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먹는 아이'에 해당되는 글 3건

  1. (10) 2009/06/29
  2. (이야기) 그 아이 (4) 2007/12/01
  3. (이야기) 기억을 먹는 아이 (12) 2007/10/19

1.
냉방도 별로 안 하고 사는데 냉방병에 걸렸다. 태수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에!
지하철에서 코를 풀다가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집에서 홍대 앞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중간에 내렸다. 플랫폼에서 코를 풀면서 펑펑 울곤
진정된 것 같아 다시 지하철을 탔는데 눈물이 또 나와서 다시 내리고.
또 플랫폼 의자에 앉아 펑펑 울다가 다음 지하철을 탔지만
또 눈물이 나와서, 가야할 데를 안 갈 수는 없고, 남은 코스를 울면서 달렸다.
오늘은 순전히 감기 때문에 코를 풀면서 그때를 생각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2.
삽화 그린 책이 조만간 두 권 나옵니다. 둘 다 어린이책이에요.
한 권은 작업을 작년에 했는데; 출간이 늦어졌네요. (고료는 이미 다 썼다능! -_-;;)
큰 삽화들은 다른 분이 그리셨고, 저는 일부 에피소드를 그린 책이에요.

다른 한 권은 어린이 월간지 <첫>에 연재되었던 동화입니다. 한봉지라는 분이 글을 썼구요.
지난 일 년 간 그 연재동화에 삽화를 그려 왔는데 그걸 모아서 책으로 내게 됐어요.
일 년 동안 그리면서 그림체도 조금씩 변했고, 남들은 잘 몰라도 나는 아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마음 같아선 대부분을 다시 그리고 싶지만; 시간이 되질 않아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대로 싣게 됐어요.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기대가 더 커요. 언능 결과물을 보고 싶어요.
오늘 밤 표지 작업을 마치면 모든 작업이 끝납니다. 밤 새워 열심히 그릴 거예요.
이 책은 7월 중에 나온다니, 발간되면 소개할게요.

그리고 이제부턴 제 책을 쓸 거예요. 계속 벼르기만 해온 이야기책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기억을 먹는 아이>는 꼭 완성할 겁니다.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을 잘 대접(?)하고 싶어요. 작은 책속에서 살게 해 주고 싶어요.
공개적인 약속. 다짐.





2009/06/29 23:42 2009/06/29 23:42

 그 아이



 사람들은 대개, 어른이 되어 무언가 큰 일을 해내면 신문에 오릅니다.
 그게 훌륭한 일이든 못된 일이든 간에 말입니다.
 때로는 어린 나이에 어른 못지 않은 일을 해서 신문에 오르는 경우도 있지요.

 아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태어나자마자- 정확히 말하면 생후 일주일만에- 신문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아이를 주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남다를 것 없었으니까요.
 특별히 예쁜 외모도 아니었고,
 유난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공놀이나 노래, 그림 그리는 재주 따위가 신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은 단 하나,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썩 귀여움 받을 수 있는 재능은 아니었습니다.
 보육원의 사정이란 뻔한 것이어서, 오히려 아이의 식탐이 커질수록
 보모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던 것입니다.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잘 먹는다니?"
 하며 신기해하던 보모들은, 이내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많이 먹는다니!"
 하며 꿀밤을 때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네 살이 되자 남자 어른보다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여섯 살이 되자 남자 어른이 먹는 밥의 세 배는 먹게 되었습니다.
 일곱 살이 되자 이제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배불리 먹을 때까지 밥이 나오는 일이 없어졌거든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는, 자기가 무언가 먹어치울 때마다
 어른들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는 것이 슬펐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잘 먹는 것 뿐인데
 이것으론 귀여움을 받을 수 없으니 어떡하나요.

 그날도 아이는 모두 잠든 밤에, 배가 고파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부엌에 갔지만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다음 날 식사꺼리를 모두 해치우곤 하는 아이 때문에
 보모들이 음식을 감춰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허기를 달랠 생각으로 숟가락을 빨았습니다.
 숟가락이 막대사탕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차게 빨던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숟가락이 목구멍 깊이 들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손을 넣어 빼내보려 했지만, 이미 저 아래로 내려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거든요.
 쇠로 만든 숟가락을 삼켰는데, 배가 아프긴커녕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숟가락 열 두 개와 젓가락 열 두 벌,
 접시 여덟 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무엇이든 입에만 넣으면
 힘들이지 않아도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기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보모들이 법석을 떨 때
 아이는 다른 아이들 틈에 누워서 편안히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의자 스무 개, 책상 일곱 개, 벽시계 두 개,
 청소솔과 대걸레를 먹어치웠을 때쯤, 아이는 들키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
 동화책과 인형, 텔레비전과 축구공 같은 건 결코 먹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이애는 괴물이야!"

 아이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보육원에서 내쫓겼습니다.
 뒤늦게 아이를 방송국에 제보해
 돈 벌 궁리를 해낸 원장이 아이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아이는 멀리 가버린 후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유일한 재주로는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거리를 떠돌면서 어떡해서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애썼지만
 아이가 뭔가를 먹어치우면, 어른들은 칭찬 대신
 비명이나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밤, 아이는
 골목 구석에 주저앉아 술을 토해내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힐끔 돌아보곤 저리 가라 턱짓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멀리 가지 않고 남자 주위를 맴돌다가
 근처에 있는 가로등을 먹었습니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남자가 창피해할 것 같았으니까요.

 아이는 여느때처럼 잽싸게 도망갈 자세를 잡았지만
 남자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손짓했습니다.
 사실 그게 다- 그가 몹시 취해 있었기 때문이지만
 아이는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가로등이 있었는데. 네가 먹은 거 같다?"
 "……네."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네가 먹은 거 맞지?"
 "네."
 "으하하하, 굉장하구나!"

 남자는 껄껄 웃으며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가슴팍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 것 따위 괜찮았습니다.

 "또 뭘 먹을 수 있는 거냐?"

 아이는 처음 듣는 칭찬에 들떠, 근처에 있던 자전거며 쓰레기 봉투,
 어느 집의 우편함과 대문 손잡이까지 먹어치웠습니다.
 남자는 줄곧 감탄 어린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다 말했습니다.

 "자, 이제 기억을 먹어 봐! 부탁이야!"
 "어디 있는데요?"

 남자는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습니다.

 "이런! 기억이 어디 있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다니.
 내가 말해 줄게. 다 말해 줄 테니까, 다 먹어주렴.
 난 지금 이놈의 기억들 때문에 괴로워 죽겠단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들을 중얼중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 먹은 것은 물론이고요.
 동이 터올 무렵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홀가분한 표정으로 골목을 떠났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반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에 뭘 먹어보라고 하든
 결국은 기억을 먹어달라고 청하곤 하는 것이죠.

 그러니 당신이 슬프고 또 슬픈 날, 공원 의자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꼬마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면, 매몰차게 밀어내지 말고 이야기해 보세요.
 그 아이가 바로 기억을 먹는 아이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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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1 00:00 2007/12/01 00:00

기억을 먹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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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의자에 앉아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고 있던 내 옆에, 아이가 앉았습니다.
아이의 이는 일부러 쇠줄로 정성껏 간 것처럼 뾰족했습니다.
 
"난 뭐든지 씹을 수 있어요."
"그래?"

아이는 입을 벌려 이를 보여주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습니다.

"아무거나 주세요. 내가 먹어 줄게요."
"미안. 난 지금 줄 게 없는데."

이노옴, 과자를 먹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공손하거나 아양을 떨기는커녕
오히려 선심 쓴다는 듯 '먹어 준다'니,
조금 괘씸해졌습니다.

"과자는 식구들한테 사 달라고 해라."
"과자 같은 거 말구요. 아무거나요.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거, 없어요?
난 뭐든지 씹을 수 있다니까요. 내가 먹어 줄게요."

때마침 달마시안 한 마리가 촐랑거리며 지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놀려주려고 달마시안을 가리켰습니다.
"저거."

놀랍게도 아이는 '개를 어떻게 먹냐'며 우는 대신
순식간에 달마시안을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주인이 뒤따라와 이름을 부르며 찾을 땐,
이미 달마시안은 흔적도 없이 아이의 뱃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또? 뭘 먹을까요?"

천진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보니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꾸 "아무거나 달라"고 재촉하는 아이에게
내가 들고 나온 책이며 의자, 은행나무 따위를 손가락으로 대충 가리켰고
아이는 그것들을 조용하고 빠르게, 그리고 아주 쉽게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눈 앞의 일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나는 무서워서 다리를 덜덜 떠는 바람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순간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꿈이 아니고서야 모든 것을 쉽게 먹어치우는 아이 따위를 만날 리 없었습니다.

꿈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용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원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의자는 아이가 먹어버렸기 때문에-
아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뭐든지?"
"응. 네."
"저기 나무들 위로 건물 보여? 저런 것도 먹을 수 있어?"
"먹어 줄까요?"
"오, 안 돼."
"없어지길 바라는 걸 말해 봐요. 먹어 줄게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말 없이 한참이나 생각에 빠진 나를 얌전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기억 같은 것도 먹을 수 있니?"
"그럼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게…… 순 기억들이야."
"그런 사람 많아요. 많이 먹어 봤어요."
"하지만 기억을 어떻게 먹지?"

눈 앞에서 달마시안, 책, 나무 따위를 모두 씹어 삼키는 것을 보고서도
막상 기억을 먹어줄 수 있다니 버럭 화가 났습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괴상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기억을 어떻게 먹냐'는 나의 추궁을
단순한 질문으로 이해한 모양이었습니다.

"얘기해 줘요. 그럼 먹을 수 있어요."
"내가 너한테 얘기만 하면……?"
"먹어줄게요."

나는 시험 삼아 사소한 기억 하나를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 문구점에서 볼펜을 훔치다 걸려 망신을 당한 일이었는데
-이것은 후에 그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는 정말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 기억을 보란듯이 꼭꼭 씹어 삼켰고,
나는 그 순간부터 내가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맙소사."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기억을 먹어 주다니.

"조금만 기다려 줘. 잊고 싶은 기억이 많아."

아이는 좀전처럼 얌전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나는 서둘러서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기억들 투성이었지만
그쯤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어차피 이 아이가 모두 꼭꼭 씹어 먹어 줄 테니까요.

아이는 기다리는 것이 조금 지루해졌는지
아이답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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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을 먹을 수 있어요.
당신의 기억도 내가 삼켜 줄게요.
다시는 꺼낼 수 없게 먹어 줄게요,
내가.

(2007.10.18)


2007/10/19 02:42 2007/10/19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