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나에게 뭐랄까, 치유의 장소였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 선영이랑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광화문 앞에 놀러오는 걸 좋아했었다. 어린 우리에게 이곳은 버스를 타고 와야하는 제법 먼 곳이었지만, 시청 앞에 있던 동방플라자(지금은 삼성플라자인가?) 지하 문구센터에 가면 동네 문구점에선 보기 힘든 특이하고 예쁜 팬시상품 구경하는 게 참 좋았다. 그 때 산 예쁜 집게가 아직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우리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빨며 문구류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밖엔 갑작스런 대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무작정 집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남대문을 지나 남산 가는 길을 올라가는 길,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쌕쌕거렸고, 추위에 덜덜 떨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집에 도착하려면 몇 시간이나 더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늦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선 얼마나 걱정할까 염려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 때 기분이 아주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좀 흥분한 상태였다고 할까. 아무튼 지쳐 있던 우리 눈에 갑자기 83-1 버스가 나타났다. 몇 시간 만에 버스 운행이 재개된 거였다. 따뜻한 불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온 버스를 타고, 둘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광화문 출입이 잦았다. 교보문고도 좋았고, 경복궁도 좋았고, 세종문화회관도 좋았다. 대학은 집에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는 곳이라 매일 이 앞을 지나쳤다. 나는 그게 행운이라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느라 광화문 근처에 올 일이 없을 때도, 나는 종종 광화문을 찾았다. 이곳이 '치유의 장소'라고 얘기한 것은 내가 주로 우울하거나 괴롭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어쩐지 의욕이라곤 조금도 없을 때- 찾아왔기 때문이다. 뭐, 와서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고 교보빌딩 앞에 내려 경복궁 앞을 지나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걸어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정도였다. 그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나면, 어쩐지 기운이 마음 속에서 뾰족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 때면 나는 으레 광화문을 찾았다.
오늘 문득 광화문을 예전같은 마음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현재의 직장으로 옮길 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광화문 근처에 일터를 얻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는데, 막상 매일 이곳에서 일을 하고 이곳에서 한숨을 쉬다보니 막연히 생각한 '출근 때마다의 감동' 같은 건 물 건너간 지 오래다. 후후.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던 광화문을 다시 찾고싶다- 는 마음이 강렬해져서 오늘 퇴근 후에 예전처럼 천천히 길을 걸었다. 모처럼 경복궁 앞을 지나, 여전히 남아 있는 까페에 들어왔다. 예전에 자주 들르던 까페는 아담한 2층 짜리 까페였는데 문을 닫은지 오래다. 또 한 곳은 오늘 보니 설렁탕집이 되어 있다. 오늘 온 이곳은 운치나 그럴듯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이지만,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도 드나드는 곳이라 당분간은 망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볼까 해서 까페 안을 한 바퀴 돌았지만 결국 앉은 곳은 항상 앉던 가장 구석자리다. 가방을 던져놓고 주문을 한 다음 종일 부은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좀전에 들어온 20명 단체손님-직장인들-이 한창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들어오기 전에 길 건너 샵에도 들러볼까 하다가 말았다. 옷과 장신구를 파는 작은 그 샵은 당찬 아주머니 한 분이 꾸리는 곳이다. 언뜻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은 동대문에만 나가도 여기저기서 팔고 있는 옷들을, 아주머니는 직수입품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아주머니가 어느 나라에서 수입한 것인지 끝내 밝히지 않은 채 단지 '수입품'이라 주장했던 아이보리색 니트도 그 중 하나였다. 결코 디자인 된 게 아니라 보관상의 실수인 것이 분명한 눈에 띄는 얼룩이 가슴팍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는데도, 나는 그 니트를 끝내 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무언가를 구입하는 행위도 나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셈이라. 나는 종종 거기에서 몇 번 입으면 형편없이 늘어나는 티셔츠나, 길지도 않은 4박 5일 여행 중에 끈이 똑 끊어져버린 가방 따위를 사곤 했다. 언젠가 너무 우울했던 날, 나는 그곳에서 너무 커서 엄지손가락에 끼워도 헐렁헐렁한 반지를 사기도 했다.
아, 그러니까 그 날, 사실 그 날은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날이었다. 자정 넘어까지 웹서핑을 좀더 하다가 잠이 들고, 느즈막히 일어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면 되는 일요일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 하나가 msn으로 말을 걸더니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였다. 그애는 내가 그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그애가 꺼낸 남자친구에 대한 말들은 온통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그저 믿고 있던 든든한 남자친구의 이면을 알게 된 나는 덤덤한 척 대화를 맺었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앉아있던 나는 새벽이 되자 집을 나섰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걷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서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빠져나와 남영동에 이르렀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 비옷을 사서 입고 계속 걸었다. 서울역을 지났고, 남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시청 앞과 광화문을 지나 세검정 학교까지 걸어갔다. 걷는 동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고 시청 앞은 햇빛 때문에 반짝거렸지만 나는 비옷을 입은 그대로 계속 걸었다. 그리고 학교 동아리방 소파에 쓰러져 잠을 자다 일어나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에 길 건너 저 샵에 들렀던 거다.
이런저런 장신구를 구경하던 나는 분홍색 알이 박힌 은반지를 집어 들었는데, 그 반지를 끼고 있으면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해줄께'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맞지도 않고-여전히 터무니 없이 비싼-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나오며 나는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온종일 걸은 탓에 몸은 말할 수 없이 지쳤지만...... 결국 그 날 종일 걸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한- "사랑하는가" 란 물음에 나는 "그렇다" 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분홍색 알반지를 끼고 그를 계속 만났다.
까페는 여전히 시끄럽다. 조금있다 이만 일어나야겠다.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야지. 이사를 한 이후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어쩌면 내가 더 이상 광화문을 치유의 장소로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매일 이곳에 출근해 한숨을 쉬기 때문이라기보다, 돌아가야 하는 집과 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고장난 mp3 플레이어를 빨리 고쳐야겠다. A/S 센터에 플레이어를 보내고 그애가 돌아오면, 이어폰을 꽂고 다시 이곳을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그러면 예전처럼 꿈꾸는 기분으로 이곳을 걷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광화문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야지. "안아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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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 도대체랑 갔던 데 아냐?
그림 완죤 귀엽다. ㅋㅋ
근데 헨델과 왜 그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