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각에 사당에서 2호선 열차를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4호선에서 2호선 갈아타는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 전방 10 미터부터 단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
처음 그 줄을 맞닥뜨리고 회사로 출근해 건교부에 전화를 걸었었다 -_-;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계속 통화중이더군.. (회사 어떤 분 말씀에 의하면 건교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곳이 아니라 욕을 먹기 위한 곳이랜다)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 문득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이 생각났다.
기억하는 사람 있겠지, 애벌레와 나비가 나오는 그림책..
처음엔 너무나 빤한 상투적인 내용이라 도덕 교과서 보는 듯하다 하여 탐탁치 않아 했지만,
역시 상투적인 것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일까.. 요즘들어 그 계단을 오르면서 늘 그 얘기가 생각나네...

계단을 올라가는 것조차 힘들어 밀리고 치이며 느릿느릿 올라가면, 기다리는 건 숨도 못 쉴 지하철.
성추행이다 뭐다 시비 걸 틈도 없이 고개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사람들.. 살이 조금만 더 쪘으면 내 배가 뻥, 터지지 않았을까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정거장마다 문이 열리면 튕겨져 나가는 사람들.. 티코에 몇 명이나 들어가나 기네스 도전하는 건 대수로운 일이라며 한숨을 쉬고,
티비에서 보던 외국 지하철.. 좌석이 버스처럼 두 칸씩 나란히 있던데 우리나라는 왜 벽에 쪼로록 일렬로 붙여놨을까 생각했던 궁금증이 쉽게 풀리고...

이 많은 애벌레들 어디로 가는 걸까 상상해보구, 다들 소설 속의 그들처럼 영문도 모른채 밀려가는 건 아닌지 의심해본다.

애벌레들과 흩어져서 내 삶에 뛰어들면 나는 대변신, 이제는 건전지다.

백만스물 둘, 백만스물 셋, 하던 건전지 광고에서 그 넘이 왜 사람 형상을 하고 광고에 나왔는지 고개가 끄덕여지고.
밤사이 짧은 충전을 한 나는 삐걱하면 금세 방전되기 일쑤다.
힘 좋고 오래 간다는 건전지들이 숫자를 세는 동안 전압이 맞지 않거나 더 이상 충전할 수도 없게 된 건전지들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애벌레는 애벌레일 뿐, 아무리 꾸역꾸역 밀고 올라가야 더 이상 변신은 없다.
건전지는 건전지일 뿐, 기어이 충전해봐야 성능은 점점 떨어지는데...

나비가 되는 길을 찾아야지, 귀찮긴 하고 잠시 답답하겠지만..
건전지 역시 마찬가지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야지, 아무도 내게 "넌 내가 사서 다 쓸 때까지 써도 되는 건전지일 뿐"이란 말을 할 수 없도록.




2000/04/07 06:27 2000/04/0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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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 2009/07/10 13:5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건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