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담 공책/시'에 해당되는 글 76건

  1. 그, 겨울 (4) 2009/02/17
  2. 물이었네 (2) 2009/02/14
  3. 지평선 긋는 연필 (8) 2009/01/15
  4. 오렌지, 껍질 (7) 2008/11/22
  5. (3) 2008/11/20
  6. 연애 (3) 2008/11/19
  7. 계절 2008/10/08
  8. 눈 오는 밤 (14) 2008/09/16
  9. 그, 나에게 (6) 2008/08/31
  10. 일수 (2) 2007/09/14
  11. 서른 살 2007/05/25
  12. 스무 살 (2) 2007/05/18
  13. 걸음 2007/02/14
  14. 목욕 2007/01/09
  15. 시간에게 2006/06/02


그, 겨울
 

 


너는 항상 겨울을 살았지
나는 봄이 오면 봄을 살고
여름엔 여름을 살아야 했네

불안해서 노래하던 날들이었지
누군가 칭찬해 주어도 기쁘지 않았네
네가 눈치채지 못하였으니

많은 다짐을 쏟아내었지
다짐이 느는 건 좋은 게 아니었네
다짐은 강물에 간신히 띄우는 나무조각이었네
다음 걸음을 걷기 위해 던지는 징검다리였네

누군가에겐 아름답지 않아 미안했고
누군가에겐 아름다워서 미안했지
너에겐 모든 이유로 미안했고
너에겐 모든 이유로 화가 났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네
너는 그리워하기 위해 멀리 간다는 거짓말을 했지
나는 자꾸 검은 문을 열고 싶었고
기다리던 전화가 올까봐
입을 틀어막고 전화를 받았지






2009/02/17 22:52 2009/02/1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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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었네



얕게 일렁이기 보다는
깊게 출렁이는 게 좋아 보였지.
바닥을 치고 올라와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었네.
의무에 가까운 마음으로 진흙을 껴안았지.
흙탕이 된 것을 으스대기도 했네.

아주 잠시 반짝이는 수면이 되어 보기도 했지.
따뜻한 저 햇볕을 일년 내내 쬘 수도 있다고
누군가 얘기했지만 자신 없었네. 저 배, 저 바람, 비구름, 나를 할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떠올리며
겁내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더 거칠고 빠르게 아래로 달렸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애타는 사랑 때문에
곁에 있는 거라 말해 달라고, 물고기에게 애원하고
대답을 듣지 못한 밤엔 입 없는 수초의 뺨을 갈기며 분풀이하다
모든 것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오면
지쳤다는 거짓말을 하며

한번 더, 이번엔 예전의 나를 잊어버리게,
모두 나를 쳐다보게, 더 크게, 더 깊게,
살아 있어 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오직 출렁이기 위한 에너지, 출렁임을 위한 출렁임으로,
출렁이던 나는, 물이었네.




2009/02/14 02:42 2009/02/14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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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긋는 연필



지평선 긋는 연필이 있으면 좋겠네.
하늘 아무데나 슥슥 선을 그으면 바로 거기가
지평선 되어 해를 감추고 달을 뱉는.
오후 두 시, 한창 높이 뜬 해 바로 아래 선을 긋는다, 그러면 내가 그은 지평선으로
해는 금세 발갛게 넘어가겠지.
언제든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건 덤이라 하자, 그렇게 밤을 부르면 이제
달의 움직임에 따라 지평선을 자꾸만 뒤로, 슥슥 긋는다.
달은 평소보다 오래 하늘을 돌아야 할 거고
나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이밤이 유난히 길어
너와 오래도록 함께일 수 있어 좋다고.





2009/01/15 22:00 2009/01/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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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껍질



오렌지를 사랑했어요

오렌지를먹을때껍질째먹는사람있나요오렌지를먹고싶으면단단한껍질을벗겨야하죠껍질도벗기지않고핥아보니맛없다고투덜거리면누구도이해하지않을거예요오렌지를날로삼키려든다는핀잔이나듣겠죠껍질이아무리두터워까다로워도손톱을꾹눌러박아벗기는수고를해야,

오렌지를 먹을 수 있는데

오렌지를만날때마다그짓을되풀이해야했던거예요이전에깐건아무소용없었죠까놓고돌아서면껍질은그새또고스란히재생되어있었어요발끈해도소용없는건껍질이있어야오렌지니까껍질을벗겨야오렌지니까연약한속살과향긋한내음을지켜주는껍질은어쩌면오렌지의모든것,

오렌지를, 그, 껍질까지, 사랑해야 했는데

오렌지를난자꾸벗기기만했어요넷으로다섯으로나누어손가는대로갈기갈기벗겼어요벗긴껍질은주저않고버렸죠그래도되냐고오렌지에게물어본적도없죠날욕해도상관없지만오렌지탓도있어요한번도말리지않았으니깐아무렇지않은듯다시단단한껍질을척두르고나왔으니깐,

오렌지를, 뼛속까지 오렌지가 아니라 껍질까지 오렌지였던 오렌지를, 그

오렌지를.




2008/11/22 23:21 2008/11/22 23:21
from ---------------글담 공책/시 2008/11/20 23:20



 



뺨에 닿은 눈, 녹으며 말하네.
사라질 것이다.
나 이리 사라지듯 너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세상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품고 감고 달고 밟고 숨긴 것들도
사라질 것이다. 너는 그 대부분을 기꺼워하겠지만 그 안도도
사라질 것이다.





2008/11/20 23:20 2008/11/2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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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너를 나에게
바느질하는 것.

한 땀 한 땀 너 를
내 심장에 박는 것 기억에 박는 것

헐거워지는 널 붙들어 실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고
떨어진 조각은 다시 깁는 것

어느 날 네가 단번에 뜯겨 나가 고통스러운 자리엔
바늘이 뚫고 지나간 흔적이 남는 것

네가 흘리고 간 살과 피를 남김 없이 주워
내 몸에 자꾸 기워 보는 것, 그러고도 황량히 남은
네가 없는 내 몸에 빈 바느질을 계속하는 것.




2008/11/19 02:43 2008/11/1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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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람들의 눈빛으로 계절을 기억해.
차가운 여름 따뜻한 겨울
스산한 봄이 지나갔어.

사람들의 몸짓으로 계절을 기억해.
손짓과 함께 흩어진 가을
그런 날이 아마 있을 걸.

나의 계절을 그려 줘.
떠올려도 아프지 않을 풍경을 그려 줘.

나의 계절로 남아 줘.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줘.

나의
계절이 되어 줘.

(08.10.8)






2008/10/08 17:35 2008/10/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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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




눈 오는 밤 나귀 타고 굽이굽이 가시는 님
오실 때 길 잃을라 쌓이는 눈 미워서
발자국 덮지 못하게 조심스레 솔질하네.

나귀야 힘을 내라 네 발자국 너무 얕다
눈 녹기 시작하면 어찌 찾아 오려느냐
우리 님 오실 때까진 해도 뜨지 말거라.





(*모티프-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2008/09/16 22:00 2008/09/16 22:00


그, 나에게



나를 어디 먼 데로 보내놓고
안부나 들으며 지냈으면, 하다 보니
어쩜 내가 그 보내진 나일 수도 있겠네.

나를 저 예전으로 돌려놓고
다시 살아보라 해줬으면, 하다 보니
어쩜 내가 그 돌아온 나일 수도 있겠네.

먼 데서 발 굴렀을 나에게 전하고 싶네.
그동안 미안했다고.

달라질 날 기대할 나에게 고해야 겠네.
미리 좀 미안하자고.





2008/08/31 01:48 2008/08/3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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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



언제부턴가 삶이 나에게 부채상환을 요구했다 그 모두가 내가 진 빚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호소할 곳은 없었다.

삶 자체가 득인 적이 있었다 그 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본전이고 이자이고 밑질 것 없는 투자였다.

그러나 삶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숨 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삶이 곧 빚이었다 하루를 더 사는 만큼 나는 여기저기 잘려나갔다.

매일 쓰는 일기는 삶에게 바치는 일수장부가 되었다 장부를 기록한 밤이 지나면 붉은 해가 어김없이 떠올라 꽝, 확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2007.9.13)




2007/09/14 00:16 2007/09/1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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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내게 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원이 아니었으므로.

일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여럿 만났으나 저들처럼 뭉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각자 달랐다 이내 뿔뿔이 흩어져 다시 어디의 일원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석면과 담배처럼 유해한 것들이 하나 둘 알려졌고 기억해 두었으나 쓸 데 없었다 언제나 공포의 차례는 거기까지 미칠 새가 없었다.

생계가 달린 모든 핑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중요한 보험이었다 눈 감는 날들이 늘어갔고 암묵적인 약관이 오갔다.

조용히 뿌듯해하거나 요란하게 부끄러워하는 사이 시간이 가고 있었다 불안해진 나는 우산을 아무렇게나 접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너를 두서없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2007.5.24)



2007/05/25 09:00 2007/05/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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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노랑머리를 하고 나는 기뻤네
  나는 커다란 과자였네 노랑머리를 하고

  너를 좋아했네 나 말고 모두를 좋아했네
  마음이 과자처럼 부서져도 상관 없었네

  너를 싫어했네 모두를 나만큼 싫어했네
  마음을 과자처럼 집어가서 화가 났었네

  중요한 게 많은 날들이 중요치 않게 지나갔네
  사람들은 나를 서랍처럼 열고 닫았네

  노랑머리 나는 노랑머리여서 매일 울었네
  이제 나는 노랑머리가 될 수 없어서 우네



  (2007.5.18)



2007/05/18 18:17 2007/05/18 18:17

  걸음



  내가 걸음을 멈추어도
  너는 웃지 마.

  내가 지나는 거리를 알잖아
  아찔한 간판 불빛 가득한 세상

  어느 날 걸음을 멈춘 내가
  빨간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는데
  피곤한 표정에 과장이 엿보여도

  어디의 문도 두드리지 않고
  아무의 손도 잡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유를 묻는 이에게
  변변한 답 못하고 더듬거려도
  이 거리를 알고 있는 너, 는 웃지 마.


  (2007.2.12)



2007/02/14 16:55 2007/02/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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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



  때처럼 너를 벗기다 묻는다.

  나는 너에게
  굳은살처럼 남아 있는가.


  (2007.1.9)



2007/01/09 11:59 2007/01/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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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에게



  나를 용서할 수는 없어도
  나를 외면해 줘

  지나간 날 때문에 사랑을 잃으면
  다시는 꿈꾸지 못할 테니

  가슴을 곱게 갈아 너의 눈을 덮을까
  내가 보낸 시간아


  (2006.6.2)




2006/06/02 04:14 2006/06/02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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