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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춘다는 것 2001/01/13
울 회사엔 티파니란 덩치 큰 개가 있다. 누군가가 회사에 선물(?)한 아이라는데, 골든 리트리버란 종이다. 맹인 안내견 역할도 하고 오리 사냥개 출신이라고도 한다. 암튼 아직 10개월밖에 안 됐는데 덩치는 무지 크다. 앞으로도 더 큰다 한다.

티파니는 아기였을 때 회사로 왔다고 한다. 그때 근무하시던 어느 분이 훈련을 시킨 까닭에 이애는 누군가에게 먹거리를 달라고 할 땐 덤벼들거나 하지 않고 사람 앞에 똑바로 앉아 올려다본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지 않고 뒷다리의 힘으로만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보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계속 그러고 있어도 반응이 없으면 나중엔 힘들어서 철푸덕 주저앉는다. 자세를 유지하기 힘든 모양이다.

티파니가 그런 자세를 취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자세는 도무지 맘에 안 들기 때문이다. 난 티파니가 적어도 내게 먹을 걸 달라고 할 땐 그냥 꼬리를 치며 앵겨들면 좋겠다. 다리를 부들거리며 힘든 자세를 하고있는 건 못봐주겠다. "언니한텐 안 그래도 돼"라고 계속 말해보지만 그런 말을 못알아들으니 별 수가 있나. 한 번은 티파니에게 "넌 사무실의 가족이고 사람들은 너를 기를 의무가 있어. 너한테 맛있는 걸 주는 건 당연한 의무일 뿐이지 네가 이렇게 애원하지 않아도 되는 거란 말야. 그러니까 앞으론 이렇게 하지마. 당당히 먹을 걸 달라고 요구해."라고 주절주절 떠들어봤지만 그것도 뭐 사실 헛짓이나 다름없었지 뭐.

어쨌든, 오늘 사무실에 오니 티파니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다. 얘는 보통 밤에 여자 숙소에서 자는데 아침에 청소가 끝날 때까진 그 안에 가둬두곤 한다. 또 갇혀있어서 낑낑거리나부다 하고 숙소로 달려가 문을 짠 열었는데 그 안에 없다. 어디갔지? 나와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보니 주방에 갇혀있었다. 다른 직원분 왈, 개 사료를 하도 안 먹어 오늘 하루는 아무 것도 안 주고 그 안에 가둬둘 거란다. 배가 고파야 사료를 먹을 거란 이야기였다.

티파니는 사료를 먹지 않는다. 어쩌다 손으로 집어주면 한 두 알씩 받아먹을 뿐 그걸 주식으로 하진 않는다. 얘는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을 훨씬 잘 먹는다. '매워서 못먹겠지'하던 반찬이나 불어터진 짠 라면도 맛있게 먹어버리는 것을 보며 이게 사람 식성인지 개 식성인지 모르겠다 싶은 때가 많았다. 아무튼 티파니는 사료보다 사람이 먹는 밥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틈틈이 주는 소세지 빵 개껌 등등을 씹고 다니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애 식성에 사람이 먹는 밥이 맞는다면 직원들이 먹고 남은 밥이랑 반찬을 주식으로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안 먹으려 하는 사료를 주지?

불그스름한 색깔의 땡글땡글한 사료는 차갑고 딱딱하다. 냄새를 맡아봐도 개껌 냄새보다 못 하다. 나같아도 먹을 맘이 안 들 것 같았다. 사람들이 먹는 조미료 맛에 이미 맘을 빼앗긴 티파니가 이런 밍밍하고 딱딱한 사료를 먹기 좋아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어쨌든 오늘은 사료 이외의 것은 주면 안 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티파니는 사료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넘이 배가 고프면서도 사료는 본체도 안 한다. 그리곤 돌아다니며 종잇장 같은 거나 주워다가 씹고 있다. 내 앞으로 다가와선 예의 그 정자세로 부들부들 앉아 먹을 게 좀 없나 애원을 한다. 환장하겠다.

안되겠다 싶어 사료를 뜨거운 물에 불려 따땃 말랑하게 한 다음 냉장고에 있는 보크라이스를 조금 뿌려 주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굳이 식성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정 사료만을 먹여야겠다면 개가 먹을만하게 해서 주면서 조금씩 길들이면 될텐데. 예전에 달걀 후라이에 사료를 잔뜩 박아 주었을 때도 잘 먹더라. 물론 달걀만 먹고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게 된 것이겠지만, 아무튼, 거기에 비해 오늘은 사료만을 준 건데도 입맛에 맞춰주니까 그럭저럭 잘 먹은 것 아닌가.

어렸을 적 쓴 약이 먹기 싫어 땡깡을 부리면 울 어무인 약에 설탕을 섞어 주든가 약을 먹고 바로 먹을 단 무엇을 준비해놨다가 얼른 먹여주시곤 했다. 티파니의 사료를 뜨건 물에 불리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만약에 어무이가 "넌 아프니까 이 약을 먹어야 돼. 다 먹을 때까지 방안에서 못나와"라며 날 가둬놨으면 난 어무일 원망했든지 약봉지를 장판 밑에 깔아버리고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 같다.

파의 경우도 그랬다. 초딩때까지 파 먹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떡볶이, 국 등등을 먹다보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집히는 파를 먹게 됐는데 음식하고 같이 익힌 파는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그러다보니 나중엔 아무 생각없이 파를 집어먹게 된 기억이 있다. 그때 어무이가 생파무침을 앞에 놓고 "다 먹어라" 하셨음 틀림없이 '난 다시는 파 안 먹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료 하나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해 궁시렁거린 것 같은데, 어쨌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람과 개는 다른 것 아니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의 차이가 원인인 듯 하다. 나는 "앉아, 일어서!"를 시키며 호령하는 티파니의 주인보다 같이 살고 같이 노는 친구가 되고싶다. 그래서 난 티파니가 내 팔을 물고서 으르렁거리고 버릇없이 뛰어올라 나를 덮쳐도 내버려둔다. 그 편이 훨씬 좋고 마음이 편하다.




2001/01/13 07:29 2001/01/1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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