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험'에 해당되는 글 1건

  1. 직업 때문에 ③ 2002/09/23
3. 딴지일보 기자가 됐을 때 (2)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을 나열했는데, 쓰다보니 다른 길로 마구 새어버렸다 -_-;; 이제 처음에 인용한 서민 님의 경우처럼 직업 때문에 받는 '질문'을 써야겠다.

무슨 단체 모임에라도 나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할 때면, 내 옆에 있던 분들이 꼭 "딴지일보 기자입니다" 라고 이야길 하신다. 그럼 나는 "3월에 퇴사했습니다" 라고 토를 달지만 상대방은 이미 공격적인(?) 자세로 돌변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총수는 몇 살인가? (이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듣는다. 참고로 나는 총수님의 정확한 나이를 몰라 그냥 '30대 초반' 이라 대답한다)

② 편집장은 총수보다 나이가 많은가? (이것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많이 궁금한가 보다. 나는 편집장님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역시 '두 분이 비슷하십니다' 라고 얼버무린다. 이쯤 되면 상대방은 내가 상근직이 맞긴 맞았나란 의문을 품는다....)

③ 정말 회사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화장실 문은 유리로 되어 있는가? (이건 "예" 라고만 하면 되는 좋은 질문이다 ㅡ.ㅡ;)

④ 월급은 얼마인가? 딴지는 뭘 먹고 사나? (연봉은 대외비이며, 회사 근처에 식당이 별로 없어 서너 군데에서 시켜 먹는다고 한다 -_-)

⑤ 함주리 기자는 정말 함 주나? (간혹 받는 질문이다. 여기서 밝히는데 함주리 기자님은 비위가 매우 약한 분이다. 아무나 함 주지 않는다)

그리고 대답하기 가장 곤난한 질문......

⑥ 기자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는데 날 떨어뜨리더라. 도대체 왜 떨어뜨린 거냐?

 

간혹 듣는 질문이지만 이 경우 제일 곤란하다. 가끔 기자 채용 공고를 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시를 하는데, 내가 그들의 글을 가려 뽑은 적도 없거니와 간혹 편집장님이 "이 글 어때?" 하고 보여준 경우가 있다손쳐도 그 글들을 일일이 기억하진 못 한다. 떨어진 글이라면 더 그렇다 -.-;;

그런데 상대방은 자기가 이러이러한 이름으로 이러저러한 글을 보냈는데 떨어졌다며 나를 추궁한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유독 강한 터라 자신의 글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 그의 앞에 앉아있는 건 재미없는 글을 쓰기로 낙인 찍힌 내가 아닌가. 기자 모집에 응시를 할 사람이면 딴지의 애독자일테고,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글을 올리는 사람인지 잘 알고있을테다. 설상가상 질문을 한 사람이 현재 다른 매체의 기자라든지, 자유기고로 활동하든지 하는 글 잘 쓰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민망해진다.

'너 같은 애도 기자라고 글을 쓰는데 왜 난 안 뽑은 거지?' 라고 얘기하는 듯 한 눈빛을 보며 나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가 떨어진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쒸, 내가 뽑는 것도 아닌데......'

애써서 추리해보면 ① 재미가 없었든지 ② 글을 못 썼든지 ③ 재미도 있고 글도 잘 썼지만 딴지 기조에 맞지 않았다든지 ④ 메일을 잘못 보냈다든지.......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고작 이 정도 추리야 상대방도 못 했을 리가 없고...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싶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왜 떨어진 거죠?"
"저희는 외모만 보고 뽑기 때문입니다"

-_-

그 사람이 웃으면 다행이지만,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면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참고로 제가 수석이었습니다......."



2002/09/23 15:32 2002/09/23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