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중학생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사실 안 좋았던 점을 하나하나 찾다보면 그 때로 돌아가고싶단 맘 따위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지만, 두리뭉실하게 대충 그 때를 떠올려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다 지치면 경복궁역에 내려 산책도 하고, 그 때까지 있던 중앙박물관 이층 식당에서 만두나 사 먹고, 장충단 공원 야외 롤러장에서 지칠 때까지 빙글빙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너무나 얇아 바삭하고 부서질 것 같던 삼백원짜리 파전을 사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고,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처박혀 이 책 저 책 읽어대고, 늦게 집에 간다고 핀잔주는 수위 아저씨들과 농담 따먹기 하고,
탁이준이 보러 공개방송 가서 소리 지르고, 동네 독서실에서 사귄 다른 학교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노닥거리고, 친구가 좋아했던 주윤발이란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시간에 맞춰 신당동 떡볶이집에 가고, 뭐 그랬던 날들 말이다. 난 그 때 먹었던 떡볶이의 약간 시큼했던 맛이나, 늦은 오후 학교 언덕을 비추던 노랗고 기다란 햇볕까지 잊지 않고 있다. 시험문제 하나만 틀려도 일등을 못할까봐 온신경이 곤두서있던, 신경질적인 국민학교 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아무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주위엔 놀꺼리가 무궁무진했고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학교 친구들도 두루두루 사귀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친했던 아이들도 있고 중학교에서 만나서 단짝이 된 아이들도 있었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도 있었고 공부도 놀이도 그저그런 나같은 친구도 있었고 이마에서 5센티도 넘게 앞머리를 세우고 등교하는 그 때 말로 날라리인 친구도 있었다. 날라리 아이들은 그 중 두어 명만 빼고는 하나같이 이뻤기 때문에 난 그 애들의 이름은 긴가민가 해도 얼굴만큼은 또렷히 기억한다.
어느 날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다 보니까 누가 내 실내화에 껌을 뱉어 놓은 게 보였다. 다행히 미리 발견해서 양말로 껌을 뭉개진 않았다. 실내화 안에 손가락을 넣어 껌을 떼어 버렸는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지금 어떤 어른이 내 신발에 껌을 뱉어 놓는 일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일테고. 아마 국민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그런 일을 당했다면 화부터 냈을 거다. 국민학교 땐 워낙 어린 마녀같았고, 고등학교 때만 해도 화나는 일이 있으면 선배하고도 싸웠으니까. 그런데 중학교 3학년, 그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누가 왜 그랬을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날라리 아이 중 하나가 껌을 씹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커피껌 냄새가 났다. 내 실내화에 붙어있던 껌에서도 커피향이 났었다.
담담하게 "네가 내 실내화에 껌 붙였니?" 라고 묻자 그애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껌냄새가 똑같아서 물어본 거다, 왜 그랬느냐, 고 묻자 그애는 웅얼웅얼 얼버무렸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으이그, 하며 눈쌀을 찌푸려주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더 특별한 일 없이 그 전처럼 그 아이와 잘 놀고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는 너무 태연하게 행동했던 나를 꽤나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때는 가능했다. 난 그게 내가 한없이 평화로운 중학생 때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적어도 성적에 대한 고민 따위는 우주 밖으로 던져놓은 것같이 놀던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이다. 그 때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성격이 팍팍해질 틈이 없었다.
도대체
2004/07/06 09:35
2004/07/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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