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태수가 뒷다리를 자꾸 핥는 게 이상해서 살펴보았더니, 작은 부스럼이 나 있었다.
그렇잖아도 귀에서 냄새가 꽤 나서 귓병을 의심하던 참이라, 냉큼 산책줄을 챙겼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온 이 겨울, 산책을 자주 못 나가서 답답해하던 태수는
내가 나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낌새를 눈치채고 헥헥거리며 방방 뛰었다.
그리고 동물병원까지 진짜 한 걸음에 슝슝 달려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진료를 받는 동안 태수는 아주 지랄발광이었다.
이놈은 눈이나 귀, 입안 같은 델 만지는 걸 지독하게 싫어한다.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이 귓털을 뽑으려다가 중도에 포기한 바 있고;
지금 다니는 병원 원장 역시 태수 눈에 안약 넣는 걸 포기했었거든;
가루약을 물에 타서 주사기로 먹이는 거? 거대한 내 남동생이 붙들고 혼내고 으름장 놓아도 못 먹인다. 정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다행히 이건 다른 요령이 생기긴 했다. 고되긴 마찬가지이나 가능하긴 하달까;)
물론 양치는 꿈도 못 꾼다. 이빨에 바르기만 해도 되는 애견 전용 치약을 진작 구비했으나 바르는 데 실패. 일반 맛(?)이라서 그런가? 하며 사과맛을 사 보았으나 마찬가지.
그런 개태수다. 의사가 뒷다리를 살펴보고 눈을 살펴보고 귓속을 살펴보는 동안 몸부림치며 발악했고
귀에 세정제를 넣고 그걸 흡입기로 빨아들이고 연고를 바르고 주사를 놓는 동안엔
자기를 죽이는 줄 알았는지; 정말 난리가 났었다...... 태수를 붙들고 있느라 애먹은 것은 물론이고.
치료가 끝난 후에 한숨을 돌리며 의사에게 물었다.
"귓병은 왜 생긴 건가요?"
"평소에 관리를 안 해 줘서요."
아 놔...... 귀 세정제는 진작에 사 놨지 말입니다. 그런데 태수님이 허락하셔야 그걸 귀에 넣지 말입니다.
냄새가 싫어서 그런가 싶어 다른 걸 사서 시도해봤지만, 역시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여하간 일주일치 약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일주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이고
매일 세정제+연고를 귀에 넣으란 특명을 받고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태수는 어찌나 발광을 했는지 기운이 다 빠져서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ㅜㅜ
5.3kg짜리 개태수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태수는 내게 느낀 배신감이 상당했는지 고개를 팩 돌리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놈아. 얼마나 난리를 쳤으면 걷지도 못하냐."
……
"누나한테 배신당했어? 산책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누나가 병원 데리고 갔어?"
……
"의사 아저씨가 괴롭혔어? 태수 아픈 거 나으라고 그런 거야."
……
"금방 지나갈 일인데 왜 그렇게 난리를 치냐 이놈아. 난리 치나 안 치나 어차피 해야 하는 건데 이놈아."
……
"하기야 사람들도 그런 때가 있긴 허다."
……
"아이고 팔 아프다. 네가 누나를 벌 주는구나 이놈아."
……
집에 와서 태수도 뻗고 나도 뻗어 나란히 누워 자 버렸고
태수는 오늘까지도 나에게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나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어찌어찌 약을 먹이고 태수 귀에 세정제와 약을 넣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 6일 남았다. 
1. 태수는 이틀을 꼬박 굶으며 토하기만 하더니, 3일째 되는 날(어제) 물도 마시고 밥도 처묵처묵 먹기 시작했다. 아픈 동안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병원엔 가지 않았다. 일단 어린 강아지가 아니고, 예방접종과 구충을 잘 했고, 그래서 전염병이나 기생충일 가능성이 거의 없었고, 구토 외엔 발열이나 설사가 없었고, 심한 탈수 증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로 밥 먹이지 않고 지켜 보았다. 작년 이맘때 태수가 구토를 꽥꽥 했을 땐 너무 놀라 울면서 병원부터 달려갔었는데. 이번에도 구토가 진정되는가 싶더니 한밤에 연이어 구토를 하길래 걱정되어 24시간 동물병원에 전화를 한 번 하긴 했다만은, 거기선 되도록 병원에 데려와 전염병 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라고. 하지만 태수는 다음 날 무사 회복. 개생키 장하다. 며칠 더 지켜봐야겠지만 잘 넘어갈 것 같다.
...말은 이렇게 의연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태수를 예의 주시하느라 잠을 잘 못자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면 쉽게 얼이 빠지는 편이기 때문에, 행여 태수 증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병원에 달려갈 때를 대비해 구토 시각, 응아 시각, 변 상태 등을 꼼꼼하게 적어놓고 있었다. 버벅거리느라 태수 상태를 잘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땐 메모를 내밀어야 할테니... 하지만 그럴 일 없게 해 준 개생키 장하다. ㅎㅎ
2. 다음주 초까지 크고 작은 마감이 4개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내 노동력이 창출하는 재화는 다 누가 가져가는 걸까.
3. 드디어 나도 인생을 좀 길게 보고 살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여하간 이루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여러모로 고달플 것 같다만은. 하지만 날로 얻어지는 건 없고,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는 게 진리.
......물론 나는 계획의 황제다! 그동안 세운 계획만 늘어놔도 만리장성이다. 그것들을 다 지키지 못해서 그렇지. 이것저것 조금씩 시작하다가 접은 게 이만큼이다. 하지만 왜 그러고 사냐고 핀잔을 줘도 개의치 않을래. 잘할 수 있는 것,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중인 걸.
4. 미술을 전공한 서지는 만약 자기 아이가 미술을 하겠다고 하면 환영할 거랬다. 뿐만 아니라 되도록 미술을 하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도 내 아이가 그런다면 나쁘지 않게 여길 것 같다고 끄덕였지만 집에 와서 생각할수록 과연 그럴까 싶다. 미술이든 뭐든, 모든 창작엔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따르던가. 묵묵히 자기 갈 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라 행여 누가 먼저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이미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신경써야 하고. 작업한 걸 자기만 보고 듣고 즐거워할 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평도 신경써야 하고. 머릿속에 있는 게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크냐...... 라고 생각하다 보니깐, 일단 뭐 아이나 생기고 나서 이런 고민을. 그보다 결혼은 할 거냐. -_-;;
일요일.
태수와 동네 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반색하며 뛰어왔다.
"와, 개다."
"응. (태수를 보며) 누나다, 누나."
"(태수를 쓰다듬으며) 저, 개 좋아해요. 근데 개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건 귀찮아 해요.
그래서 키우긴 싫고요, 같이 있는 건 좋아해요."
"그래. 언니도 항상 똥을 치우지. (손에 든 봉지를 내밀며) 이것도 똥이야. 좀 아까 치운 거야."
"얘 겁 많아요? 안 짖네요?"
"응. 겁쟁이야."
"꼬리도 흔들어요? 지금은 안 흔드는데?"
"원래 반가우면 흔드는데, 지금은 누나를 처음 봐서 어색한가 봐."
"(계속 태수를 쓰다듬고 만지며) 귀엽다. 몇 살이에요?"
"한 살도 안 됐어."
"(갸우뚱) 영 살이에요?"
"응. 올해가 이천 팔년이지? 얘는 이천 칠년, 작년 겨울에 태어났어.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됐지."
"그래도 얘가 더 크면 새끼도 낳겠죠?"
"얘는 남자야."
"그럼 아빠만 되는 건가? 새끼는 못 낳고?"
"응, 그치."
"(아쉬워 하며) 새끼도 낳으면 좋을텐데."
"그래도 얘가 더 크면 멋있겠다, 그죠? (팔을 크게 벌리며) 나중에 한 이만해져요?"
"아니. 얘는 그렇겐 안 커. 더 작아. (팔을 작게 벌리고) 한 이만큼?"
"그래도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더 크겠죠."
"ㅎㅎ 그래."
"(태수에게 손을 내밀며) 손. 손. 얜 손 달라고 해도 안 줘요?"
"아직 안 가르쳤어."
"그래서 못해요? 지금 가르치면 안되나?"
"응. 머리도 좀 나빠. ㅎㅎ"
"더 크면 하겠네요.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하겠죠."
"ㅎㅎ 그래."
"(앞발을 가리키며) 이건 손이고 (뒷발을 가리키며) 저건 발이에요?"
"사실 개는 전부 발이야. 발이 네 개라 네 발 동물이라고 해.
앞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손이라고 하는 거지, 이건 전부 발이야."
"(태수 이름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이 동네 사네요?"
"응. 언니는 저기 위에 살아."
"아 저쪽이요? 나도 가봤어요. 저기 슈퍼에 맨날 간 적도 있어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었어요.
난 여기 앞에 살아요. 저기 살면 학교가 멀겠다. 난 여기 살아도 먼데.
제가요, 여덟 살이라 학교 다녀요."
"아, 그럼 일학년인가?"
"네. 제가 나이를 여덟 살이나 먹었거든요. 그래가지고요."
"ㅎㅎ 그래?"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이 이천 팔년이잖아요. 그럼 이천 십삼년에 얘는 몇 살이에요?"
"다섯 살쯤?"
"나는요?"
"지금 여덟 살이니까, 열 세 살?"
"나두요? 나이를 같이 먹네요?"
"그치. 다 똑같이 먹지. 어른들도 같이 먹지."
"그럼 이천 백년에 얜 몇 살이에요?"
"그땐 벌써 죽었겠네. (아차 싶어서) 개는 사람보다 오래 못 살아.
이십년 쯤 살면 되게 오래 산 거고, 보통은 십년 넘게 살다 가."
"그렇구나. 난 이천 백년까지 살 건데. 근데 전 할머니 되는 건 싫어요. 안 되면 좋겠어요.
왜냐면요, 할머니 되면 엄마랑 떨어져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 싫으니깐."
"그래?"
"네. 그래도 나는 이천 백년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깐. 그때까지 많이 남아서 좋아요."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많이 남았네.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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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먹이는 태수로군요.
예민하기가 마치 고양이님 같아요.ㅎ
원래 시츄들이 다 둔하다던데, 예술가의 강아지라서 그런건가요......
빨리 낫기를 바라요.
읽으면서 갑자기 노홍철이 생각나는 이유는...
돈까스 사준대놓고 병원을 데려간 엄마를 이십년째 원망하던 그의 눈빛이 떠오르는 이유는....뭘까요.ㅎ
ㅋㅋㅋ노홍철 에피소드 재밌네요. 이십년째 원망 ㅎㅎㅎㅎㅎ
그날 오랜만의 외출이라고 태수가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어요.
태수는 가리는 게 꽤 있는 깍쟁이랍니다. 자존심도 세구요. 근데 또 저희 가족 보기엔 그런 모습이 귀엽죠~ 흐흐
이런이런.... 태수 돌보는게 쉽지 않네. 나도 우리 단심 나난 뒷수발이 OTL. 특히 발톱깎는 것은 정말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해요. ㅋㅋㅋ 그리고 우리 단심이는 내게 마음 상하면 이불에 테러까지 -_-;; 지금은 많이 고쳐져서 다행이지만 처음엔 진짜 돌아버릴 뻔 했음.
'태수 돌보는 게 쉽지 않네'라는 문장과, '본격_나난_맥주마시는_사진.jpg'가 무척 묘하게 어울린다. ㅋㅋㅋㅋㅋㅋ
나난도 보고 시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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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
도대체님, 동네 정육점에 감자탕 할거라 하고 돼지등뼈 작게 잘라 달라 하셔서 사시고, 먹이면 양치질 필요없고 치석도 상당히 사라져요.
생식 먹이는 분들이 스케일링이나 양치 대신 쓰는 방법이랍니다.
다만 정말 정말 중요한 건 먹다가 꿀꺽 삼키지 않게 주의하는 것입니다. 걸려서 큰일 날 뻔한 애들 많거든요.
꼭 사람이 한 손에 쥐고 먹이시거나, 작아져서 삼킬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바로 버리셔야 합니다.
또 주의할 점은 생뼈여야지 삶은뼈는 안된다는 것. 핏물이 싫으시면 식초물에 조금 담갔다가 핏물빼서 먹이세요^^
앗 고맙습니다. 이눔이 치석제거껌도 별로 안 좋아해서 이빨 관리를 어째야 하나 싶었어요.
늘 도움 주시는 수연님!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요! 'ㅅ^
치석제거 개껌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일리톨 함유된 개용품은 절대 먹이지 마세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자일리톨은 개에게 독인데도 개용품에 자일리톨 함유된 게 엄청 많아요^^
개껌은 장 폐색의 위험이 있고 작아서 잘 걸려서 저도 개껌 걸려 수술한 후 개껌 안 먹여요, 치석 제거 효과도 못 봤구요^^;
개껌을 잘 안 먹는다면 등뼈도 약간 건드려가면서 본능??을 일깨워서 좀 공격적으로 먹게 해 주시는 게 좋겠어요 ㅎㅎ
뼈 먹이는 경우 영양소 불균형 지적하시는 수의사가 있는데 살점 붙은 뼈 주면 전혀 상관없구요, 응가가 부석하거나 색깔이 확 달라지면 좀 주의해서 급여 조절하시고, 치석 쌓일만 하면 가끔 주세요.
처음 한 번으론 효과 안 보일 수 있지만 좀 물고 뜯고 하다보면 확연히 많이 제거되요(물론 간혹 실패하는 케이스도 있어요^^;)
노견의 경우 뼈 먹다 이 부러진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부러질만큼 약한 이가 뼈를 씹으며 절로 뽑힌다고 하니까, 이나 잇몸이 약할 땐 주의해서 주시고 평소 관리도 중요하답니다.
너무 오래된 등뼈는 버리시고요^^
태수도 건강한 이빨 가지고 대체님도 얼른 건강만점 강인해지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