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쌈지/음악'에 해당되는 글 31건
- Happy Sad - Pizzicato Five (6) 2009/11/24
- 그만 그 말 그만 - 오소영 (2) 2009/10/14
- Call me - 허경영 (4) 2009/09/07
- The Tom and Jerry Show - Hiromi Uehara 2009/09/07
- 특별한 사람 - My Aunt Mary (5) 2008/12/15
- Fuck me pumps - Amy Winehouse (4) 2008/10/12
- Remind Me - Royksopp 2008/10/06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8) 2008/10/03
- Don't It Make My Brown Eyes Blue - Crystal Gayle (8) 2008/07/24
- Coffeeshop of rainy day - 나비(nabi) (2) 2008/06/18
- I'd rather dance with you - Kings of Convenience (7) 2008/05/29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4) 2008/02/15
- 시조창, 황진이 그리고 상사몽 (2) 2007/12/06
- 넌 아름다워 - 김창기 (2) 2007/07/21
- 하얀 밤 - 산울림 (6) 2007/05/01
오소영 2집이 나왔다!
+
아래는 1집 <기억상실>
가수 데뷔한다는 기사에 달려 있던 어떤 네티즌의 댓글이 기억에 남아 옮겨 본다.
"그냥 가수나 하시죠. 노래는 좀 웃기던데."
아이고 좋다~
신나게 하자. 신나게.
텅 빈 듯 외로운 밤에는
이유도 없이 길을 걷네.
누군가 나를 반겨줄 사람 없어도.
알고 싶지 않았었던
세상이란 무대 뒤.
어느 샌가 사람들은 변해만 가고…….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부끄럽지 않기를.
좀 더 거짓 없길, 더 강해지길.
미친 세상에 눈멀지 않게.
잠에서 깬 아이처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서 걸어가는 길,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있지도 않은 사랑을
바보처럼 노래하긴 싫어.
내 마음을 노래할 때
이럴 때에 난 행복해.
<특별한 사람>, My Aunt Mary 앨범 'DRIFT' 중에서.
Remind Me - Royksopp
재수할 때였다. 학원 종합반에서 한동안 내 옆에 앉았던 여자아이는 외모도 성격도 참하고 단아한 아이였다. 그때 난 그 비싼 종합반을 등록한 주제에 수업 시간엔 주로 공상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했다. 그리고 쓰는 시를 족족 그 아이에게 읽어봐달라며 내밀곤 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손바닥만한 노란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이게 뭐야? 시?"
"노래."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날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읽고 있는데 마음이 막 아팠다.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좋지?"
"응."
멜로디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찾아듣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노랫말에 어떤 멜로디가 붙었을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걸 노래로 듣게 되면 무척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노래는 내게 멜로디 없는 노랫말이었다. 그냥, 시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날 나는 결국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되었다. 어떤 멜로디가 붙었든 분명 실망할 거라 생각해온 것과 달리, 그때부터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래 동영상은 이 곡을 노래한 김광석씨가 자살하기 7시간 전에 공연한 것이란다. 이렇게 노래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도 그렇게 문득 세상을 뜬 거였구나. 자신에겐 길고 긴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남은 이들에겐 갑자기, 문득, 홀연히, 그들이 떠나는 것. 어제까지 노래하던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이, 웃으며 얘기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하고, 그럴 리 없다고 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부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길 바란다.
http://youtu.be/_C3JFm911hE
- 그리고, 최진실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이 노래 참 좋아한다. 동영상은 1977년 무대라고.
저 찰랑이는 긴 머릿결을 보라! 노래하는 Crystal Gayle이란 아줌마는 미스 미시시피 출신인데
예전에 홈페이지에 가면 간단한 html로 만든 홈에 되도록 많은 자료(주로 자기 사진)를 채워 넣으려 노력한 것도 재밌었고. '미인대회 출신답다'는 말이 뭔지 팍 와닿기도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몇 년만에 다시 가보니 그새 좀 현대적(?)으로 리뉴얼해서 예전의 묘한 감칠맛은 떨어지지만, 이젠 또 뭐 현대적으로 재밌네.
젊은 날 그 모습처럼 여전히 긴 머릴 늘어뜨리고 아직도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다. 긴 머리를 여성성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라 생각하여 절대 짧게 자를 일은 없을 거 같어.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crystalgayle.com/ . 자기 눈을 그린 가방도 판다.

이런 거. 아줌마 좀 짱.
나비(nabi)- Coffeeshop of rainy day
'ㅅ^
1) 연초에 '나비(navi)'란 이름으로 다른 여가수가 나왔던 모양인데 그녀와는 다른 사람.
2) 나비씨의 홈페이지는 http://pakeziny.cafe24.com. 여기 가면 그녀의 다른 노래들도 들을 수 있슈.
아직 정규앨범이 나오지 않았는데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내 통화연결음이다.
"I'd rather dance with you than talk with you"
당신과 얘기하기보단 함께 춤추고 싶어요.
다들 무심히 지나치는데
어제 처음으로 동아리 후배가 '컬러링 진짜 좋다'며 깔깔 웃었다.

*
영화 도입부의 배경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일. 인생에서 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보다 적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개막식 안 보고 어디 가니” 란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슬람 성원 앞뜰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서울 한남동에 살았던 나는 그렇게 종종 인근 이태원에 자리한 이슬람 성원에 놀러 가곤 했다. 종교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때였지만, 이슬람 성원의 분위기는 인근 교회 놀이터와는 오묘하게 달랐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외감보다는 놀고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슬금슬금 고무줄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 외치며 키득거리곤 했다. 검은 피부의 이슬람 신도들은 그곳이 그들에게 무척 성스러운 곳이었을 텐데도 까부는 우리 옆을 말없이 지나치곤 했다. 나는 어쩐지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태원과 한남동엔 온갖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척 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거리에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끔 이런 대화를 하셨다.
“공사 중인 옆집엔 미국인들이 들어온다네. 그런데 지금 달아 놓은 대문 말이야. 그게 한 짝에 삼백만 원 짜리라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끼어들었다.
“왜 그렇게 비싼데요?”
“주석으로 만든 대문이거든. 그게 비싼 재료라 그렇지. 저 사람들은 돈이 많아. 하지만 집은 저 사람들 것이 아니야. 세를 들어 살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집을 안 사요?”
“외국인은 우리나라 땅을 살 수가 없거든. 법이 그래.”
부모님과 대화하며 참 이상한 법이라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삼백만 원 짜리 대문을 달 수 있는 이들 수십 명이 모이면 우리 나라를 통째로 사 버릴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짐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밤사이 누가 대문을 훔쳐 갔다고 법석을 떠는 미국인 가족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담벼락에 단 대문의 가격 차이만큼 거리가 느껴졌던 미국인들. 뒷집에 살던 내 또래 백인 아이들은 가든 파티할 때마다 왁자지껄 떠들었고, 고기 냄새와 함께 우리 집 담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네의 또 다른 백인 아이들은 골목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듣는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욕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그 아이들이 괘씸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면, 지나가던 모르는 아이들까지 말리곤 했다.
“쟤네들 잘못 건드리면 미군들이 총 들고 달려온대.”
이런 말을 들으면 별 수 없이 분을 삭이며 돌아서야 했다. 너무 어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나는 주한미군 부대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골목대장을 도맡던 '선민'이란 남자아이의 지휘 아래 꼬맹이 네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일제히 수풀을 헤치며 포복자세로 기어가던 우리는 “여기부턴 미군 부대야. 걸리면 모두 총에 맞으니까 조심해”라는 선민이의 말에 얼마나 숨을 죽였던지. 미군의 눈에 띄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기어다녔던 그때는, 내가 기억하는 한 죽는 것이 최초로 두려웠던 순간이다.
학교 근처에서 '뽑기'와 쥐포를 팔며 아이들에게 트램플린(넓은 천 가장자리에 용수철을 달아 고정하여 뛰어노는 놀이기구. 일명 ‘덤블링’, ‘방방’)을 태워주던 아줌마는, 줄 선 아이들이 많을 때는 한 사람이 십 분 이상 못 타게 했지만 백인 아이들이 삼십 분을 타는 것은 내버려 두셨다. 항의하면 아줌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네 말리면… 말도 마라. 저번엔 떼로 몰려와서 두들기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거들었다.
“그래. 그러다 미군들이 오면 어떡해.”
그러면서 매년 할로윈데이가 오면, 아이들은 외국인 아파트를 돌며 사탕을 받아왔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스카치캔디나 자두맛사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희한하고 맛있는 사탕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눠 주는 그 사탕을 한두 개씩 받아먹긴 하면서도, 내 손으로 직접 사탕을 달라고 손 내미는 짓은 죽어도 안 해, 다짐했다.
살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인간 유형도 다양했다. 저녁 무렵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미용실에 가면 다 큰 여자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었다.
“엄마, 저 언니들 여기서 빨가벗는다.”
“언니가 아니라 남자들이야.”
그들은 이태원 어느 가게의 쇼에 나갈 준비를 하는 트랜스젠더들이었다.
한옥형인 우리집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는 진한 화장에 미스코리아 파마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아줌마가 양색시라고 했다. 미군의 색시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불행히도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 몸을 버려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줌마가 휴지통에 버린 작은 가위를 학교에 들고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위를 가져왔다"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몇 년이 더 지나서야 그게 손톱을 다듬는 가위라는 것을 알았다. 아줌마는 나중에 미군이 아줌마를 버리고 한국을 떠난 후 일본인의 처가 되어 일본으로 날아가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몇 번 보내왔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며 한남동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아랍인들의 말 대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하지는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도, 오래된 상점 간판도, 노점상의 물건들도, 사람들의 머리카락도…. 나는 그 광경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삼각지 국방부 앞 너른 길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란 노래는 어쩜 이렇게 이 상황과 잘 어울리는 걸까 감탄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작곡가 故 이영훈님의 명복을 빕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땐, 아침마다 교실 TV로 영어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인형극이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때 분위기야 요즘같지 않았으니 인형들이 뭔 소릴 하는지 통 모르는 채, 애들이랑 떠들기나 한 거 같다. 그리고 삼학년 땐가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영어 조기교육에 관심 있던 이전 교장선생님과 달리, 새 교장선생님은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 주의였기 때문에 우린 아침마다 시조창을 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배운 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전문가 아저씨의 선창이 스피커로 흘러나오면 우리가 따라 불렀다. "태사아아아안이 높다하되에에에에에에 하아느으을 아래 뫼이로다으아아아아아."
그리고 공책을 한 권씩 마련해서 매일 시조 한 편씩 썼다. 우린 숙제 안 해 혼난 얘기, 어제 먹은 간식 얘기 따위를 초장, 중장, 종장 3-4-3-4, 3-4-3-4. 3-5-4-3 형식으로 적어내었다. 매달 한 번씩은 시조짓기 대회라고 해서 한 학년에 몇 명씩 상도 주고 그랬다. 그 덕에 중고등학교 가서 시조 배울 땐 수월했다. 반 아이 하나는 창에 흥미를 느껴 국악중학교에 지원하기도 했다. 붙어서 다녔는지는 헷갈리지만. 여하간 막상 저 때는 아침마다 시조창을 하고 시조를 쓰고 그러는 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릴 때 배운 건 몸에 붙는 모양이라 아직도 시조를 흥얼거리곤 한다.
요 며칠 감기를 된통 앓고 있는데, 오늘 낮에 평소처럼 시조를 읊다가 내 목소리에 내가 솔깃했다. 감기로 쉰 목소리가 꽤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청사아아아안리이이이이이이 벼억계에에에에수우우야" ......워매, 이건 꼭 제대로 된 시조창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혼자 방에 앉아 벽을 보며 몇 번이나 창을 했다. 득음을 위해 피를 토하는 이처럼 비장한 자세로, 틈틈이 가래를 뱉어가면서.
이게 오늘 내 목소리가 형편없이 쉬어버린 이유. 우습지만 즐거웠도다.
가장 좋아하는 건 황진이의 시조들.
어느 정도냐면, 고액권에 신사임당 대신 황진이를 넣는 편이 낫다고 주장할 정도였다(집에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아 나 원 환장하게 좋은 거지.
그 중 '상사몽(相思夢)'이란 작품은 정민아라는 가야금 연주자가 곡을 붙여 부르기도 했는데
그녀의 노래도 아주 좋다. 아래는 퍼온 영상.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멀고 아득한 다른 날 밤 꿈에는
같이 출발해 중도에서 만나기를 바라네
넌 아름다워
차가운 눈빛 차가운 미소
내 가슴을 피 흘리게 한 그 차가운 말들
날 비웃어도 돼 날 가지고 놀아도 돼
날 구겨서 버린다 해도 넌 아름다워
얼음과 같은 마음이라 해도
더 이상 나론 만족할 수 없다 해도
변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걸
그 차가운 눈빛 차가운 미소
그 무심한 표정 하나로 넌 아름다워
......
얼음과 같은 마음이라 해도
더 이상 나론 만족할 수 없다 해도
변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걸
그 차가운 눈빛 차가운 미소
그 무심한 표정 하나로 넌 아름다워 
<넌 아름다워>란 노래를 들으며 그린 것입니다.
*
이번 주는 꼬박
기절하듯 앓았습니다.
모두들 건강. 건강하세요.
얼마 전 일화.
나는 방안에 틀어박혀 있고
동생은 출근 준비하느라 자기 방과 마루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는데
켜놓은 TV를 보며 동생이 한 마디.
"김창완 아저씨 나오고 있는데. 안 볼래?"
"연기해, 노래해?"
"토크쇼 출연."
"허허."
아직 산울림 노래들을 깊이 알진 못하지만
몇몇의 노래들은 '심금을 울린다'는 게 뭔지 확실히 깨닫게 해준달까.
김창완 아저씨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대학에서 '잠사학' 전공이다.
어쩐지 그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전공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누에고치도 아저씨 품안에선 깊고 행복한 꿈을 꾸었을 것만 같다.
산울림- 하얀 밤
잠재워 주세요 저를
섧도록 하얀 이 밤에
달빛이 너무 밝아요
감아도 밝은 이 밤에
"잘 가"
그 말이
무너지듯 밀려와
졌어요 당신이 이긴 거예요
당신이 가 버리면
잠 못 이룰 줄이야
*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은 모든 게시물들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seevaa, Rephrased by naya et noiyes. 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라.
나두 데리고 들어가줘!
우리 라이브클럽 한번 가자.
이 노래 제목같은 춤을 덩실덩실 추고 싶구먼.
머리부터 모니터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우리 모습이 떠오르는구만. ㅋㅋㅋ
들어가면 나오기 싫으려나.
나 토욜에 안군네 갈지도 몰라! (뭐지 이 불확실한 선언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신세한탄을 늘어놨는데 다음 날 보니까 내가 읽어도 구리길래 내려버렸어. ㅎㅎ 남들이 보면 엄살이네 하겠지만... 엄살이라도 원없이 부리고 싶다. T^T
고마와. 같이 기운내쟈!
마니 바쁜가봐요. 저도 그런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