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할 때, 미술학원 수업이 10시에 끝나면 근처 라이브 까페에 갔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맥주 한 병을 마시며 주인 아저씨의 통기타 연주와 노래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게 그 즈음 단 하나의 낙이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수생이 아니라 스물 두살인가 세살인 전문대생 미술학원 강사라고 아저씨를 속였고, 아저씨가 그 말을 믿었는지 아닌진 알 수 없지만, 나는 아저씨와 친해져서 이런저런 잡담을 재밌게 나누고 돌아오곤 했다. 나중엔 편하게 생각했는지 바람핀 얘기까지 은근슬쩍 늘어놓던 그 아저씨는, 홍성민의 '기억날 그 날이 와도' 란 노래를 자주 불렀다. 그 땐 원곡을 들어보지 못하고 순전히 아저씨의 목소리로만 이 곡을 들으며 지냈는데, 노래가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니었다.
그 까페가 문을 열지 않는 날이 가끔 있었다. 그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까페에 갔는데, 그곳은 넓은 홀의 통기타 연주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끼리 한 테이블에 달라붙어 앉아야 할만큼 비좁은 공간에서 전속그룹이 Radiohead의 'Creep' 같은 곡을 공연하는 곳이었다. 나중엔 그곳에 재미가 들려 아저씨의 까페가 문을 연 날에도 종종 찾아가곤 했는데, 딴엔 비밀이라고 드나들던 중에 두 집의 주인 아저씨끼리 서로 친한 사이란 사실을 알고 머쓱해진 기억도 난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겨웠고 돼먹지 않은 연애에 말도 안 되는 입시 준비를 하며 열병을 심하게 앓은 재수 생활을 끝낸 어느 날, 그 땐 이미 두 까페 모두 문을 닫은 뒤였는데, 그 주변을 지나가다 낯익은 이 노래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아저씨가 새로 까페를 열었구나!' 란 생각에 반가워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있는 것은 레코드샵 뿐. 그러니까 난 그 때 레코드샵에서 틀어놓은 홍성민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이고, 아저씨의 목소리는 홍성민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 있었던 거다. 가짜 대학생 행세하던 그 때는 몰랐지. 아저씨가 그 노래를 왜 그리 매일같이 불렀는지, 그리고 그 노랠 부르고 난 뒤엔 왜 그리 뿌듯한 표정이었는지.
넓은 홀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 없기 일쑤였던 까페를 가졌던 홍성민의 목소리와 닮은 아저씨와, 추석날도 몇 평 안 되는 그 공간에 모여 Creep을 부르고 손님들과 과일을 돌려 먹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습니까. 저는 당신들을 가끔 떠올리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만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스무 살의 저를 사랑하지만, 그 때를 너무 자세히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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