와도 생기는 잃지 않을 수 있으니 감기와 별개로 맥아리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깊은 잠을 자고 싶다.


5. 괜찮다고 하지만 눈처럼 쌓이는 일들.
괜찮다고 하지만 눈처럼 쌓이는 일들이 있다.
나뭇가지는 눈이 오자마자 바로 부러지는 게 아니다.
쌓이고 쌓이는 눈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부러진다.
가지를 부러뜨리는 건 마지막 작은 눈송이 하나가 아니라
그동안 쌓여있던 눈 모두인 거지.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갑자기 부러지는 가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듯 "괜찮다"고 할 때의 내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지금은 괜찮아. 견딜만 해. 하지만 이 다음에 언제 무너질 지 나는 몰라...


6. 이성으론 이해하지만 겪으려니 곤란한 일.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겪으려니 곤란한 일들.


7. 지점
상대방의 호의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지점이 있다.
여긴다기 보다, 의식하지 않게 되는 지점이라고 하자.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실 당연한 것은 별로 없어.
그걸 잊으면 안 돼.


8. 마음.
마음이 허허로워 난처해 하다가, 시집 몇 권을 주문했다.
읽고나면 마음이 채워질까. 부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렇게 무언가로 마음이 채워지면 좋겠다는 바람 한 편
나는 자꾸 마음을 깊이 파내고 싶기도 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서
나는 그 안에 숨어 살고, 파낸 마음은 어디 깊은 산골짜기에 버려 버리면 좋겠어.
…………
내가 직접 가긴 귀찮으니까 택배로 부치자.




2009/01/14 15:43 2009/01/14 15:43
from ---------------글담 공책/시 2008/11/20 23:20



 



뺨에 닿은 눈, 녹으며 말하네.
사라질 것이다.
나 이리 사라지듯 너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세상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품고 감고 달고 밟고 숨긴 것들도
사라질 것이다. 너는 그 대부분을 기꺼워하겠지만 그 안도도
사라질 것이다.





2008/11/20 23:20 2008/11/2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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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면 크게 보임.

*
새 PC를 조립해와서 파일 정리 중. 그러다보니 옛날 사진들을 들추게 된다.
사진이 많은데,
그 많은 순간 대부분이 그립다는 걸 깨닫고 잠시 놀라웠지만
좋은 순간이라 사진으로 찍은 거겠지, 생각하니 피식 웃음도 나고 그런다.

오늘은 사진처럼 눈이 오고 있는데
아침부터 눈이 오니 마음이 말랑말랑.
내려라 눈 눈



2008/01/11 10:37 2008/01/11 10:37



모처럼 새벽 산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창밖 가로등 불빛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응?

이게 웬 눈이냐. 함박눈 펄펄.
이런 날씨에 새벽 산책을 나가면 어떤 기분일까.

그래도 조금 전부턴 진눈깨비가 날리는 거 같으니
천둥까지 쳐대긴 한다만 좀 낫다. 평소에야 깨끗하고 보송한 함박눈이 더 좋지만

아까는 펄 펄 떨어지는 커다란 눈송이를 보고 있으니까
마음까지 툭 툭, 함께 떨어지던 거라.




2007/11/21 03:56 2007/11/2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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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월간 논 원고 마감일. 온종일 미친듯이 작업하고 원고를 넘기니 저녁 7시. 그제서야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 발견. 며칠 전 구입해서 한 번도 신지 않은 채 '냄새 좀 빠지라고' 집게 옷걸이에 걸어 창밖에 널어놓은 롱부츠가 떠오름. 골고루 충분하게 젖어서 절인 배추처럼 늘어진 부츠를 손에 들고 낙담.

갑자기 생긴 '올드미스다이어리' 시사회 자리. 동대입구역인 우리집에서 브로드웨이 극장이 있는 신사역까진 겨우 다섯 정거장.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을 너무 딱 맞추어 출발. 지하철을 타고 휴대폰으로 헥사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림.

 "나 지금 안국역이야. 금방 도착할 거야."

안국역은 무슨... 이 열차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구만. 저 아저씨 뻥을 쳐도 괴상하게 치네... 하고 피식 웃다가 밖을 내다보니 정말 안국역. 내가 반대 방향 열차를 탄 것이었음. 부랴부랴 하차, 반대편 지하철을 기다려서 탑승. 먼저 극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지는 '지하철을 반대로 탄 걸 모르고 있었다'는 내 전화를 받고 애인인 곤오빠에게 얘기했지만, 곤오빠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니? 못 믿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브로드웨이 극장에 도착. 명단에 없다는 시사회 담당자와 잠깐의 실랑이(?) 끝에 극장으로 진입. 영화는 이제 막 시작된 상황. 허리를 굽혀 좌석을 찾아 앉고 있는데 스크린에서 예지원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대뜸 들려서 화들짝 놀람.

 "삼십대 백수 노처녀...!!"

 헐.

영화를 아주 잘 보고 흡족한 마음으로 귀가. 모처럼 만난 서지와 좀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먼 서지의 귀가시각이 임박하여 각자 집으로 향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귀가했는데, 문어발 전 남자친구와의 작업물이 모처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옴. 급 우울 모드.



토요일-
전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울 모드를 퇴치하는 덴 대청소가 약이라고 판단, 방청소 시작. 바닥이며 책상, 책장, 창틀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닦음. 앞으로 공연히 전 남자친구를 문득 떠올리는 일이 없도록, 그 동안 받은 선물들을 모조리 버림. 언젠가 그가 분홍색 구슬반지를 문구점에서 사와 끼워준 적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끼워보고 빼던 중에 줄이 끊어져 사방으로 구슬이 튐. 싹싹 쓸어모아 마저 버림.

저녁,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해토 망년회에 뒤늦게 합류하러 신촌으로 가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 가뜩이나 꿀꿀한데 눈까지 징그럽게 내리니 암담. 신촌 한복판에서 언성 높이고 따귀를 때려가며 싸우는 어린 커플 목격. 이런 큰 눈을 맞으며 저렇게 심하게 싸운다면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싶음. "낭만적인 기억은 금물이에요" 하며 다가가 우산을 씌워줄까 하다가 돌아섬.

2차가 끝나고 남은 멤버는 나, 동기 니꼴라스, 후배 양아, 묵이, 상태. 양아가 잘 안다는 마포의 어느 횟집에 가려 했지만, 평소 주말에도 자정 넘어 택시 잡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신촌은, 눈 폭격을 맞은 이날은 택시와 승객의 전투로 온통 아우성. 결국 신촌 횟집으로 들어가 3차 시작.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눈송이를 보며 우울한 기분이 자꾸 들었으나 대화만큼은 즐거웠음.

그간의 연애 패턴은 영 아니라는 충고를 들음. 그리고 앞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초반에 이애들에게 보여주고 검증 받겠다고 약속. '남자 보는 눈은 남자가 정확하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문제들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 그래도 나는 그이를 훨씬 많이 지켜봤다고. 너희는 단지 몇 시간만 보고 판단했을 뿐이잖니?' 라는 마음가짐 때문이란 걸, 이애들도 나도 알고 있음.

날이 밝음. 지하철 운행 시각까지 기다렸지만 춥고 취한 김에 택시에 승차, 집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감.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백여 미터를 걸어가야 하는데, 가뜩이나 취한 상태에 폭설을 예상 못하고 신고 나온 9cm 하이힐을 신고 경사진 눈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음. 결국 구두를 벗고 스타킹 바람으로 걷기 시작.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더운물을 들이부었음. 아이들과 낄낄거리며 얘기하다 돌아온 참이지만, 방에 들어오니 문득 속상해져서 펑펑 울기 시작. 끝난 연애로 우는 건 이게 마지막이라고 다짐.



일요일-
홍대 앞에서 후배를 만남. 가는 길에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보며 '저런 눈길을 구두를 벗고 걷다니' 하며 몸서리. 취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던 일.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이제 어딜 갈까 궁리. 이런저런 이유로 몇 곳을 패스시키고, 나의 권유로 후배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함. 그러나 이날따라 분위기는 어수선했고, 사람이 많아서 어정쩡한 자리에 티테이블을 놓고 앉아야 했음. 도무지 대화를 할 수 없게 만든 요인 중 하나는 근처 테이블 일행이던 한 아가씨. 방심할 틈을 주지 않고 들려온 그녀의 "꺅꺅꺅꺅!" 하는 요란한 웃음소리 때문에 도 나도 급 좌절.

얼마 후.
 "됐어. 이제 저 아가씨 그 정도로 크게 웃진 않을 거야."
 "언니가 어떻게 알아?"
 "봐 봐. 남자 일행 대부분이 일어나잖아. 남자들 중에, 저 아가씨가 마음에 둔 남자가 있을 거야. 그래서 평소보다 오버했던 거지. 이렇게 생각했을 걸. '내 솔직하고 내숭없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하지만 이제 다들 일어나니까, 이제부턴 그러지 않을 거야."
 "꺅꺅꺅꺅꺅!"
 "언니 뭐야. 그대로잖아."
 "남자 한 명은 남았잖아. (자신 없이)저 남자를 좋아하나 보지."

결국 음악을 듣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마시다 일찍 헤어짐. 후배는 나중에 문자메시지로 '우리가 만났던 날 중 가장 간소하고 조용했던 날'이란 평을 내림.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심.

 "어제 네가 방 닦은 걸레 있지, 그거 내가 현관 앞 계단 청소할 때 쓰는 걸레야!"



서른이 며칠 안 남은 나의 주말.




2006/12/18 23:33 2006/12/18 23:33
광화문은 나에게 뭐랄까, 치유의 장소였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 선영이랑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광화문 앞에 놀러오는 걸 좋아했었다. 어린 우리에게 이곳은 버스를 타고 와야하는 제법 먼 곳이었지만, 시청 앞에 있던 동방플라자(지금은 삼성플라자인가?) 지하 문구센터에 가면 동네 문구점에선 보기 힘든 특이하고 예쁜 팬시상품 구경하는 게 참 좋았다. 그 때 산 예쁜 집게가 아직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우리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빨며 문구류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밖엔 갑작스런 대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무작정 집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남대문을 지나 남산 가는 길을 올라가는 길,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쌕쌕거렸고, 추위에 덜덜 떨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집에 도착하려면 몇 시간이나 더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늦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선 얼마나 걱정할까 염려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 때 기분이 아주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좀 흥분한 상태였다고 할까. 아무튼 지쳐 있던 우리 눈에 갑자기 83-1 버스가 나타났다. 몇 시간 만에 버스 운행이 재개된 거였다. 따뜻한 불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온 버스를 타고, 둘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광화문 출입이 잦았다. 교보문고도 좋았고, 경복궁도 좋았고, 세종문화회관도 좋았다. 대학은 집에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는 곳이라 매일 이 앞을 지나쳤다. 나는 그게 행운이라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느라 광화문 근처에 올 일이 없을 때도, 나는 종종 광화문을 찾았다. 이곳이 '치유의 장소'라고 얘기한 것은 내가 주로 우울하거나 괴롭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어쩐지 의욕이라곤 조금도 없을 때- 찾아왔기 때문이다. 뭐, 와서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고 교보빌딩 앞에 내려 경복궁 앞을 지나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걸어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정도였다. 그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나면, 어쩐지 기운이 마음 속에서 뾰족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 때면 나는 으레 광화문을 찾았다.

오늘 문득 광화문을 예전같은 마음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현재의 직장으로 옮길 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광화문 근처에 일터를 얻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는데, 막상 매일 이곳에서 일을 하고 이곳에서 한숨을 쉬다보니 막연히 생각한 '출근 때마다의 감동' 같은 건 물 건너간 지 오래다. 후후.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던 광화문을 다시 찾고싶다- 는 마음이 강렬해져서 오늘 퇴근 후에 예전처럼 천천히 길을 걸었다. 모처럼 경복궁 앞을 지나, 여전히 남아 있는 까페에 들어왔다. 예전에 자주 들르던 까페는 아담한 2층 짜리 까페였는데 문을 닫은지 오래다. 또 한 곳은 오늘 보니 설렁탕집이 되어 있다. 오늘 온 이곳은 운치나 그럴듯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이지만,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도 드나드는 곳이라 당분간은 망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볼까 해서 까페 안을 한 바퀴 돌았지만 결국 앉은 곳은 항상 앉던 가장 구석자리다. 가방을 던져놓고 주문을 한 다음 종일 부은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좀전에 들어온 20명 단체손님-직장인들-이 한창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들어오기 전에 길 건너 샵에도 들러볼까 하다가 말았다. 옷과 장신구를 파는 작은 그 샵은 당찬 아주머니 한 분이 꾸리는 곳이다. 언뜻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은 동대문에만 나가도 여기저기서 팔고 있는 옷들을, 아주머니는 직수입품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아주머니가 어느 나라에서 수입한 것인지 끝내 밝히지 않은 채 단지 '수입품'이라 주장했던 아이보리색 니트도 그 중 하나였다. 결코 디자인 된 게 아니라 보관상의 실수인 것이 분명한 눈에 띄는 얼룩이 가슴팍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는데도, 나는 그 니트를 끝내 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무언가를 구입하는 행위도 나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셈이라. 나는 종종 거기에서 몇 번 입으면 형편없이 늘어나는 티셔츠나, 길지도 않은 4박 5일 여행 중에 끈이 똑 끊어져버린 가방 따위를 사곤 했다. 언젠가 너무 우울했던 날, 나는 그곳에서 너무 커서 엄지손가락에 끼워도 헐렁헐렁한 반지를 사기도 했다.

아, 그러니까 그 날, 사실 그 날은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날이었다. 자정 넘어까지 웹서핑을 좀더 하다가 잠이 들고, 느즈막히 일어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면 되는 일요일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 하나가 msn으로 말을 걸더니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였다. 그애는 내가 그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그애가 꺼낸 남자친구에 대한 말들은 온통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그저 믿고 있던 든든한 남자친구의 이면을 알게 된 나는 덤덤한 척 대화를 맺었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앉아있던 나는 새벽이 되자 집을 나섰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걷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서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빠져나와 남영동에 이르렀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 비옷을 사서 입고 계속 걸었다. 서울역을 지났고, 남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시청 앞과 광화문을 지나 세검정 학교까지 걸어갔다. 걷는 동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고 시청 앞은 햇빛 때문에 반짝거렸지만 나는 비옷을 입은 그대로 계속 걸었다. 그리고 학교 동아리방 소파에 쓰러져 잠을 자다 일어나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에 길 건너 저 샵에 들렀던 거다.

이런저런 장신구를 구경하던 나는 분홍색 알이 박힌 은반지를 집어 들었는데, 그 반지를 끼고 있으면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해줄께'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맞지도 않고-여전히 터무니 없이 비싼-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나오며 나는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온종일 걸은 탓에 몸은 말할 수 없이 지쳤지만...... 결국 그 날 종일 걸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한- "사랑하는가" 란 물음에 나는 "그렇다" 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분홍색 알반지를 끼고 그를 계속 만났다.

까페는 여전히 시끄럽다. 조금있다 이만 일어나야겠다.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야지. 이사를 한 이후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어쩌면 내가 더 이상 광화문을 치유의 장소로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매일 이곳에 출근해 한숨을 쉬기 때문이라기보다, 돌아가야 하는 집과 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고장난 mp3 플레이어를 빨리 고쳐야겠다. A/S 센터에 플레이어를 보내고 그애가 돌아오면, 이어폰을 꽂고 다시 이곳을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그러면 예전처럼 꿈꾸는 기분으로 이곳을 걷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광화문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야지. "안아주세요-" 라고.

(11.25.금요일에 광화문 까페에서 노트에 쓴 글을 옮김)




2005/11/27 00:06 2005/11/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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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Dodaeche, 2001.10.1~2002.3.9 ⓒ도대체


2005/05/01 05:01 2005/05/01 05:01
(1. 20)

어렸을 적 한남동에 살던 나는 인근의 이태원을 오가는 시간 역시 많았다. 오가는 외국인과 저녁이면 미용실에서 화장을 하던 남자들과 옆집에 살던 양공주 아줌마와 휴일에 고무줄 놀이를 하던 이슬람 사원을.... 나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중1 여름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전학을 하지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그냥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은 반짝거렸다. 무성한 가로수잎과 오래된 상점 간판과 노점상의 물건들과 사람들의 머리까지..... 그 풍경이 너무 좋았던 나는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국방부 앞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는 것에 지치고 힘들 때면, 그래서 나는 이태원을 떠올린다. 한없이 반짝이기만 하던 내 열네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곳을 걷는 나는 언제나 둥둥 떠다니는 듯 하다.

오늘, 퇴근 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집에 오는 길에 그곳에 들렀다. 전철역을 나오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을 털고 있었다. '눈이 오나?' 지상으로 올라가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전철을 타기 전까지도 눈이 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함께 퇴근하던 언니에게 "눈이라도 오면 좋겠어요" 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미 바닥에 쌓일 정도로 눈이 내려 있었다. 마치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듯한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나는 넋을 잃었다. 그리고 눈으로 뒤덮인 이태원을 걸어다니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아 이태원 이태원,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구원받는 기분이다.

그렇게 걸어다니다가 어느 바에 들어갔고,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지만 전화벨은 계속 울리며 몇 년 전의 최신 팝송이 계속 흘러 나오는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두 병을 서둘러 비우고 밖으로 나와 다시 또 눈을 맞으며 걷다가 중얼거렸다. 제발 날 구원해달라고.

한동안 붕 떠 있기만 하던 나는 이윽고 24시간 영업한다는 중국집을 발견했고 저녁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그 집에 들어가며 짬뽕을 달라고 외쳤다. 평소와 달리 그릇을 들어 국물까지 열심히 마셔대며 생각했다. 어느 토요일 햇빛이 많은 날, 다시 이태원에 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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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2 00:03 2004/01/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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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글담 공책/시 2001/01/21 15:55




간장에 졸여 쪄낸 죽은 닭을 나눠 먹으며
반주한 술 한 병에 꼬인 혀로
나는 네가 죽음보다 싫다, 감히 말하고 돌아서는데

사람들의 머리마다 달라붙는 눈송이가
이제 그만, 하라며 녹아내렸다.


(2001.1.21)




2001/01/21 15:55 2001/01/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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