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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섭다 (16) 2009/02/07

1. 흉흉

그저께 저녁.
귀가하면서 동네 단골 마트에 들렀다.
무슨 소스니 칫솔이니 건전지니... 이것저것 집어드니 3만원을 가뿐히 넘겼다. 3만원 이상은 무료 배달. 짐도 무거운데 우리집은 높은 언덕. 당연히 배달이다. 집 주소를 적어놓고 마트를 나서는데 마트 아저씨가 묻는다.  "지금 바로 배달가면 댁에 누가 계신가요?" "아뇨. 일단 제가 집에 가야 되는데. 천천히 오셔도 돼요." "그럼 그냥 지금 저랑 같이 가시죠." 

우왕~ 정말? 그래도 되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는 거? 오토바이 무서운데. 그래도 언덕길 올라가는 수고가 주는 거? 생각하며 마트를 나서니

우왕~ 봉고차? 봉고차로도 배달하는구나. 아저씨가 짐칸 문을 열고 내가 산 물건들을 집어 넣고 있네. 안에 다른 짐들도 가득하구나. 뭐 잠깐인데 저 사이에 쪼그려 앉아 가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지. 오히려 재밌을 수도 있겠는데 흐흐, 생각하며 짐칸에 들어서고 있자니

아저씨가 나를 잡으며 조수석을 가리키셨다. -_- 그랬쿤요. 조수석이 있었쿤요. 우왕~ 나 스스로 날 짐짝 취급했어. -_-

아무튼 그렇게 배달차 얻어타고 집에 가는 길.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선 별별 생각이 다 오갔다. 만약 이 아저씨가 돌변해서 차를 다른 데로 몰아 흉한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내가 생각없이 차를 얻어타서 자초한 일이라 할까.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 만에 하나 일이 생긴대도 배달 기록이 남아 있고…… 뭐 이런 생각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미안할 정도로 아저씨는 친절하게 이 얘기 저 얘기 건네며 나를 집앞에 떨궈 주셨당. 길 건너 경쟁 마트는 배달 서비스가 이 정도로 좋지 않다는 말씀과 함께.ㅋㅋ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중학생이던 90년대 초반엔 한창 '인신매매'란 단어를 들었다. 실제로 인신매매가 큰 문제이던 때였다. 부녀자들을 납치해서 도망 못치게 홀딱 벗기고 감금한 다음 하루종일 콩만 까게도 한다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 돌았는데, 난 스물 한 살 때까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언젠가 버스 안에서 친구랑 얘기하다가 내가 "그때 그랬어. 하루종일 콩만 까게 한댔거든. 겨우 그런 짓을 시키려고 납치를 하다니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라고 하자 친구가 난처한 표정으로 나지막히 말했다.  "콩 깐다는 건 섹스한단 뜻이야." "엥?" "은어야." "……헐."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아무튼;

봉고차가 천천히 따라오는 것 같으면 잽싸게 피해야 된다고 했다. 남자들이 튀어나와 끌고갈 수 있으니까. 버스에서 모르는 할머니가 억지를 부리며 싸움을 걸어도 그 할머니를 따라서 내리면 안 된다고 했다. 내리는 순간 할머니랑 짜고 버스를 따라오던 놈들이 덮칠 수 있으니까. 이건 좀더 나중에 들은 얘기였던 것 같은데, 농협 마크가 붙은 차도 믿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가짜 마크일 수 있으니까. 여하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들 했다. 방심했다간 인신매매의 덫에 걸릴 수 있다고. 근데, 인신매매도 충격이었고 무서운 얘기였지만

이제는 이 뭐 방심하면 죽는 건가. 요즘 강호순 때문에 떠들썩하지만, 그거 말고도 실종 사건 살인 사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선물 받아놓고 진열만 해놓았던 전기충격기를 다시 한 번 꺼내본다. 그리고 늦은 밤, 고요한 산책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천천히 거니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 아 씨 내가 왜.



2. 공권력
얼마 전이었다. 친구랑 걸어가다가 전경 버스를 봤다. 무심코 버스를 지나치던 나는 흠칫했다. 버스 옆구리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이 정확하진 않은데 "국민이 원하는(? 계신?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내저으며 터미네이터처럼 힘차게 달려오는 경찰들의 정면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그걸 본 순간 정말 흠칫 놀라서 주춤했다.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말이 왤케 무섭게 보이던지.

공권력은 든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새는 되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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