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9 15:57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지.
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어. 집까지 찾아와서 때리는 누군가가 있었거든.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처음 하게 한 사람,
흠씬 맞아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난 혼자 있었어.
집에 사람이 있는 걸 들킬까봐- 그러면 그가 또 문을 두드릴 것 같아서-
집안 불을 모두 끄고, 텔레비전도 못 켜고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있었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말야.
그때 너에게서 전화가 왔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뭐해요? 만나지 않을래요?
네에...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외투를 걸치고 달려나가던 난, 마치 구원 받은 기분이었어.
네가 나를 구원해 준 것 같았다.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어.
그날 저녁 종로 거리의 가위바위보 게임기에선
기적처럼 동전 스무 개가 쏟아져 나왔지.
너도, 나도 그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쏟아지는 동전을 두 손으로 받으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날 밤엔 눈도 많이 내려서
구두를 신고 나간 나는 차마 너의 손을 못 잡고
외투 끝자락을 붙들고 조심조심 걸었어.
다 잊고 있었지 뭐야.
그날을 시작으로 즐거웠던 일도, 고마웠던 일도 많았는데
네가 나에게 했던 나쁜 일들만 생각하고 있었어.
유치했지만,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던 거 같아.
시간이 제법 지났지.
나는 얼마 전부터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
따뜻하고 다정한 이 사람을 만나면서야
네가 내게 잘해줬던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됐어.
이젠 그런 기억을 떠올려도 괴롭지 않더라.
……
구기고 구겨서 기억하던 너를
이제 네 모습 그대로 기억할게.
Trackback Address :: http://dodaeche.com/trackback/1613

