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쌈지/영화/TV/만화'에 해당되는 글 23건

  1. 버스, 정류장 / 고양이를 부탁해 (6) 2009/10/11
  2. 별의 목소리 (10) 2008/10/29
  3. 피아니스트(La Pianiste)를 떠올리며 (6) 2008/07/15
  4. Lightning Bolts and Man Hands (4) 2008/02/21
  5. 변금련 (14) 2007/04/05
  6. 러브 액츄얼리 - 결단의 순간 (2) 2007/02/05
  7. 허니와 클로버 2007/02/01
  8. 싸이보그지만괜찮아, 판의미로, 미스터로빈꼬시기 (2) 2006/12/13
  9. 하늘이시여 2006/07/04
  10. 소문난 칠공주 2006/04/18
  11. 내 인생의 스페셜 2006/02/17
  12. 2006/02/01
  13. 서동요 2005/12/22
  14. 이 죽일놈의 사랑 2005/11/24
  15. 비밀남녀 2005/09/20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소녀들이 나오는 두 영화가
나는 참 좋았다.




<버스, 정류장>
OST) 그대 손으로- Lucid Fall



 



<고양이를 부탁해>
OST) 2- byul


 

한숨 푹푹 쉬고 있다 보니까 문득 떠오르네.
아 요즘 뭔가 자꾸 꼬이고 피곤하고 그렇다.
건강도 일도 자꾸 나사가 하나씩 풀린다.
그리고 그것들 조이느라 얼이 빠져 있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 인간 관계 나사가 푸울리인다.




 
2009/10/11 03:50 2009/10/1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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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ほしのこえ The voice of a distant star)
2002, 감독_신카이 마코토, 25분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
얼마 전에 어떤 분이 권하셔서 얼떨결에 보았는데
아무 정보와 기대도 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중반부턴 울면서 봤다.
워낙 짧은 단편이라 줄거리를 자세히 소개하긴 뭐하고.

만약. 나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데 1년이나 걸린다면...?
...3년이 걸린다면? ......8년이 걸린다면?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도
마음을 전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니.

마음을 바로 꺼내 보이지 못하고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닳아서 더 반짝이는 마음을 꺼내 어느날 드디어, 전하면서도
그게 너에게 전달되는 동안 행여라도
조금이라도 구겨질까봐 걱정하는 것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더라도
지금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너에게도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2008/10/29 23:19 2008/10/2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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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함께 본 언니는 여주인공의 행동을 '전혀 예상 못한 일'이랬다.
슬픔과 분노로 괴로워하던 여자가 칼을 들고 남자를 찾아갔을 때
언니는 그녀가 남자를 찌를 거라 예상했지만, 여자는 그 칼로 자신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런 언니의 예상이 예상 밖이어서 놀랐다. 나는 그녀가 칼을 챙기는 순간부터 당연히 자해하려는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니에게 놀라웠던 그 장면이 내겐 놀랍지 않았다.

영화를 떠올린 건, 점심 때 어느 아가씨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그 아가씬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 귀를 뚫으면 마음이 좀 나아졌다고 했다. 답답한 게 뻥 뚫리는 기분?
그렇게 하나씩 뚫은 게 일곱 개의 귀고리 자리.
그 마음을 안다. 나도 그랬다. 뭔가 답답하고, 뭔가 안 풀리고, 이제 어떡하지? 궁리해도 막막한 심정일 때 귀를 뚫었다. 귀고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 같은 이유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다분히 피학적인 행위였고 그로 인해 만족했다. 고백하자면 대부분을 내가 직접 뚫었다. 여섯 개의 귀고리를 하자 이제 귀는 그만 뚫고 싶었다. 그래서 코를 뚫어봤고(아 이건 전문가에게 맡겼다), 문신도 생각해봤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헤나 정도로 만족했다. 이십대 중반까지 그랬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코에 뚫었던 구멍은 오래전에 막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귀고리 자국들도 개점휴업 상태. 가끔 특별한 날에만 양쪽에 하나씩 걸어보곤 한다. 문신은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을 멈추었다.

멈추었다.

나는 이제 벽에 머리를 박으며 울지 않는다.
내 몸 어딘가에 들키지 않고 상처 낼 수 있는 곳을 찾지 않는다.
지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지금 나더러 귀를 직접 뚫으라고 하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다. 여하간

나는 멈추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떻게 멈추게 된 걸까.
그냥 멈춘 것은 아닐 것이다. 감정을 배출하는 다른 길을 찾은 것일 텐데 그게 뭐였을까. 생각하다가
낯간지럽지만 그게 글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의 나로선 짐작하지 못하는 어떤 대상일 수도 있겠는데. 그게 무엇이 됐든 잘된 일이란 생각을 하다보니

작년, 한창 힘들어하면서
전처럼 나를 망가뜨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다행이었다.
이제, 너를 찌를 수 없다고 나를 찌르지 않겠다.
그가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내가 괴로워하지 않겠다. 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2008/07/15 12:51 2008/07/15 12:51




Lightning Bolts and Man Hands
Markus WAMBSGANSS, Germany, 2004


2008/02/21 11:31 2008/02/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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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하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변금련>이란 영화를 보게 됐다. <영심이>를 그린 배금택 작가의 만화원작이 있다, 그리고 성인물이다, 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던 이 영화. 오늘 내가 목격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어느 방 안. 바닥에 어지러이 강냉이가 흩어져 있다.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선 변금련이 힘 조절(?)을 하자,
 강냉이들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솟구치며
 한 알도 남김없이 치마 속으로 사라진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던 중년 부인이 말한다.

 "그 많은 강냉이를 모두 빨아들이다니…! 정말 대단한 아이야!"

 ……그 많은 강냉이가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한 알만 솟구쳐도 기적인 거예요. ㅠ_ㅠ
 나는 이미 맛이 간 상태였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변금련이 뭔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배 아픈 사람마냥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온 방안에 무언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강냉이가 뻥튀기 되어 쏟아져나온 것이다.

 자욱한 연기와 강냉이로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광경에 놀란 중년 부인이 휠체어에서 떨어져 "에구구" 신음했다.

 그리고 그 난리통으로 뛰어들어온 한 남자는
 눈앞의 상황에 화들짝 놀라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외친 다음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중년 부인을 부축하기 전에

 놀랍게도 강냉이를 먼저 집어 먹었다.


여기까지 보고나서 채널을 돌렸다.
초반을 놓친 것이야 그렇다쳐도, 굳이 계속 보지 않은 것은
'아아 이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봐 주어야 해' 하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내가 본 씬이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가 아닐 것만 같다.
언젠가 테이프든 파일이든 구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16년 전에 이런 영화가 존재했다니…….

아래는 씨네21에서 찾은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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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금련
감독: 엄종선
배우: 강리나, 김희라
상영시간: 114분/ 개봉일: 1991.05.11

무주의 깊은 산골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변금련은 티없이 밝고 싱싱한 처녀이다. 봉구와 성혼할 날만 기다리던 변금련은 어느날 마을에 사냥하러 온 서울사람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순결을 빼앗긴 변금련은 봉구 집안으로부터 파혼당하고 복수를 위해 서울로 향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처녀는 곧 인신매매단의 마수에 걸려든다.

고생끝에 그곳에서 탈출한 변금련은 설마담을 만나 기상천외의 신기술을 배우고 드디어 화류계의 신데렐라로 변모한다. 그러던 중 소은경 회장의 황재물산을 배경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변금련은 뜻밖에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수를 만난다. 그는 바로 회장의 둘째 아들로 회장 자리를 노리는 큰형과는 달리 사냥에만 몰두한다.

우여곡절 끝에 무주 산골에서 다시 만난 두 남녀는 오해를 풀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결말마저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2007/04/05 12:02 2007/04/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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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러브 액츄얼리'를 보았다. 영국 수상으로 나오는 휴 그랜트는 비서 나탈리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곤 그 자리에서 바로 수행원을 호출해 차를 대기시킨다.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단호히 결단을 내리고, 신속히 행동한다. 뭔가 조짐이나 신호, 계시 같은 것이 보일라치면 바로 수화기를 들고, 방을 뛰쳐나가고, 오토바이에 오르거나 택시를 세운다. 그런 모습은 꽤 현실성 없게 보이곤 한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렇게 '단호하고도 신속히'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어젯밤 꿈이 심상찮았으니 이번 주엔 꼭 로또를 살테다!' 정도 규모인 경우가 고작이 아닐까 싶으니까.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도 저런 순간들이 몇 번은 있었구나 싶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결단의 순간은 오래 전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 나는 대학 종합관 4층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며 '그래, 휴학을 하자' 라고 결심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교정을 걸어 내려가 다음 날 바로 휴학계를 제출하고 휴학에 돌입했다. 그때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스트레이트로 학교를 더 다니고 졸업을 하고난 후 취업을 시도했을 거다. 그리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복학 때까지 줄줄이 하게 되었던 '커피숍 서빙-학원생활-수능시험-취업-은둔자 생활-전시장 알바-재취업' 같은 과정이 인생에서 쏙 빠졌겠지. 그랬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그 동안 내가 내렸던 이런저런 결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나보다 많이 소심한 누군가의 눈으로 들여다본다면, 내 인생은 '뭐 저런 현실감 없이 단호한 순간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하긴 그동안 연애하면서 떨어댄 온갖 방정들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결단들이었으니. 어쨌든 생각보다 우린 꽤 자주 '단호하고도 신속한' 결단들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결단은 이런 딴 생각을 딱 접고 코앞에 닥친 마감을 쳐내기로 결심하는 것이렷다. 끙.



2007/02/05 10:31 2007/02/05 10:31
사실 종일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고민하던 게 하나 있던 관계로 새벽부터 잠이 깨어 이 생각 저 생각. 예정되어 있던 외출도 취소하고 집에서 '외계인의 편지' 마감을 했다. 그리고 서핑을 하고 있는데, 가입만 하고 활동은 한 번도 하지 않던 한 동호회 까페에 '허니와 클로버'를 함께 보자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 서둘러 외출 채비를 하고 우당탕탕 씨네큐브로 달려갔다. 구세군회관 앞 거리를 무단횡단하다시피 뛰어서야(오, 뛰면서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경찰차가 있었다) 영화가 갓 시작한 즈음 겨우 입장했다. 그러나 이미 영화가 시작된 마당에 동호회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일. 얼굴도 모르는 터라 맨 뒤에 앉아서 혼자 관람했다. 그렇게 본 '허니와 클로버'는 원작만화도 보지 않았고, 또 영화의 완성도를 왈가왈부할 처지도 아니지만 단지 '달콤하고 말랑말랑하며 반짝이는 영화' 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울했던 마음을 많이 씻어주었다. 그리고 관람 후에야 동호회 사람과 통화가 되어 근방에서 맥주를 조금 마시며 대화하다 바이바이. 나까지 총 세 명의 인원인 조촐한 모임이었으나 그런 자리에 나간 것이 몇 년 만이더냐-는 사실만으로도 인터넷 이용 초창기가 생각나 풋풋. 집에 돌아와서도 '허니와 클로버' 곳곳에 숨어있던 유치한 반짝거림이 떠올라 큭큭. 십년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좀더 애틋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을까. 십년 후에도 나는 이런 영화를 보기 위해 혼자 극장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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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02:50 2007/02/01 02:50

일요일 밤. 모처럼 생긴 짬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심야영화 생각이 났다. 스타식스 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판의 미로, 미스터로빈 꼬시기' 이렇게 세 편 상영 예정. 판의 미로는 마음에 아주 들었던 영화라서 한 번 더 봐도 좋겠다 싶었고, 다른 두 영화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달려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호오를 떠나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면서 단 한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는데, 일순의 사려깊은 배려(나는 에너지 변환장치를 달아주는 일순의 행동을 배려-라고 보았다)로 자신이 충전되었다고 생각한 영군이 병원 관계자들에게 총탄을 난사하는 장면이었다. 적에게 마음껏 총탄을 난사하고싶은 소원을 이룬 영군은 그 순간 행복했을까. 그 장면을 보면서 '얘야 네 마음 알겠다' 하는 할머니 마음이 불현듯 생겨 순간 짠해졌던 것이다. 일전에 어느 지인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는데, 그건 누구나 갖고 있는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는 임은경의 모습 때문이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두 영화에서의 임은경과 임수정의 모습은 가냘픈 소녀의 분노 표출이란 점에서 닮기도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흥행에서 망해버렸지만.

아쉬운 점은 영군과 일순을 제외한 다른 환자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일까. 정신병동이란 배경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매력적인 장소임은 분명할 것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도 그 점을 십분 활용해 저마다 다른 질환으로 괴상한 행동을 하는 환자들이 등장해 웃게 만들었다. 그러나 단지 웃게만 만들었다. 그런 식의 웃음이라면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도 매주 볼 수 있는데. 젊은 남녀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는 게 목적이었으니 다른 환자들의 상처까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은 것이려니 생각하다가도, '구구절절이 아니었대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란 소설의 주요 배경은 아동 정신병원. 아이들의 기이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던 그 소설과 이 영화가 자꾸 비교되었던 거라. 조금만 신경써 주었다면 훨씬 속깊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판의 미로-
어릴 적 주위 환경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나에겐, 책을 읽고 공상하는 것이 가장 큰 위안꺼리였다. 그리고 우리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국 창작동화나, 위트 있는 미국 작가들의 동화보단 전설을 바탕으로 한 유럽 동화들이 그렇게 좋았다. 공주, 신기한 동물, 갖가지 마법, 유령과 괴물들이 등장하던- 아이들 동화치곤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그런 판타지가 없었다면 내 유년은 훨씬 초라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예전에 썼던 글 일부를 그대로 옮겨오면:

"나는 동화를 읽으며 핀란드의 자작나무와 별을 동경했고, 저주 때문에 눈물 대신 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어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미친듯이 웃을 수밖에 없던 어느 왕비의 삶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책을 덮은 현실 속의 친구들은 새엄마에게 맞은 자리가 지렁이처럼 솟아오른 동갑내기 친구와 엄마가 미군에게 시집가 버림받은 어린 여자아이와 그게 자위란 것도 모른 채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거'라며 내 앞에서 자위를 하곤 했던 그 아이의 배다른 어린 오빠와 어른들이 '양색시'라 부르던 옆집 아주머니였고, 책을 펼치면 개똥지빠귀와 구두장이 이반과 영리한 당나귀와 빛을 뿜는 깃털을 가진 불새와 죽음을 알리려 구슬피 흐느끼는 요정 반시와 산 속의 거인이 친구가 되었다." ㅡ라는 것.

괴로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반항하고 대항해 싸워서 상황을 바꿔놓을 수도 있고, 가출이라도 해서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콱 죽어버릴 수도 있고, 너희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도인처럼 신경 끄고 내 삶에만 몰두하겠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어린 여자아이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법들은 아니라, 메르세데스를 비롯한 어른들이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어린 오필리아는 판타지 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는 잔인한 새아버지와 재혼하며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불안한 현실에서 오필리아가 만나는 판타지는, 그냥 공상 속 세계가 아니라 필사적인 탈출구였을 거다. 그런데 그 판타지마저 100%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고 힘겨운 모습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잘 나가다가 엔딩이 황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그런 엔딩 때문에 오필리아의 판타지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판의 미로'는 '나는 대충 행복하게 귀염 받으며 살고 있는 어린 아인데요, 어쩌다 잘하면 공주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이제부터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볼까요?'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건데. 패키지 상영인 이번 관람뿐만 아니라 '판의 미로' 한 편만 보았던 지난 관람에서도 영화가 끝난 후 '기대와 다르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 보면 홍보의 핀트가 어긋났던 게 아니었나 싶고...


미스터로빈 꼬시기-
'영화를 보러 올 관객들은 2~30대 여성이 많을 거고, 그들이 기대하는 수준은 이 정도일 것이니, 이렇게 만들면 그 정도 기대치는 채워주지 않겠어?' 하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 ㅎㅎ 나도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해서 딱 그만큼의 만족감만 얻었다.

어쨌든 옆에서 아무리 '남자는 길들이기 나름이야!' 라고 말해줘도 '왜 꼭 인간관계를 그렇게 계산하면서 사나요?' 하면서, 내 집앞이 아니라 지하철 열 다섯 정거장 떨어진 '오늘따라 피곤한 우리 자기'의 집앞으로 달려가 데이트하다가 차이고 정신차린 많은 여자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꿀밤 한 대씩 맞는 기분이었을 거다. (내가 그랬다, 아악-)

하지만 공감대 형성을 제외하곤 부실한 이야기 구성. 아무리 악에 받친 내기라지만, 애인에게 차이자마자 작심하고 다른 남자를 꼬실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게다가 극중 엄정화의 캐릭터라면) 싶기도 했지만. 그건 접어두고라도, 장면 하나하나가 죄다 이전에 다른 드라마나 영화들에서 접했던 사건들이었다. 민준과 로빈의 만남, 도시락 가로채기, 실수로 버린 물건 찾아 쓰레기장 뒤지기, 일본 기업인의 자부심에서 비롯된 갈등을 감성적 호소로 해결한다는 설정...... (더 쓰고 싶지만 그러다 줄거리 다 쓸까 봐.) 그런 면에서 제니퍼가 갑자기 민준을 찾아 로빈의 첫사랑 얘길 꺼내는 대목은 진부하면서도 생뚱맞은 독특한 장면이었다. 한 여자가 연적을 제발로 찾아가 남자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은 기존에 많이 보아온 것이었던 반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이 영화에선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쟤는 왜 저래?' 싶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이것이었다. 민준의 상사가 '로빈은 영어를, 다른 사람들은 우리말을 하기로 했다'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사장님의 탁월한 제안이 아닌가?" 란 대사를 읊던 장면. 나는 그 대사가,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들에게- "다니엘 헤니가 캐스팅 됐어요. 그런데 우리말을 시키려니 부족하고, 다른 배우들에게 영어를 시키려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설정하니까 얼추 얘기가 되지 않나요? 이 아이디어 생각해내고 모두 기뻐했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고.

2006/12/13 03:48 2006/12/13 03:48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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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17:19 2006/07/04 17:19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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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8 17:18 2006/04/18 17:18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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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17:16 2006/02/17 17:16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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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1 17:11 2006/02/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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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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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2 17:09 2005/12/22 17:09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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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17:07 2005/11/24 17:07
이 만화는 WWCAST.com에 연재된 <노마진 드라마노트>의 한 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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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0 17:05 2005/09/20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